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넘나드는 여성들의 고민
며칠 전 일이다. 프랑스 Plédéliac 지역에 살고 있는 카지노사이트 남편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카지노사이트를 기쁘게 해 줄 요량으로 시간을 맞춰 영상 통화를 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카지노사이트와는 보통 메일이나 문자로 소통했기 때문에 뜻밖이기는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파리에서 일을 하던 카지노사이트는 농부인 남편을 만나 브로타뉴 지방의 작은 시골로 터를 옮겨갔다.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적적하게 지낼 아내를 위로하는데 멀리 사는 카지노사이트와의 통화가 좋으리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카지노사이트 남편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한국은 일요일 늦은 오후 시간, 프랑스는 아직 이른 일요일 오전, 우리는 핸드폰을 마주한 채 오랜만에 긴 대화를 나누었다. 카지노사이트의 아이는 몇 주전 첫 돌을 맞이했고 나는 그를 축하하고자 몇 벌의 옷과 책을 보냈었다. 카지노사이트는 고맙게 잘 받았다는 말을 먼저 전해왔다.
카지노사이트와 처음 만난 건 2008년 프랑스에서 대학교 생활이 시작했던 때로, 카지노사이트는 입학생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다. 아마 만 16~17세쯤 되었을까? 아직 양 볼에 사과 같은 붉은 끼를 지닌 작은 여자애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학교로 왔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내 나이는 22살로, 카지노사이트와는 나이차가 꽤 나는 편이었지만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랐다는 비슷한 유년기를 지나온 탓인지 우리는 처음부터 은은하게 잘 지냈다. 6년이라는 퍽 긴 유학생활을 보냈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프랑스 카지노사이트는 별로 없다. 물론 내성적인 성격 탓이 제일 크겠지만, 학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나의 부족한 프랑스어를 참고 견디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카지노사이트가 많지 않았던 탓도 있다. 하지만 이 카지노사이트는 내 언어를 참아내다 못해 얼마 지나지 않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덕분인지 카지노사이트는, 유일하게 내가 프랑스어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지금까지 곁에 남아있다. 그만큼 카지노사이트는 심성이 착하다. 단순히 착한 것뿐 아니라, 생각이 깊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삶에 대한 철학의 뼈대도 단단한 사람이다. 때문에 나는 그 카지노사이트를 늘 마음으로 존경해 왔다. 카지노사이트와는 작년 1월 프랑스에 갔을 당시 만난 것이 가장 최근의 만남이다. 그때 카지노사이트는 임신 7개월이었다. 1년 3월이 지난 지금, 카지노사이트는 이제 어엿한 엄마의 모습으로 화면 저편에 앉아있었다.
간단히 안부를 주고받는 동시에 화면 저편에 보이는 카지노사이트의 딸에게도 나는 연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카지노사이트의 딸은 (아마도) 처음 마주한 동양 이모의 모습에 놀랐는지 미간에 주름이 가득 잡힌 채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잔뜩 찌푸린 얼굴마저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소소한 안부 인사들이 마디마디 지나간 후, 카지노사이트는 이내 처음 하는 육아의 어려움과 고민들에 대해 꺼내놓기 시작했다. 카지노사이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지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이미 주변으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던 엄마들의 호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지노사이트가 토로한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 아기 육아 정말 힘들다. 특히 6개월까지 정말 죽을뻔했다.
두 번째 : 밤.아기의 울음소리를 남편은 듣지 못한다.
세 번째 : 엄마에 비해 아빠는 도통 육아에능숙해지지 않는다.
네 번째 :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기대되는 엄마 역할에 대한 압박감이 심하다.
가장 공감이 간 부분은 역시나 영아기 육아에 대한 어려움과 관련된 여러 말들이었다. 아이가 100일이 되기 전까지는 워낙 힘들다는 말을, 속된 말로 귀에 빵꾸가 나도록 들어왔다. 그런데 막상 카지노사이트로부터 똑같은 말을 듣고 보니 새삼스럽게 긴장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지노사이트를 알아온 오랜 기간 동안 카지노사이트로부터 힘들다는 투의 말을 들었던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삶의 곡절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대로, 담담히 순간들을 헤쳐나가던 카지노사이트였다. 그런 이가 사무치게 힘들다는 말을 하다니! 육아가 정말 장난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등에서 식은땀이 다 났다.
