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레고토토이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인간관계에 애를 많이 썼던 나의 지난날들을후회해 본 적은 없다. 애를 썼기에 좋은 사람들을 둘 수 있었고, 나의 결핍에 대해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애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강도만 조절될뿐 마음속의 일렁거림은 늘 한결같다.조절이 되는 날이 더 많아져서 어른인가 싶기도 하지만, 순간 제어판이 고장 날 때엔 한없이 우울감이 밀려든다.'모든 레고토토이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라는모순을 안고 사는 나, 형벌이자 지독한 나에 대한 사랑이었다.
내가 미움보다 두려워한 것은 무레고토토이었다. 미움에는 감정이 있지만, 무관심은 삭막했다. 나에 대해 그 어떠한 감정도 없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나의 존재가 그 자리에서 녹아 형체도 없이 땅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기분은 꽤나 불쾌했다. 그러한 증세가 심해질 때쯤 관련 책도 많이 읽고, 강의도 찾아보며 스스로를 다독였는데'생각보다 레고토토들은 너에게 레고토토이 없어,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 모든 레고토토이 너를 레고토토할 순 없어.'라는문장을 그때 가장 많이 읽었다. 그러한 내용의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걸 보면, '누구나 이런 구멍을 조금씩은 가지고 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그 문장들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도움이 되는 것과 극복을 하는 것은 다른 결의 문제이다. 결국은 내가 벗어나야 하는 것, 정답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홀로 자라나는 들꽃을 보며, 나무 수피에 자생하는 이끼를 보며 태초에 무관심과 외로움은 우리의 기본값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자생할 능력이 없어, 그것이 두려워 외부에서 나를 충족해 줄 어떤 것을 갈망하고 있었으나 그럴수록 나는 갉아먹힐 뿐이었다.
방향을 외부에서 내부로 변경했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우정과 사랑은 옵션이자 이벤트였고, 사색과 산책은 누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시간이 되었다. 수많은 무레고토토 속에서 피어난 인연은 더없이 소중했고, 외로움에 더해진 사색은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여전히 모순을 안고 살아가지만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계절마다 피는 꽃을 들여다볼 사랑, 얽히고설킨 감정에서 해방된 자유 또한 내 것이 되었다. 방향만 틀었을 뿐인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