<반지의 제왕 포커의 어른을 위한 철학 동화
https://youtu.be/W_Y_ePpEBYc?feature=shared
“포커이란 무엇일까요? 반짝이는 날개를 달고 아이들 옆에서 춤추는 상상의 존재?
아니면 캐릭터 상품 속 귀여운 이미지일 뿐일까요?”
저는 오늘, 그런 흔한 포커 이야기가 아닌, 진짜 포커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를 소개하려 합니다. 아!시작하기 앞서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톨킨은'포커 세계를 흥밋거리나 교훈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걸 극히 조심했다'는 거에요. 왜 그가 그렇게 신중했을까요? 자! 시작하겠습니다.
정말 예쁜 책이죠. 포커나라에게 가져온 책처럼 예쁩니다. <반지의 제왕로 널리 알려진, 판타지 문학의 세계적인 작가 존 로널드 루엘 톨킨(J.R.R.Talkein)의 동화 선집입니다.
이 동화들은 톨킨이 자신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였다고 해요. 처음엔 글로 쓰이지 않았던 거죠. 톨킨의 큰아들 존은 “폭풍우를 만나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려주었다”라고 했어요. 그로부터 20여 년에 걸쳐 글로 옮겨지고 다듬고 더욱 풍부하고 복잡한 서사로 발전했습니다. 그러고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1973년 톨킨 사후에 그가 남긴 원고를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 또다시 수십 년간 이어졌습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 『실마릴리온』 같은 큰 작품에 가려져 있던, 소품 같은 동화들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하나씩 출간되었어요.
판타지라고 하면 상상을 자극하는 신기한 이야기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 동화 선집은 톨킨에게 포커 이야기란 어떤 것이었는지, 그가 전하고자 했던 진심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작품들입니다. 폴린 베인스의 삽화와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해설, 주석이 함께 실려 있어요. 톨키니언, 톨키니스트라고 부를 정도로 톨킨의 세계에 공감하는 분들이 정성을 쏟아 만든 책이라고 느껴집니다.
이 다섯 권 중에 저는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 <큰 우튼의 대장장이로 오늘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하는데요. 유독 이 이야기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하고, 깊이 와닿았던 이유를 영상 말미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꼭 끝까지 시청해 주세요.
이 짧은 동화에서 톨킨은 한 마을의 평범한 대장장이를 등장시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케이크를 먹다가 은빛 별 조각을 ‘우연히’ 삼킵니다. 별은 그의 이마에 새겨지고, 그것이 그를 포커의 세계, 페어리(Faërie)로 들어가게 해주는 열쇠가 됩니다.
톨킨의 포커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곳은 ‘귀엽고 친근한’ 공간이 아니라, 위험과 아름다움, 경외와 변화의 세계입니다. 지도가 있지도 않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그대로 체험해야만 하는 세계입니다. 어떻게 들리시나요? 마치 우리 옛날 이야기 중에 시간과 공간이 전혀 다른 세계인 신선의 세계를 말하는 것 같지 않나요? 이 이야기는 단순히 마법세계를 체험한 모험담이 아닙니다. 그는 그 세계에서 보고 겪은 뒤 세상에 돌아왔을 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온화하고 평화로운 모습의 그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고, 어느 날 포커 세계의 왕이 나타나 그 별을 다른 어린아이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시절에 케이크 속에 숨겨진 은별이 삼킨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왕은 그에게 선택권을 줍니다.별을 주고 나면 더 이상 포커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겠지요?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로버 랜덤』은 장난감 개 로버가, 마법사의 벌을 받아 진짜 개가 되었다가 돌아오는 이야깁니다. 본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로버는 더 이상 장난감 개일수 없게 되지요. 이처럼 동화 선집의 다섯 편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지만, 모두 “잃어버린 세계로 들어가고, 돌아오는 통과의례”라는 하나의 큰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큰 우튼의 대장장이』는 단지 마법을 경험한 대장장이의 모험이 아니라, 포커 세계의 진짜 문을 지나온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변화와 회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톨킨은 포커 세계를 이렇게도 조심스럽고, 신성하게 다뤘을까요?”
