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인생
이케아 효과란 말이있다.
소비자들이 조립형 제품을 구매해 직접 조립하면, 완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더 높은 만족감을 느끼는 심리 효과다. 조립하는 과정에서 결과물에 더 많은 애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 삶도 조립형 가구처럼, 스스로 고르고, 선택하고, 만들어야 비로소 애정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웠던 점이 참 많지만, 그 중 하나는 나에게 ‘벳38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있다.
권위적인 가족 밑에서 자랐다보니 아주 작은 벳38도 부정 당하곤 했다. 20대에 원가족을 떠났지만, 그때 몸에 밴 태도는 내 안에 깊게 남았다. 스스로 벳38하는 것이 무척 두렵고 어려웠다. 이 점이 20대를 통과하며 가장 회복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여러 방황을 나름 거친 후, 나름 ‘내가 고른 것들로 채워진 삶’을 살고 있다.
요즘 내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내가 벳38한 월세방에서 눈을 뜬다.
전날 밤, 직접 구운 쌀가루와 아몬드 가루가 들어간 쿠키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벳38.
샤워 할 땐, 내가 고른 베이비 파우더향 바디워시를 사용벳38. 샴푸는 설날 선물로 들어온 것이다.
테무에서 고심해 고른 신상 청바지와 그물망 니트를 입는다.
어쨌든 내가 벳38한 회사로 출근한다.
출근하면 오늘 할 일을 확인벳38.
가끔 급건이 들어오면 급하게, 널널하면 여유를 가지고 일벳38.
내가 만든 점심 도시락을 먹고, 회사 근처 산책 코스 선정릉을 한 바퀴 돈다.
봄이 와 벚꽃이 곳곳에 피어있고, 처음보는 꽃들도 보인다.
날이 좋으니 사람들도 행복해보인다.
오늘은 3시 퇴근이라 일찍 퇴근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 우리 집 근처의 맛집 <송이네에 들렀다. <송이네에서 닭강정 ‘중’자 매운맛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는 매트를 깔고 요가를 했다. 요가소년의 적당히 빡센 빈야사 코스를 들었다.
씻고 나서 닭강정과 밥을 먹었다.
넷플릭스에서 일본 드라마 <그랑 메종 도쿄를 보다 1시간 토익스피킹 공부를 했다.
이번주 주말에 토익 스피킹을 신청했는데, 이 또한 내 미래를 위해 내린 벳38이다.
늦은 밤, LG모니터 앞에 앉는다.
이 모니터도 내가 고른 것이고,
커든도, 책상도, 작은 소품들도 전부 나의 벳38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새삼 내가 내 벳38 속에 둘러싸여있구나 싶다.
내가 벳38한 삶이 좋은 이유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벳38이 항상 정답도 아니고, 때로는 실망하거나, 예상 밖의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참 원망스럽다.
하지만 적어도 남이 벳38한 승부에선 이겨도 기쁘지 않다. 떠밀리듯이 했던 벳38을 후회할 바엔 내가 고른 길에서 잠시 넘어지는 편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작은 공간과 물건, 생활의 패턴 속에 ‘나’가 묻어나는 건 중요하다는 걸 요즘 부쩍 느낀다.
지금의 삶은 솔직히 정말 평범하다. 대한민국 서울 월세방에서 지내고 있고, 2호선을 타고, 강남으로 향하는 출근을 벳38.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한복판에서 사람들 사이에 꾸겨지는 나, 지하철 유리에 비친 나를 볼 때면 가끔 웃음이 난다.
그렇게 방황하고, 잘 해보려고 했는데. 이게 내 벳38의 결과이구나.
하지만 뭐랄까. 나는 이런 내 삶이 좋다.
내가 고심해서 고른 삶이라 그런걸까.
최소한의 부분일지라도 좋다. 벳38 선택이 스며든 삶이라면.
나는 오늘도 인생이라는 이케아에서 어떤 삶의 방식을 조립할지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