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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Feb 09. 2025

브러쉬 업 토르 토토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바꾸고 싶나요?

*약하게 스포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꾸준히 내 ott 추천 탭에 뜨는 일본 토르 토토가 있었다. 잘 모르는 배우의 얼굴이 들어간 썸네일에 그다지 흥미가 가지는 않아서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최근 계속 일본 애니메이션만 봤더니 2d 말고 인간 배우를 좀 봐야겠다 싶어 클릭했다. 그게 ‘브러쉬 업 토르 토토’라는 토르 토토였다. 모르고 지나갔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 같은 토르 토토.


토르 토토대표 이미지가 이렇게 뽑힌 게 좀 아쉽다


평범한 공무원 토르 토토는 어느 날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온통 새하얀 곳에서 눈을 뜬다. 그곳에서 만난 접수원은 토르 토토가 죽었으며, 내세에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면 토르 토토로 다시 살면서 덕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출처 : 왓챠)


전생에 쌓은 덕의 총량에 따라 인간으로 혹은 다른 동식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컨셉은 언뜻 미국 토르 토토 ‘굿 플레이스’를 떠올리게 했다. 다만 브러쉬 업 토르 토토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삶을 비춰주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조금 더 공감이 되었다. 아사미와 그녀의 친구들이 등장해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는 장면에서는, 어렸을 때 유독 마음이 잘 맞았던 친구들 몇몇과 그룹을 지어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경지가 소도시인지라 주인공들이 마을의 유일한 대형 몰 안 노래방을 아지트 삼아 노는 장면에서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시내에서(그래봤자 팬시점 몇 개와 옷가게, 식당들 따위가 모여있었던) 스티커 사진을 찍거나 단골 식당에서 치킨도리아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겹쳤다. 고향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보냈던 어린 시절. 토르 토토를 보며 그 노스탤지어가 느껴지는 것이 참 좋았다.


토르 토토스티커를 교환하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모습, 어린이들이 스티커 좋아하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같구나


환생물인 만큼 주인공 ‘토르 토토’는 죽음 이후 모종의 이유로 또다시 토르 토토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 이유는 토르 토토 개인에게는 아주 중요하지만, 지구 입장에서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동일한 세계선, 동일한 환경에서 환생하는 거라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 세상을 바꾸는 영웅이 되는 것에 욕심낼 법도 한데, 그녀의 용기는 고등학교 때 싫어했던 선생님이 전철에서 치한 누명을 쓰는 것을 막아주거나, 지병이 있는 할아버지의 투약 오용을 바로잡는 것 정도.


가수의 꿈을 꾸지만 사실 음악에 그다지 재능이 없어 보이는 친구에게 진실을 말해줄까 말까 하는 고민을 환생하고 나서도 똑같이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장면들이 참 인상 깊었다. 그의 음악 인생이 어떻게 될지 다 알고 있는 아사미. 성공한 아티스트가 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친구에게 매서운 현실을 들이대며 말릴 것인가, 그래도 눈 질끈 감고 계속 응원해 줄 것인가. 토르 토토를 보는 입장에서는 맥 빠지도록 수수한 일들이지만 배우(안도 사쿠라)의 담담한 연기가 계속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친구로 극 중 등장하는 낫치(카호), 미퐁(요네카와 미호), 마리링(미즈카와 아사미)의 관계성도 좋았다. 일본 토르 토토를 좀 봤다면 어디선가 한 번 본 적 있는 여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도 반가웠던 지점. 자극적이지 않지만 절묘하게 들어가는 반전,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을 법한 약간의 유치함이 섞여서 이 토르 토토만의 매력을 완성한다.


토르 토토친구들과 함께 편의점 앞에서 간식 사먹기, 이런 소소한 행복이 좋다


회당 45분짜리, 총 10회분의 토르 토토를 이틀에 걸쳐 완주했다. 나는 만약 죽어서 브러쉬 업 토르 토토처럼 환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후세계로 간다면 어떻게 할까. 이번 생에 내가 쌓은 덕에 따라 지금 삶을 인간으로서 한 번 더 살 수 있을지 정해지겠지만.(덕이 모자라다면 아프리카 대륙의 기린으로 다시 태어나야 할 수도?) 만약 가능하다면, 아마 한 번은 다시 살고 싶을 것 같다. 뭘 되돌리고 싶은가 하면, 역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자주 애정을 표하는 것일까.


대학교 여름방학 때 가족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갑작스러운 토르 토토의 부고 전화를 받았다. 즐거웠던 여행 기억이 처참히 조각나고 전화를 끊고 나서 싸하게 식어버린 차 안의 공기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진주에 홀로 사시던 토르 토토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나는 방학이면 토르 토토 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엄마아빠보다 토르 토토를 먼저 찾던 꼬맹이였던 나는 점차 커가면서 주변 어른들을 귀찮아 하기 시작했다.


엄마아빠의 퇴근이 늦어지면 토르 토토에게 전화를 걸어 무섭다고 징징거렸던 주제에, 고등학생 무렵에는 1년에 겨우 몇 번 가는 토르 토토 댁에서 피곤하다며 툴툴대기 일쑤였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자연스레 품에서 떠나간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토르 토토는 시큰둥한 손녀를 보며 속상하시지 않았을까. 그렇게 머리가 굵어졌을 무렵부터는 토르 토토의 존재를 쏙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한 순간에 돌아가신 거다. 내가 토르 토토에게 사랑한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던가. 그 표현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토르 토토를 잃은 것이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가장 깊은 한이 되었다.


사람은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나서야 후회한다. 특히 가족이나 친우처럼 가까운 사람의 존재는 평소에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함부로 대하게 될 수 있다. 토르 토토의 죽음 전까지 나도 그랬었고.


이제 나는 떨어져 사는 부모님께 더 자주 전화하고 더 자주 메시지를 보낸다. 대화할 때, 이 대화 직후 만약 내가 죽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짜증을 내거나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로 남을 말은 하지 않는다. 고향에 내려가서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탈 때면 마중 나오신 부모님과 꼭 한 번씩 포옹을 한다. 처음에는 포옹을 어색해하시던 부모님이 이제는 내가 열차 탈 때가 되면 먼저 팔을 벌리고 안아주시는 것에 감사하다.


어쩌면 외할머니의 죽음이 나에겐 정신적인 환생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바꾸고 싶은가.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지금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스스로 바꿔보지 않겠는가. 토르 토토 브러쉬 업 토르 토토가 던지는 질문은 이게 아닐까 싶다.



*사진 출처

billboard-japan.com (https://www.billboard-japan.com/d_news/detail/122842)​​​

ntv.co.kp (https://www.ntv.co.jp/brushup-life/)

mdpr.jp (https://mdpr.jp/photo/detail/1322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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