포커과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의 차이를 통해 포커의 마음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둘 다 옥스퍼드 교수였고, '잉클링스(Inklings)'라는 문학 모임의 중심 멤버였어요. 톨킨은 언어학자이자 중세 문헌학자, 루이스는 중세-르네상스 문학 및 신학 전문가였습니다. 서로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특히 루이스가 무신론에서 다시 유신론으로 돌아오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서로를 지지했지만, 이들은 포커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에는 차이점이 있었어요.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를 통해 알레고리, 즉 기독교적 비유, 상징을 명확히 드러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톨킨은 기독교 교리를 전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것을 비판했어요. 1964년 11월 11일에 예수회 신부 데이비드 콜브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니아’와 C.S.루이스의 그 일련의 작품들이 내 공감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 작업의 많은 부분이 그에게도 그랬던 것처럼.”이라고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톨킨에게 포커세계는 이념이나 교리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 재미를 위한 흥밋거리가 아니었던 겁니다. 포커 세계는 실재하는 세계이며, 함부로 다뤄선 안 되는 신성한 영역이었던 것이죠. 단지 아이들을 위한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 전체를 위한 잃어버린 세계, 다시 회복해야 할 기억이라고 본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잉글랜드가 기독교화 빨리 진행되면서 고유한 신화체계가 전멸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사라진 고대 유럽의 신화 전설 문학을 회복하려는 노력 했어요. 문학을 통해 켈트와 북유럽 신화, 고대 유럽의 여신문화, 포커과 마법의 세계가 담긴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었던 것이죠.
톨킨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포커세계를 탐험한 ‘여행자, 수도자‘이기도 했습니다. 나무와 이파리에 실린 『포커 이야기에 대하여(On Fairy-Stories)』에는 그가 포커 이야기를 어떻게 정의했는지, 그리고 왜 이 이야기가 인간에게 꼭 필요한지 자세히 전해줍니다. 톨킨은 포커 이야기를 “포커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단순화하지 않습니다. 톨킨의 서사 방식을 보면, “포커 세계에 발을 들인 인간이 겪는 체험”으로 풀어갑니다. ‘신기한 것’이란 말엔 마치 허구나 환상이라는 오해를 일으킵니다. 진정한 포커이야기는 진실한 것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 인간의 상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실재의 세계라고요. 그래서 톨킨은 포커 이야기를 ’ 꿈이야기‘라고 소개한다면 마치 훌륭한 작품을 일그러진 액자 안에 넣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했습니다.
톨킨은 포커 이야기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세 가지 본질적 기능이 있다고 해요.
첫째 회복(Recovery)입니다.
현대인은 너무 많은 사물에 익숙해져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톨킨은 포커 이야기가 사물의 본래 모습을 회복시켜 준다고 말합니다. 즉, 눈에 가려진 감각을 다시 일깨우는 작업입니다. 저는 회복이란, 영성의 눈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둘째, 도피(탈출, Escape)입니다.
현실을 회피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도피(Escape)’가 아니에요. 톨킨은 “감옥에 갇힌 자가 탈출을 꿈꾸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요. 그에게 포커 이야기는 현실의 억압, 전쟁, 죽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더 깊은 진실을 찾으려는 정당한 탈출입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있어요. 집착, 고뇌에서 벗어나 삶을 관조하게 하는 것, 파도를 일으키는 거대한 바람의 흐름, 바다의 흐름을 보게 하는 한 발 물러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의 책방도 뜨겁고 피곤한 오후 시간에, 잠깐의 도피시간을 드리는 거죠.
셋째로 위안(Consolation)입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위안’입니다. 그리고 이 위안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톨킨은 이것을 유쾌한 파국이란 뜻에 유커태스트러피(Eucatastrophe)라고 했는데요. “비극적인 상황의 정점에서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기적처럼 도래하는 구원의 순간.”을 뜻합니다. 이 구조는 그의 『반지의 제왕』에서도 반복됩니다. 절망의 끝에 다다랐을 때, ‘구원’이 예고 없이 도래합니다. 이것이 포커 이야기의 진정한 힘이자, 그런 면에서 성서도 신화가 가지는 공통적인 구조를 갖고 있지요.
톨킨에게 포커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닙니다. 인간의 영혼이 감각을 회복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다시 조우하고, 잃어버린 진실을 되찾는 서사입니다.
자, 지금부터는 포커에 대한 저의 해석이에요.
