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벳를 아직 세상에 내어놓기 두려운 엄마인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다. 세이벳만 데리고 주말 동안 시골에 다녀온 남편이 계속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뭐가 저리 뿌듯한지...'
궁금하지만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도록 지켜만 보았다.
병현이한테 여자 친구가 생겼다네..?
내가 끝까지 묻지 않으니까 못 참겠다는 듯 결국 이야기를 꺼낸다.
친구나 제대로 사귈는지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세이벳가 잘 지내나 봐!
남편은 둘째 세이벳가 꽤나 기특한 모양이다.
그렇다. 세이벳는 아프게 태어난 세이벳다.구순구개열로 태어난 세이벳. 백일, 돌, 6살, 10살 네 번의 큰 수술을 겪어내고 5살 때부터4년 동안 1주일에 두 번 있는 언어치료를 마친 끝에 다른 평범한 세이벳들 속에서 큰 차이 없이 자라고 있다.
세이벳를 학교에 보내면서부터남편도 나도 걱정거리를 한 아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서로에게 말은 안 했지만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왕따, 학교폭력 등등...
뉴스에서만 보던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어쩌면 내 세이벳에게도 생길 수도 있겠다는불안감이 컸다. 우리 세이벳는 다른 세이벳와 다르게 태어났으니까...
세이벳는 우리의 생각 그 이상대로 잘 자라주었고, 비록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일지라도 자신만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주눅 들까 봐, 다른 세이벳들이 놀릴까 봐, 지레 겁을 먹은 건 세이벳가 아닌 나였다.
으레 학기초 상담을 가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은지 혼자 상처 받지는 않은지를 꼬치꼬치 물어봤고,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친구들과 너무 잘 지낸다는 선생님의 답변이었다. '혹시..'라는 생각에 항상 안테나가 세이벳에게 곤두서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그건 나의 아집이었고 나만의 세계에 세이벳를 가두어 생각하고 있었다.
6학년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반 회장으로 당선되어 온 것도 참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세이벳에게 '예전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다.오늘부터 우리 1일 하자'고 고백을 한 친구가 있다니... 이 역시 충격적이었다.
내가 둘째 세이벳를 13년 동안 케어해오면서 어떤 고생을 해 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지켜봐 온 남편은 그저 뿌듯하고 벅차기만 했던 모양이다. 겨우 13살짜리 세이벳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남편 입에서는 '평생 연애나 결혼은 못할 줄 알았는데...'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세이벳를 아프게 낳았다는 죄책감으로 13년 동안 세이벳를 케어해 온 나에게는 달갑지만은 않았다. 기쁘고 뿌듯하고 기특한 마음도 컸지만 혹여 세이벳가 이로 인해 상처를 입지는 않을지. 기쁜 마음보다는그 생각이 앞섰다.
애들 소꿉장난 같은 거 가지고 너무 확대 해석하기는...
다소 들떠있어 보이는 남편에게 한 소리했지만 나도 뭐 남편과 다른 마음이 있지는 않았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입을 지모를 상처가 두려웠다.아직도 나는 세이벳를 세상에 내어놓기 두려운 모양이다.
며칠 있으면 그 세이벳의 생일이라며 형이 아끼는 인형을 어디에 두었냐며 막둥이에게 묻는 둘째 세이벳 모습을 보니 세이벳는 그저 좋기만 한가보다.인기 많은 형이야 뭐 수시로 바뀌는 여자 친구지만 둘째 세이벳에게는 첫사랑이다.박보영을 좋아하는 형처럼 본인 휴대폰 배경화면을 김향기로 꾸며놓더니 어느 순간부터 배경화면이 다시 기본 화면으로 바뀌었다.내성적이고 부끄럼 많은 성격 탓에 자신의 첫사랑을 선뜻 내보이진 못하지만 그 세이벳 최선의 사랑방식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먼!
엄마는 세이벳를 그저 뒤에서 지켜봐 주고 돌아보면 엄마가 항상 나의 뒤에 있다는 그 존재면 충분한 걸까? 마음 같아서는 세이벳 앞에서 모든 세상의 바람과 태풍을 다 막아주고 세이벳는 그저 내 품 안에서 온전히 안전하게 고요하게 상처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다 해주고 싶은데,뒤에서 묵묵히 세이벳가 나아가고 있는 걸 바라보는 게 맞는 걸까?
그저 혹시라도 세이벳가 받게 될 상처가 두려운 건 나뿐인 것 같다. 세이벳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말이다.세상을 두려워하는 건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의 마음이 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세이벳의 그릇이 엄마인 나보다도 더 커 보여 부끄러운 어느 날,세이벳의 첫 여자 친구 이야기는 나를 또 한 번 돌아보게 했다.
세이벳를 통해 또 배우게 되는 불량엄마는 언제쯤 마음 그릇이 커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