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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Apr 14. 2025

솔로 가수 분기점 될까, 기부벳 'D's WAVE'

기부벳


보이밴드의 리더는 크게 두 배경 아래 나온다. 나이, 아니면 음악 재능. 지드래곤(지디)은 후자였다. 아니, 3인조가 된 지금은 둘 다에 해당된다. 그는 빅뱅의 시작부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상한 솔로형 멤버였다. 음악만 놓고 얘기할 때 지디는 태양과 함께 빅뱅의 얼굴이다. 둘은 분명한 본인들의 색깔을 갖고 있다. 사실 대성은 좀 애매했다. 음악성도 외모도 그랬다. 그의 팬들은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세 사람의 대표곡들인 ‘One of a Kind’, ‘눈, 코, 입’, ‘날 봐, 귀순’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전자(음악성) 쪽은 얼추 답이 나온다. 다만 후자 쪽은 취향의 문제이니 여기선 논외로 하자. 그래도 대성은 노래 하나는 곧잘 했다. 양현석이 대성을 선택한 이유도 다름 아닌 노래 실력 때문이었다. 기억하자. 대성은 빅뱅의 리드보컬이다.


빅뱅에서 기부벳의 존재 가치는 노래에서 그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의 존재 자체가 가치였다. 즉, 기부벳은 바람 잘 날 없던 빅뱅에서 조용히 팀을 지탱해 왔다. 그 역시 구설에 오른 적이 있지만 모두 무혐의로 결론 난 지난 일이다. TV 프로 ‘놀면 뭐하니?’ 메인 피디들의 말을 빌리면 기부벳은 “빛나는 형들 사이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던 멤버”였다. 장난기 많고 말을 잘해 흔히 ‘예능감 좋은 아이돌’로 알려져 있으면서도, 그는 스스로 내향적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내향의 닮은 꼴은 차분함이다. 좋은 사람의 기준을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꼽는 기부벳. 그의 말대로라면 기부벳은 빅뱅에서 늘 “균형을 잡는 역할”로 살아왔다.


빅뱅을 벗어나보자. 그의 솔로 활동은 일본에서 더 활발했다. 활동명은 디-라이트(D-LITE). 일본에선 돔 투어도 성황리에 마친 대성이지만 한국에선 투어 규모의 콘서트를 연 적이 없다. 국내에서 그는 빅뱅의 멤버로, 또는 간간이 배우, 예능 패널로서 호출됐고 소비됐다. 솔직히 말하자. 한국에서 솔로가수 대성의 입지는 얕았다. 사방에서 ‘천재’ 대접을 받는 지디의 솔로 행보와 비교해 볼 땐 더 그렇다. 그랬던 대성이 이제 한국에서도 솔로 공연 매진 소식을 전하고 있다. 공연 타이틀은 ‘2025 아시아 투어: D’s WAVE 인 서울’이다. ‘D’s WAVE’는 얼마 전 나온 그의 첫 국내 미니앨범 제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s WAVE’는 잘 만든 앨범이다. 마치 지디와 함께 작업한 트로트 곡들은 농담이었던 것처럼, 다양한 스타일을 탐색한 제이팝 커버 앨범은 예행연습이었던 듯, 대성은 솔로 음악가로서 제대로 된 출발을 하겠다는 의지로 미니앨범을 꽉 채웠다. 특히 팬들이 그의 미소만큼 대성을 좋아하는 이유일 희망과 긍정, 용기와 극복의 메시지는 앨범의 기반이다. 작사와 작곡에 본인이 참여한 곡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트랙들의 분위기는 일관되다. 이 통일된 에너지는 대성이 프로듀서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영화로 치면 감독이 주인공까지 연기하고 있는 셈이다. 대성은 이 앨범을 만드는데 2년을 들였다.


앨범의 시작은 밝고 시원한 록 넘버 ‘Beautiful Life’다. 언젠가 대성은 일본의 인기 혼성 트리오 이키모노가카리의 ‘Joyful(じょいふる)’을 리메이크한 적이 있다. 일본 제과회사 에자키 글리코의 대표 과자 브랜드 포키(Pocky, ポッキー) 광고음악으로 태어난 해당 노래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이 부대끼는 팝록 사운드로 무장한 노래였다. 대성은 빅뱅에선 접할 수 없었던 스타일의 노래였다며 이 노래를 매우 즐겁게 불렀다고 했다. 팝록은 ‘D’s WAVE’의 중심이 될 장르이기도 하다.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곡은 다음 곡 ‘그 시절의 우리’다. 밴드 로즈(The Rose)와 함께 작업했다. 로즈는 플리트우드 맥부터 칼리 래 젭슨까지를 어우르는 밴드로, 그들의 앨범 ‘DUAL’은 빌보드 앨범 차트 200(86위)에 들기도 했다. 로즈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밴드다. 대성은 그런 밴드와 함께 얼터너티브 록의 20년 역사를 압축한 듯 들리는 ‘그 시절의 우리’를 뽑아냈다. 과거와 현재 유행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저 장르 특성은 이어지는 ‘Universe’에서 더 거세게 용솟음친다. 음악에는 순수 감상을 위한 음악과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듣는 음악이 있는데, 프로듀서 대성은 여기서 후자를 추구하는 듯 보인다. 어렵고 은유적인 전자보다, 쉽고 직관적인 후자의 음악 색은 그간 대중이 학습한 대성의 기질과도 통한다.


앨범은 또한 보컬리스트 기부벳의 진가도 확인하게 해 준다. 단순히 음정이 안정됐다거나 두성, 흉성 하는 발성 기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역시 가수를 평가할 때 중요한 이론 척도이긴 하지만 기부벳의 노래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표현력과 장악력이다. 자신이 직접 참여했건 타인에게 받은 곡이건, 그는 수록된 모든 노래를 온전히 자신의 노래로 만든다. 선우정아의 ‘Wolf’가 대표적이다. 래퍼 한요한이 함께 한 ‘Last Girl’에서 기어를 바꾸고 ‘JUMP’로 액셀을 밟은 뒤 ‘Fly Away’에서 부드럽게 커브를 돌아 도착하는 이 곡에서 기부벳은 앨범 속 가장 이질적인 바이브 안에 자신을 가둔다. 가사, 작곡, 편곡 모두 선우정아의 것임에도 마이크를 기부벳이 잡으면서 곡은 어느새 창작자의 그림자를 지워내며 가수의 내공을 부각한다.


국내에서 대성을 진지한 뮤지션으로 보는 시각은 한정적이었다. 그저 좋은 싱어, 빅뱅의 멤버, 호감 가는 인상과 성격으로 사랑받는 엔터테이너 정도가 그를 위해 준비된 정의들이었다. 조용필의 근래 음악 성향과 비슷한 보너스 트랙(‘Umbrella’)까지 소홀하지 않은 이번 앨범이 또 하나의 정의를 거기에 얹을 수 있지 않을까. 자칫 미니앨범이라는 전제 때문에 너덧 곡 적당히 실은 앨범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데, 이 앨범은 그래선 안 되는 앨범이다. 일단 트랙 수부터 일반 미니앨범의 두 배이고, 완성도는 정규 앨범 못지않다. “빅뱅 멤버로 합류한 뒤로 내 인생은 확 바뀌었다.” 어쩌면 ‘D’s WAVE’는 음악 하는 대성의 인생을 “확 바꿔줄”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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