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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꾹이누나 Nov 30. 2023

다른 비타임 토토 보고 부산을 떠올리다

무성의한 #제주도여행기

고개만 돌리면 바다가 보이는 도시에서 일 년 여를 보내다 보니 바다에 대한 감흥이 조금은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지형이나 주변 건물들이 주는 다소간의 분위기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새 이 바다가 그 바다 같고 또 그 바다가 저 바다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바다가 지천인 제주에 도착한 순간, 나는 아무런 기대도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아, 또 바다다, 할 뿐이었다.




짧게 제주도에 다녀왔다. 친구를 보러 갈 핑계 삼아 조용히 생각정리도 하고 올 심산이었다. 사실 제주도는 여러 번 가봤기에 큰 계획이나 기대 없이 그저 하루는 자유롭게 발길 닿는 대로, 하루는 마음 맞는 대로 움직일 요량으로 비행기표만 끊어서 훌쩍 떠났다.


제주도에서 렌트카 없이 여행한 건 또 처음이라서 막상 어디로 움직일지 막막했다. 멀리 이동하기에는 돌아오는 길이 아득해서 지도를 켜 친구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이호테우 해변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이호테우 해변을 지나가면서만 봤지 실제 두 발로 걸어본 기억은 없어서 그런대로 의미를 두고 돌아보기로 했다.


비타임 토토
비타임 토토이호테우 해변가는 노을이 예뻤다


시간이 애매해서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에 가져간 책을 뒤적이다 보니 해가 졌다. 그래도 관광지라 그런지 혼자 온 손님이 없어 마침 연락 온 친구들에게 '야 제주도 왔다!'라고 하니 누구랑 간 것이냐며 폭풍 질문이 쏟아졌다.


- 혼자, 그래 남자 없이 혼자! 게하 아니고 그냥 친구집에서 잘 거고 친구는 당연히 여자야.


연애세포가 죽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이 나이에혼자'여행하는 것을 죄악시하길래 조금은 피곤해져 대화방 알림을 무음으로 살짝 바꿔두었다. 마침 배도 고프고해서이번 제주여행에서 유일하게 목표로 한 고등어회를 먹으러 근처 횟집을 찾았다.


비타임 토토회는 또 무지하게 좋아해요
맛있었으니깐 두 번 보세요


친구가 예전에 추천한 도민맛집을 지도에 잘 저장해 둔 덕에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적한 식당에 들어가 고등어회와 한라산 한 병을 주문했다. 고백하지만 식당에서 혼자 소주, 사실 처음이었다. 등이 유난히 푸르른 점박이 고등어 한 접시와 언제 리뉴얼했는지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한라산 한 병이 내어졌다. 창 밖은 이미 해가 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검은 바다를 벗 삼아 천천히 회 한 접시와 한라산 한 병을 깔끔히 비웠다. 혼자 아무런 말도 없이 외딴곳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니 어쩐지어른이 된 것만 같기도 하고 청승맞아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조금은 쓸쓸한마음이 들었다.


네이버지도를 켜니 근처에 꽤 핫한 LP바 라는 것이 있어 검은 바다를 따라 5분남짓 걸어갔다. 2차를 혼자, 역시 처음이었다. 지인들이 비타임 토토에 있는 LP바나 위스키바를 제법 추천해 주었지만 첫 LP바의 순간을 제주에서 맞이했다. 어둑어둑한 LP바에 무려 10분 남짓 대기까지 하며 들어가니 음악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행히 혼자인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나는 또 소파자리에 안내를 받아 한쪽에는 커플이 앉아 꽁냥꽁냥 대는 가죽소파 한켠에 앉아 스피커와 그 너머 창 밖의 검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도음악상가'라는 곳입니다~!


제법 고독했으나 또 소리가 크니 잡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많지는 않았다. 그냥 그냥 이렇게 흘러한 해를 생각했고 낮에 오면 바다가 배경이었겠구나 생각했고 지나간 인연들을 생각했다. 아주 가끔씩 '혹시 내 인생도 트루먼쇼가 아닐까?' 상상하곤 하는데, 나의 트루먼쇼에 왜 이 장면이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어느덧 익숙해진 비타임 토토살이와, 조금은 더 가벼워진발걸음에 여기저기 이곳 제주까지 다다른 나의 인생은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나,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그러다 최백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는데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가사를 못 알아듣다가 '달맞이고개' '비타임 토토역' 따위가 들려 검색을 해보니 노래 제목이 무려 [비타임 토토에 가면]이었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에 가사를 띄우고, 어디서 본 건 있어 위스키 한 잔에 노래를 찬찬히 음미했다. 노래는 (아마도) 비타임 토토에 남은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비타임 토토에 가면 너를 만날 수 있을까냐고 지나간 인연을 먹먹하게 노래했다. 제주도에 와서 감흥 없이 널리고 널린 바다를 보다가 비타임 토토노래를 들으니 또 눈앞의 이 바다가 조금은 달리 느껴졌다. 항상 처음은 너무 벅차고 가슴 뛰는데 시간이 지나고 일상이 되면 마음이 무뎌지고 말까. 매일 보는 비타임 토토 매일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니고 소중하지 않은 게 아닌데, 이렇게 아주 조금의 쉼표 끝에 돌아보면 어제와 오늘이 또 달리 느껴지는데, 나는 지겨워하고 말았을까.

노래 한 곡에 조금은 취했는지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조용히 친구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했다. 시끌벅적 잘 짜인 여행만 하다가 기분 따라 발길 닿는 대로그것도 홀로 움직여본다.자임에 예전 같았으면 외로워했을(그래서 못 견뎠을) 순간에,대신 고독함과 약간의그리움을 느다. 양 손 가득 뜩 힘을 주고 살았더라면 이제는 꽤 차분하게 여유를 느끼며 지내는 듯해서비타임 토토 보며 견뎌낸 일 년 끝에 미미하게나마 철든 것 같기도 하다.



https://youtu.be/VcnD6Q3DAu0?si=OjsbFp6LiEjbtnyq

[에코브릿지-비타임 토토에 가면] 추천합니다 :)









+덧.

꿈이 행복하게 사는 거라며 잔뜩 웅크렸던 지난날이 생각나서(출처: 기안 '인생84' 유투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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