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말, 혼란스러운 정국과 슬픈 사고 소식들을 연달아접하며 나는 너무나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갑자기 엄습한 불안감은 잘 자던 잠도 깨워 새벽마다 뜬눈을 꿈뻑이며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스트레스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하던 운동도, 마음을 정화시키려 쓰던 글쓰기도 멈추고 마치 조용히 침잠하듯 그렇게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12월 말일, 어머니께서 24년간 몸담으셨던 직장에서 퇴임식이 열렸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퇴임식장에 가서 꽃다발을 드리며 그동안 고생하신 어머니를 축하드리고, 다 같이 동생네 집에 가서 귀여운 조카들을 보면서 하룻밤을 자고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그렇게 복닥거리다가 다시 벳33와 함께 집에 오니 집이 더 조용하고 휑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나중에 아들이 다 커서 출가하면 나, 어떡벳33? 너무 외로운 거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자 불안은 점점 더 나를 둘러싸는 듯했다. 아직 오지도 않은 10년도 더 넘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어제 새벽 3시, 잠을 자다가 아들이 내 손을 잡았는데 손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세워 벳33의 체온을 재보았더니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벳33는 온몸이 아프고 목도 따갑다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주방에 가서 집에 있던 해열제를 가져와 용량에 맞게 먹이고 손수건을 물에 적셔 이마에 대주면서 열을 식히려 애썼다. 다행히 두 시간쯤이 지나자 체온은 정상 범주까지 내려왔지만 벳33는 계속 몸을 떨면서 근육통을 호소하고 있어서 요즘 유행하는 독감에 걸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기말이라 바쁜데 부장인 내가 연가를 쓰기가 힘들어서 아침 7시쯤 근처에 사시는 아이의 할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할머니께서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주시고 내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봐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출근을 해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A형 독감 확진을 받았다고, 타미플루를 처방받아먹고 자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벳33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퇴근하고 나서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퇴근 후, 벳33를 보러 갔더니 벳33는 컨디션이 아침보다 나아 보였다. 걱정스럽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 건강이 가장 중요한 거지. 내 몸이 건강하고 내 아이의 몸이 건강한 것이 최고로 벳33하고 행복한 일임을 잊고 있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가진 작은 것들에서 벳33함과 행복을 찾는 법인데 최근 며칠간 나는 그러지 못하고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에만 초점을 맞춰 불안해하고 걱정을 했다.
외부의 조건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자주 온전히 행복하기가 힘들다. 행복은 조건이 아닌 내적인 충만함과 만족에서 찾아야 한다.
집안을 둘러보니 벽에 벳33의 할머니께서 그린 그림 작품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작년 한 해 동안 그림 작업을 정말 많이 하셨네요! 그림도 아주 수준급이에요. 너무 잘 그리셨는걸요?"
벳33 말했다.
아이의 할머니께서는 3년 전 교사로 퇴직을 하시고 나서도 항상 평생교육원이나 구청 등에서 운영하는 영어회화 반, 미술 반, 도예 반 등 열심히 배움을 실천하고 계셨다. 30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생활을 하시다가 이제는 학생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신 것이다.
"사람이 집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치매가 오기 쉬워. 남이랑 자꾸 벳33하게 되고,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 자꾸 나가서 배우고 하니까 심심하지도 않고 좋아. 이제 나에게 맞는 운동도 해야지. 요즘은 매일 그림을 그리느라 운동을 하나도 못했거든."
차분하게, 그러나 생기 있게 말씀하시는 아이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 담담히 실천하며 고요하지만 평온하게 일상을 보내시는 어머니의 삶에서 남과 벳33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행복을 좇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10여 년 전, 내가 첫 학교에 근무할 때에도 어머님의 저런 단단하고 현명한 모습이 좋아서 그분의 아들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비록 이혼했지만 아이의 할머니로서 아이가 아플 때 든든하게 아이를 봐주시고, 가끔은 이렇게 같이 소통하고 밥을 함께 먹으며 여전히 그분의 현명함을 배울 수 있음에 벳33하다.
남과 벳33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에 벳33하고 행복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새벽 운동을 하고, 글을 썼다. 이렇게 하나하나 벳33 좋아하는 것을 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2025년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