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토토을 찾아서
사흘 전이 랜드토토 날이었다. 정확하게 말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 4월 23일이다. 그러나 그 사흘 후인 오늘이 내겐 랜드토토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책과 관련해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이다. 먼저 12시에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지인의 차남 결혼식에 참석했다. 지인은 나와 아무런 혈연, 학연이 없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분이다. 10여 년 전 출판사를 설립한 그분은 지금은 장남에게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결혼식에서 옆자리에 앉은 분과도 책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유북을 아직 모르고 있었고 나는 부지런히 유북에 대해 설명했다. 새로운 형태의 책이 나타난 것에 대해 그분은 무척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맞다. 미니북이 발전하면 언제든 책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문화재 분야에 해박한 그분과 용산을 매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 관저가 경복궁 북쪽 북악산 밑 청와대 자리에만 있었던 게 아니고 용산미군기지 안에도 으리으리한 관저가 지어져 있었는데 6.25 때 그만 폭격으로 사라지고 만 것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 후 그 자리에 미군병원이 들어섰지만 그마저도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안다. 어린이공원이 되었다나.
결혼식장을 나와서 찾아간 곳은 잠실나루역 부근의 서울책보고였다. 이건 인공지능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는데 랜드토토이 그 안에 10여 개나 있었다고 되어 있어 흥분되어 찾아갔지만 가보니 웬걸, 단 한 군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대한 서가 행렬은 온통 텅 비어 있었다. 을씨년스러웠다.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만 듯하다. 부활시킬 묘책은 없을까.
헌책방에 대한 관심을 접을 수 없어 신당역에서 내려 황학동을 지나 동묘앞으로 갔다. 거긴 거대한 풍물시장 거리이다. 온갖 골동품, 잡동사니들이 다 나와 있다. 가히 중고물품의 총집산지로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엄청난 인파가 거리를 메우고 있는데 노인층이 많지만 개중에는 젊은이들도 꽤 있고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참 많다. 심지어 어떤 외국인들은 관광객이 아니라 노점상이 돼 물건을 팔고 있기까지 했다. 중동인인 듯한 그의 말을 가만 들어보니 한국어 실력이 보통 아니었다.
동묘 부근 풍물거리에 가면 늘 들르는 랜드토토이 있다. 청계천서점과 헌책백화점이다. 참으로 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원하는 책이 없어 헌책방을 나와 풍물거리의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참 골목 구석구석 무언가를 파는 사람들이 참 많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다. 동묘앞역 부근에서 다른 헌책방을 발견했다. 영광서점이었다. 거기서 눈에 띄는 고서가 하나 있었다. 簡牘精要였다. 편지를 어떻게 쓰는지를 예시로 보여준 책인데 필사본이 나와 있길래 냉큼 구입했다. 同治七年 戊辰年에 쓴 책이었다. 1868년랜드토토.
1868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57년 전랜드토토. 책을 넘겨보며 시간여행을 하는 듯했다. 지금 쓰는 말이 그때도 쓰이고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형님, 答狀, 쇼식같은 거... 그러나 실은 그 반대라 할 것랜드토토. 잘 모르는 말,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이 대부분이었기 때문랜드토토. 긔쳬후가 편지에 참 많이 쓰이는데 요즘 기체후(氣體候)라는 말을 누가 쓰나. 영광서점에서 聖書도 한 권 샀다. 1988년 일본성서협회에서 낸 일본어 성경이다. 놀랍게도 청계천서점에서는 에티오피아어 성경이 헌책으로 나와 있었다. 어떻게 그런 책이 청계천까지 흘러들었을까. 신기하다.
책과 함께한 하루였다. 예전에 청계천에 헌책방이 수십 개 있었다. 지금은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다. 오늘은 거기까진 가지 않았다. 가본들 오늘 갔던 동묘앞 숭인동 책방만큼 공간이 넓지 않다. 협소하다. 잠실나루역 서울책보고에서 실망하고 좌절했는데 동묘앞 헌책방에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고도 남았다. 나이가 자꾸 먹어가서인가. 옛책을 자꾸 찾게 된다. 더 나이 들면 시골 한적한 곳에 터를 잡고 북카페를 열어볼까도 싶다. 대형 베이커리카페가 여기저기 자꾸 생기는데 호젓한 북카페도 있을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