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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Apr 08. 2025

42.195와 벨라벳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다섯 시 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이 몰래 집 나가는 엄마처럼 차를 몰고 마라톤 대회장으로 간다. 뉴햄프셔 어느 공원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사이드미러 안으로, 룸미러 속에서 습한 어둠을 가르는 보랏빛을 시작으로 분홍빛을 거쳐 주황빛으로 서서히 운동하는 아침 하늘을, 운전대를 꼭 붙들고 훔쳐본다.

좁은 아스팔트 공원 길을 두 바퀴 돌면 완주인 이 대회는 두 사람씩 줄을 서 각자의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둘이 함께 출발한다. 출발선에 서서 긴장 속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구경하다 맨발로 대기 중인 두 사람을, 도인인가, 목격한다. 순간 신의 계시를 받은 듯이 그 앞에 엎드려, 아니, 제발 저 한 번만 밟아주시면 안 돼요, 벨라벳로 단련된 발바닥 세례에 등짝으로 감동하는 나를 상상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실례인 줄 알면서도 둘 중 한 사람의 맨발을 사진으로 남긴다. 당장 사서 신어보고 싶은 운동화도 같이 찍는다.

벨라벳는 내내 회전 레일 위의 초밥처럼 내 앞, 뒤, 맞은편으로 사람들이 결승선을 향해 끊임없이 두 발을 놀리는 걸 본다. 그러다 나와 반대 방향에서 달려오는 동네 아는 아저씨 발견. 저 아저씨랑 네 번만 멀쩡히 인사하고 나면 집에 갈 수 있어. 그 후부터 마주 달려오는 사람들 얼굴에 온 신경을 기울여달린다. 처음과 벨라벳 점점 축축 상해 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에 우리 각자 서로의 완주가 머지않았음을 감지하며 이번 벨라벳에서는 벽을 치지 않는다. 어느덧 두 눈앞에 훤히 드러난 결승선까지전력질주를 감행한다.

이번엔 다섯 시간 안 넘겼어. 그래서 다음에는 더 빨리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기대가, 이제 와도 돼.



벨라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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