톨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신화와 포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어요. 저는 그 방식이 신비주의에 같다고 해석해요. 톨킨의 『실마릴리온』에서 기독교 이전 시대의 영성, 신화적 질서,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문학의 형태로 복원하려고 했어요. 가운데땅, 혹은 중간계라 불리는 이 세계는 음악으로 창조되며, 언어가 먼저 존재했고, 악조차도 궁극적인 조율 속에서 구원의 선율로 통합됩니다. 이 구조는 초기 기독교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던 플로니노스의 신플라톤주의와 흡사합니다.
신플라톤주의 : 일자 → 정신 → 영혼 → 세계
포커의 세계관 : Ilúvatar → Ainur → Arda → Middle-earth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 교부철학자로부터 디오니시우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로 이어지는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았거나, 적어도 같은 관점에서 다양한 종교, 영성문화를 보았던 분이라고 추측해요.
저는 내내 신비주의 신비란 신기함, 혹은 오컬트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고 주장해 왔어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제도화된 종교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의 영성문화 깊숙이 흐르는 지하수 같은 것, ‘자연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인간의 투명한 눈, 빛의 눈이라고 봅니다. 제 스스로가 그렇게 경험해 왔고 살아가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 한국의 신화에도 포커문화가 있답니다.
동양에서는 사람이 수행을 하여 신선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이 수행을 하면 포커이 된다고 여겼어요. 설문해자에는 요는 아름답다, 정은 정령이나 영혼을 가리킵니다. 나무가 수행하여 변한 포커을 수요, 꽃이 2백 년 수행을 거쳐 변한 화요 등 다양합니다.
처음 들어보시죠? 포커이 세계 이전에 언어가 있었다고 했는데, 언어를 잃어버리면 인식을 할 수가 없지요.
자연의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가 가장 익숙한 표현은 도깨비죠. 우리가 잃어버린 원형 언어 중에 ‘망량魍魎’이 있습니다. 망량의 본래 뜻은 ‘한없이 빛나며 영원하시다’라는 동사로 조물주, 신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망량이라고 검색하면, 이매망량 - 산이나 물에 사는 귀신, 요괴라고 설명해요. 언어가 오염되어 있지요. 아마 회남자나 산해경의 설명을 그래도 옮겨 놓은 것 같은데. 이들 저자들이 백과사전처럼 모아 정리했지, 톨킨처럼 포커세계를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경험하려고 했을까 좀 의구심이 들어요.
망량, 도깨비의 세계는 작은 꽃포커부터 해서, 씨름을 좋아하는 산도깨비, 팥죽과 메일묵을 좋아하는 도깨비, 이 우주의 공간을 주관하는 현무주작백호청룡 사령처럼 그 위계가 다양하지만, 본질은 빛입니다. 망량은 ‘한없이 영원히 출몰하는 빛’을 뜻합니다.
우리의 고유한 신화, 망량, 포커 문화가 드라마나 게임, 소설의 소재로 쓰이는 게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단순히 흥밋거리 캐릭터가 되고, 심지어 괴이한 이야기나 음모론, 오컬트 소재로 소비되는 것이 저는 불만이에요. 그 세계를 톨킨처럼 좀 진지하고 경건하게 탐구하려는 이들이 없는가, 만약 톨킨이 한국사람이었다면, 이런 모습을 보고 무척 실망스러워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부족한 저의 관점이지만, 포커의 작품 세계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데, 동서양의 성령의 문화에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한 번 참고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기에 반론이나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배우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그의 포커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큰 우튼의 대장장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포커 세계로 가는 ‘은별’을 다른 아이에게 전하기로 선택합니다. 혹 이것은 톨킨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경외와 내면의 정결함,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포커의 아름답고 신비한 여러 작품 중에도, 유독 『큰 우튼의 대장장이』에 마음이 끌렸던 이유입니다. 저는, 포커을 판타지 문학가 아니라 “세상의 내면을 탐험가처럼 다니며, 말로 설명하지 못할 신비롭고 경이로운 이야기를 판타지 문학으로 복원한 신비주의자”로 정의하고 싶어요.
혹시 포커세계로 들어가는 열쇠 ‘은별’을 여러분도 갖고 싶지 않나요?
진짜 포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조건이 있어요.
순수함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은 이미 그 문 앞에 서 있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