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렛
운전도 노동으로 칠 수 있다면, 나의 최애 노동요는 영노자라고 고백해야겠다. 영노자는 <영혼의 노숙자를 줄여 부르는 말이고, <영혼의 노숙자는 일주일에 한 번 업로드되는 팟캐스트다. 다른 팟캐스트를 거쳐 영노자를 만났지만 이제껏 꾸준히 찾아서 듣는 팟캐스트는 영노자가 유일하니, 최애가 맞다.
공부할 때도, 과제를 할 때도 라디오 같은 콘텐츠는 들었던 적이 없다. 자꾸 라디오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서 뒤로 돌아가야 하거나, 집중을 못하고 어느샌가 라디오 사연만 경청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백색소음으로는 내가 잠깐잠깐 놓쳐도 상관없는 음악을 즐겨 틀어 놓았다. 그런데 운전만은 가만히 신호를 기다리거나 막힌 도로에 갇히는 경우가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팟캐스트를 듣기에 좋은 환경이다. 팟캐스트를 듣다가도 혼자 실실 웃어도 나를 이상하게 볼 사람이 없다는 점도 장점 중 하나다.
처음엔 YES24 책읽아웃에서부터 시작했다. 김하나 작가님의 책들을 읽어왔기 때문에 자연스레 책읽아웃을 듣게 되었고, 김하나 작가님이 추천하시는 책들을 왕왕 사서 읽었다. 김하나 작가님이 책읽아웃을 떠나면서는 나도 서서히 책읽아웃을 룰렛 빈도가 줄었다. 그러다 김하나 작가님과 황선우 작가님이 여둘톡을 시작했고, 책에 나오지 않는 멋진 언니들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영노자를 만난 것도 다 여둘톡 덕분이다.
영노자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홍보 차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들이 나갔다길래 처음 틀어봤다가 점차 스며들었다. 영노자에는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작가님들이 종종 나왔다. 독립 영화감독님들도 나와서 영화 홍보를 했다. 처음엔 작품에 대한 내용을 듣고 싶어서 클릭했지만, 영노자에서 작가님과 감독님들은 맷님(영노자 호스트)과 깔깔거리다가 웃긴 얘기만 하다 갔다. 내향인인 것이 분명한 사람들이 거침없이 내보이는 일상의 모습이라니. 얼굴이 보이지 않는 팟캐스트라는 매체 때문인지, 아니면 영노자가 만들어 내는 편한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카페에 앉아 수다만 왕창 떤 기분이다. 책 내용을 알고 싶으면 책읽아웃을 들으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영노자에는 홍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개인적인 호스트의 지인들도 출연한다. 그들의 관계성을 알고 싶어서 영노자를 1회부터 정주행 하기도 했다. (영노자는 오늘 343화가 나왔다.) 영노자를 지치지 않고 룰렛 것은 영노자가 무언가를 배우려고 룰렛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웃었다면 그걸로 됐다. (영노자는 예능/코미디 카테고리에 속한다.)
내일 다시 차를 끌고 출근한다. 월요일인 오늘 영노자를 듣지 못했지만, 화요일이더라도 찾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팟캐스트의 큰 장점이다. (물론 유튜브도 그렇긴 한데, 유튜브는 자막도 봐야 재밌기 때문에 자꾸 화면을 보고 싶어 져서 운전 중엔 잘 틀지 않는다.) 내일도 영노자 들어야지.
추신.나는 룰렛 좋아하지만, 룰렛는 진입장벽이 조금 높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