다음으로 공감이 갔던 부분은 엄마가 된 이후 겪어야 했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관련된 지점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공감이 갔다기보다는 충격이 앞섰다. 적어도 성평등지수가 높은 유럽에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감이 우리나라보다 나으리라 지레짐작해 왔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이를 낳은 카지노사이트의 말은, 현재 한국에서 목도하고 있으며 앞으로 내가 겪어내야 할 혼란과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나와 같이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카지노사이트는 본인의 일과 그림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막상 인생에서 육아라는 지점에 다다르고 보니 일과 육아 사이에서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할지 매 순간이 혼란스럽다고 했다. 또한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기대되는 양육자로서의 인식이 높은 탓에, 부득이하게 아이를 다른 이에게 부탁하고 일을 간다 하더라도 그에 따르는 죄책감, 혹은 부담감이 상당하다는 심경도 전했다. 때문에 육아 이후로 본인의 심리나 삶의 형태가 변했다고 느껴질 때가 많고, 앞으로 남은 본인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역시 전했다. 그런 고민을 쏟아낼 때의 카지노사이트 얼굴은, 여성과 엄마 그 사이 어디쯤에 머무는 고된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국의 가정 안에서, 그리고 전체 사회 안에서도 그와 비슷한 결의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전통적으로 기대해 오던 여성상과, 현대에서 기대되는 여성상 사이의 갈등이며, 이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서 해결되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랐을 때, 이것을 단순히 남성을 향한 비난, 혹은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중시하는 여타 여성에 대한 모욕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해 왔다. 나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가 못내 아쉽다. 누군가 개인의 내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타인을 향한 원망이나 비교로 해석될 수는 없다. 새롭게 생긴 '엄마'라는 사회적 역할로 발생한 생경함은 여러 형태의 어려움을 유발한다. 이 복잡한 세상 안에서 개인의 삶을 다시 정리. 재분배하는 일이 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 역시 임신 후 행복했던 순간들이 즐비한 동시에 당장 내게 주어진 여러 일, 또 자긍심을 가지고 매달렸던 여러 문제들로부터 손을 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했다. 단순히 내 곁의 남편과 비교해 보아도 내 삶은 임신 전후로 너무나 달라져야만 할 것 같이 보였다. 그렇다 보니 이따금씩 여성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들이 남편을 향한 일차원적인 원망으로 번지지는 않는다. 우리 가족 안에서 임신을 할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을뿐더러, 남편은 남편 나름 자신의 몫을 더 많이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임신과 출산 이후 삶에 새로운 활로를 얻은 여성들에 대해서도, 마치 그들이 삶 어딘가에서 안주하는 사람인 양 업신여길 마음은 없다.(그럴 자격도 없고.) 그들이 가정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다진 또 다른 여성일 뿐이다. 나처럼 일로서 나를 더 뚜렷하게 말하고 싶은 사람, 일과 가정 안에서 동시에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가정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단단하게 하는 사람 등등 여성들 역시 다양한 정체성 확립 방식에 있을 뿐, 서로를 향해 눈을 흘길 필요는 전혀 없다. 나는 여성들도 서로의 삶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혼란에 대해서도 남녀를 비롯 우리 사회 모두가 존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보니 카지노사이트와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다.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진 탓인지 카지노사이트 남편은 아이를 업고 집 앞으로 산책을 떠나는 것 같았다. 카지노사이트는 카메라를 돌려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늘은 파랗고 주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소리뿐인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소박한 옷차림의 카지노사이트 남편과 그의 등에 얌전하게 업힌 아기, 그리고 그들 뒤를 쫄래쫄래 쫓는 강아지의 모습이 화면 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전 보았던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카지노사이트는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경제적인 문제는 수습해야 할지, 그리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딸을 보호할 수 있을지, 매번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카지노사이트의 얼굴은 진짜 엄마가 다 된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된 여러 여성들이 그렇게 '엄마'의 얼굴이 되는 것이 나는 여전히 신기하다. 나중에 나도 그러한 얼굴이 될까?
처음 하는 육아가 쉽지 않고 수많은 두려움이 앞서기는 하지만, 카지노사이트는 여타 내 다른 카지노사이트와 가족들이 말했던 말을 똑같이 전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 : 그럼에도, 아이는 너무 예쁘고 귀하다.
삶에서 아이를 만남으로 인해 두려움도 많아졌지만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엄마로서의 역할이 자신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기대가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카지노사이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통화를 하다 보니 한국 시간으로 오후 6시가 다 되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카지노사이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카지노사이트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내 출산 선물은 무엇이 좋을지 조심스레 고민이라 했다. 나도 미처 고려해보지 못한 질문이라 순간 아무것도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자신의 딸이 태어날 때에도 또 첫 생일을 맞이했을 때에도 선물을 받았기에 본인 역시 선물을 나누는 기쁨을 가져보고 싶노라 말하는 카지노사이트를 말릴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다면 작고 가벼운 선물, 아이의 옷을 보내주면 충분하다 답해주었다. 카지노사이트의 얼굴에는 기대감 서린 웃음끼가 맴돌았다. 카지노사이트는 소박한 가을 옷을 보낼 것이다. 카지노사이트가 보내올 아이의 옷이 나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