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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실 Mar 25. 2025

알파벳카지노를 위한 변명

알파벳카지노를 위한 변명

-지영



알파벳카지노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그림일기였다. 개학 전날 아침 일찍부터 밀린 일기 한 달 분량을 쓰다 마지막에 날씨를 적지 못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날씨를 어떻게 써넣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한달에 할 일을 하루에 해낼 수 있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알파벳카지노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한 순간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공부는 당연히 미루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시험기간이 되면 매일 밤 책상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심야라디오를 들으며 ‘내일하면 되지’를 반복하다 시험 전날이 되어서야 벼락치기를 했다. ‘이게 다 기억날까?’ 불안했지만 바로 전날 외운 것들이라 더 잘 기억이 나서였는지 시험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알파벳카지노는 힘들지만 데드라인에서 터지는 잠재력을 확인하며 ‘나는 미루지만 결국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40여 년을 이어오던 나의 알파벳카지노 역사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한 달 전에 하기로 한 발표 PPT 만들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급기야는 발표 당일 새벽에 그 일을 시작한 것이다. 알파벳카지노가 몸에 붙은 나에게도 데드라인은 존재했다. 전날 저녁 12시. 모든 것을 미루는 나지만 그 시간까지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으로 데드라인이 무너졌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결국 지겨워져서 텔레비전을 끄고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일말의 양심으로 발표 주제와 관련된 검색어로 정보를 찾다가 알고리즘에 이끌려 들어간 유튜브를 강제 시청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날과 다른 점이라면, 보통 밤 9시쯤 되면 시작하는데 그날은 밤 12시 데드라인이 될때까지 급기야 컴퓨터 조차 켜지 않았다는 것이다. 12시가 넘어서야 ‘왜 한다고 해서!’라고 조바심을 내고, 과거의 나를 미워하면서 겨우 노트북을 켰다. 내가 흔쾌히 좋다며 맡은 발표준비였지만, 알파벳카지노고 알파벳카지노다가 당일 새벽에야 시작했다. 졸음을 좇으며 불안감에 시달리며 준비하다 보니 뜨는 해를 바라보며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발표 의뢰를 받던 그 날로 돌아가 “네~”라고 대답했던 내 입을 꽉 틀어막고 싶었다.


알파벳카지노 습관은 하기 싫은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나 모임,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지난 가을에 나는 시험 준비에 몰두하던 중 보상으로 겨울 독일 여행을 계획했다. 공부하는 틈틈이 공연 표도 예매하고, 교통편과 숙소도 예약하며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키웠다. 그러나 여행이 다가오자 점점 더 따뜻한 온수매트 위가 제일 좋다고 느꼈고, 짐싸기, 구체적인 일정을 세우는 것은 미뤄졌다. 결국 출국 당일 아침, 잠에서 깬 나는 그제야 짐을 쌌고, 숙소가 정해진 것 외에 다른 일정도 세우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옷들을 트렁크에 쑤셔 넣으며 ‘(여행 준비도 미루면서 굳이) 여행은 왜 가는데?’라고, 여행을 계획한 나를 원망했다.


사실 이번 글쓰기 수업을 신청할 때도, 모집 글을 읽자마자 ‘바로 이거야!’라고 마음이 부풀어 올라 손이 결제창을 향했다. 그러나 잠시 숨을 내쉬고 결제창의 엑스를 눌렀다. 나를 돌아보면 시작은 항상 이렇게 뜨겁고, 당장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늘 다르다. 3월이 되면 정신없이 바쁜 업무와, 최근 급격히 떨어진 체력을 고려할 때, 그 결과는 이미 예상이 간다. 결국 글쓰기 과제를 또 알파벳카지노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학기 초는 아니어야 했어. 1년 중 가장 바쁜 때잖아’라며 신청한 나를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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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왜 괴로워 하면서도 매번 일을을 미루는가?’가 궁금해졌다. 알파벳카지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문 분야는 심리학이다. 알파벳카지노는 '지금'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현재 직면해야 할 괴로움을 내일로 미루는 행위다. 알파벳카지노를 뜻하는 영단어 procrastination에서 'pro'는 라틴어로 '앞으로'라는 의미이고 'crastinus'는 '내일'을 뜻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라는 뜻이다. 몇몇 학자들은 알파벳카지노가 기본적으로 기분을 낫게 만들기 위한, 또는 적어도 더 힘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정서 조절' 전략이라고 하였다. '도피' 같은 부적응적인 스트레스 대처법들이 그러하듯 알파벳카지노 또한 내 마음이 나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다보니 생긴 부작용 같은 것이다.


나의 알파벳카지노 심리 패턴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할 거라고 결심한다. 항상 희망적이고 계획을 차근차근 해 나갈 수 있을거라는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머릿 속으로 일의 양을 파악하고 마감일을 기준으로 일을 나누어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며 마감일에 닥쳐서 마음 졸이지 않을 거라 다짐한다. 그러다 세운 계획이 여러날 반복해서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 나는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하는 타입이 아니지.’ 불안감이 생기며, 그제서야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슬슬 느껴진다.


하지만 마감일이 아직 가까워지지 않아서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 실제로 일은 하지 않으면서 계획만 반복적으로 수정한다. 차라리 계획 세울 시간에 그 일을 하면 되는데 말이다. 시간은 계속 지나고 여전히 거의 일은 하지 않고 있으면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를 가정한다. 이후의 최악의 결과들을 상상한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해야 했어.’ ‘근데 나는 요즘 너무 바쁘잖아.’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한 그 때를 후회하거나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능력도 안되면서 이렇게 괴로운데.’ 마감 전날 밤이 되어서야 겨우 책상에 나를 앉히고 컴퓨터를 켜 꾸역꾸역 일을 하며 ’다시는 알파벳카지노지 않겠다’는 결심이 아니다. ‘다시는 안해.’ 일을 맡지 않겠다는 엉뚱한 다짐을 하며 일을 끝낸다.


대부분의 일을 예외없이 알파벳카지노는 것은 단순히 게으름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계획을 세워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어렵거나,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기효능감이 부족할 수 있다. 또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한다. 다양한 심리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알파벳카지노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알파벳카지노 원인은 크게 두가지 정도 인 것 같다. 첫째는 해야하는 일에 대해 실패할까봐 두려움에 일을 미루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나의 능력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지 않아 일을 미루는 것 같다. 그렇게 일을 미루는 것은 실패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만약 실패를 한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변명 할 수있다. 능력이 없는 사람보다는 노력을 안하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 적합한 상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혹은 내일 그런 순간이 분명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미룬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다가 에너지가 쌓이면 나의 컨디션이 괜찮아지고 그리고 나서 일을 하면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변명, 회피에 빠져 미룰 수 있는 핑계를 만든다.





미루는 습관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미루는 습관 극복하기’, ‘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방법’, ‘미루는 습관 버리기’ 등 대부분 알파벳카지노는 고쳐야할 대상으로 나온다. 알파벳카지노는 다양한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목표 성취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표현되고 있다. 평생 미루어 왔고 괴롭거나 후회가 되긴 하지만 알파벳카지노가 나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어서 알파벳카지노가 꼭 고쳐야만 하는 나쁜 것일까? 미루어서 좋은 점은 없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파벳카지노의 천재들은 알파벳카지노 습관 고치기 책으로 가득한 인터넷 서점에서 나 홀로 알파벳카지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책이어서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알파벳카지노의 천재인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발표를 20년 동안 미뤘다. 1838년, 그는 자연선택 이론을 깨달았지만, 이를 미루며 따개비, 지렁이 연구에 몰두하다가 1859년에야 책을 발표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알파벳카지노 선수였다. 그는 항상 거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로 완성한 작품은 겨우 20점에 불과하며, 유명한 '암굴의 성모' 역시 7개월에 끝낼 것이라고 공언하였으나 결국 약속한 기한보다 25년을 넘겨 완성되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레오나르도를 가르켜 “이 사람은 그 무엇도 끝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저자 앤드루 산텔라는 미루기 거장의 발자취를 쫓아가며 얻은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구실을 생각해내는 능력"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며, "우리의 도피, 가벼운 망상, 자기기만"이 오히려 창의적인 영감을 제공한다고 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미루기의 장점은 성취감이다. 계속해서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던 괴로운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 일을 몰아서 한 번에 끝내는 짜릿한 느낌이 든다. 몇 해 전 시범운영 공모계획 담당자로 업무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관리자는 3개월 전부터 준비하라며 여기 저기서 모은 자료 파일을 주었지만, 나는 그 두꺼운 참고 자료들을 책상 서랍에 넣어두기만 했다. '아직 시간이 있어'라는 생각으로 계속 미루다 보니 어느새 마감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관리자의 독촉과 동료의 안쓰러운 시선속에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해 매일 초과근무를 하며 주말까지 나와 일주일만에 100페이지 계획서를 완성했다. 마지막 문장을 완성 했을때 느꼈던 희열을 잊지 못한다.


또 다른 장점은 알파벳카지노어서 얻게 된 이외의 결과이다. 고2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험 공부를 알파벳카지노고 있던 어느 새벽, 심야 라디오를 틀었다. 평소라면 절대 듣지 않았을 시간대의 방송이었다. 진행자의 목소리에 이끌려 시험공부는 하지 않고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고, 운좋게 다음 날 방송에서 내 사연이 읽혔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최신 유행이던 삐삐를 상품으로 받게 된 것이다. 그 삐삐로 나는 반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도 추억의 물건으로 간직하고 있다.


알파벳카지노에 대한 글을 쓰면서 미루는 것에 대해 수동적 회피가 아니라 자발적 선택이라는생각이들었다. . 나는 미루고 괴로워 할 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을까?’ 글을 쓰는 것이 힘들어 알파벳카지노는 마음을 이겨내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나는 여전히 지난 3주동안 매주 주어지는 과제를 괴로워 하고 알파벳카지노다가 결국 마감에 쫓기고 튜터의 친절한 마감 안내 이메일과 문자를 받고 나서야 과제를 겨우 써서 아슬아슬하게 제출했다. 이 글도 알파벳카지노다가 마감 시간에 겨우 완성했다. ‘퇴고로 완성하는 글쓰기’가 나에게는 ‘마감으로 완성하는 글쓰기’가 되었다. 벌써 다음주 글쓰기 과제를 걱정하고 있다. 분명 또 알파벳카지노고 괴로워하겠지.


알파벳카지노는 괴롭고 갈등하고 자책하게 하지만 미루는 시간동안 만나게 되는 더 달콤한 자유와 괴로움 후의 성취감이 있어 아직은 함께해도 괜찮을 것 같다다. <알파벳카지노의 천재들에서 나온 “미루는 일을 사랑하면서도 싫어한다” 는 표현은 나에게 딱 맞는 표현이다.




-지영, 퇴고로 완성하는 글쓰기 캠프, 25.3.25





*<퇴고로 완성알파벳카지노 글쓰기 캠프에서 한달 동안의 퇴고를 거쳐 완성된 글입니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tterpassion/barewriting/contents/250130114621667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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