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생각보단 남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늘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을 해야만 만족스러웠다. 대부분 해외로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여행을 다녔었는데, 이번에는 겨울방학과 봄방학동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양가 쇼미더벳님이 계시니 요양보호사를 따놓으면 좋겠다는 가벼운생각에서 시작했고 하시는 분들이 시험이 어렵지 않다 하셔서 별생각 없이 도전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쇼미더벳보다 쉽지 않았다. 직장일과 병행하기에는 시간적 소모가 많았고 실습은 말 그대로 '노동'이었다. 실습하면서도 이미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으나남은 관문,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70대 어르신들도 붙는다는 시험이라서 우습게 여겼는데 절대 우스운 시험이 아니었다. 보강하러 주말에 갔더니 떨어지신 분들이 와서 듣고 계셨고 심지어 40대의 지인도 첫 번째는 떨어지고 두 번째 가까스로 붙었다.
'와, 70대도 붙는 시험에 떨어진다면 정말 창피하겠지!' 하며모의고사를 풀어보니 나 또한 가까스로 붙는 정도여서 시간을 내어공부해야만 했다. 요양지도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지금까지 나는 인간의 사는 삶에 대해서만 알았지 죽음까지의 인생에 대해서는 무지했다.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던 노후, 이렇게 까지 가까이서 본 적 없는 늙음의 양면, 이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질병, 관리와 도움, 그리고 임종까지의 과정을 공부하면서 놀람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가볍게'이거 꽤 재밌네?' 정도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진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집중하게 되었고,실습기간에는 매 순간이 성찰의 시간이었다. 쇼미더벳의 삶에 반드시 찾아오는 질병과 노환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대다수의 노인들에게 필요한 말벗해 줄 사람은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한 요양원의 어르신들이 고작며칠 오는 나에게 마음을 기대어오는 걸 느끼며 내 맘 한편이 아려왔다. 그들에게 '늙음'이란 노사연 가수가 말하던 '익어가는 과정'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어느 날 폐암 선고를 받았다. 다행히 좋은 암이라고 해서 절제하기 좋은 부위라 수술만 하고 한동안 쇼미더벳하셨다. 좋은 공기를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 산중턱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고 계신다. 아빠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일 폭탄을 맞고 있다. 시골집은 매일매일 몸을 놀리지 않으면 금세 폐허 같은 집이 된다. 여름엔 잡초를 뽑느라, 겨울엔 눈을 쓰느라 허리를 펼 겨를도 없고, 이곳저곳 고장 나는 시설 때문에 일하는 아빠의 손은 곱아있다.
시골집은 나무와 기름을 같이 떼는 집이라 아빠는 나무장작을 패느라 도끼질도 해야 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났는데 장작을 패다 도끼에 얼굴을 맞아 한쪽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있었다. 큰일 날 뻔했다. 곱은 손가락은 더 이상 펴지지 않고 밤마다 진통제를 먹어야 잠을 잔단다. 엄마도 워낙 지병이 많아 늘 긴장상태로 지켜봐야 한다. 80이 한참 넘은 어머니도 관절이 좋지 않아 계단을 거꾸로 내려오신다. 예전처럼 많이 드시지도 못하시고 자꾸 옛이야기를 꺼내시며 삶의 정리를 하려 하신다.
요양보호사 과정 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들은내 쇼미더벳님들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식이 지식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곧 내 쇼미더벳가 걸어가야 할 길이자, 내가 자녀로서 겪어낼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신 차려 잘 공부해 놔야 내 쇼미더벳의 필요를 잘 채워줄 수 있다. 가슴 아프지만, 눈물겹지만 내 쇼미더벳는 자꾸 늙어가고 있고 그들의 삶은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이, 곱은 손가락을 보며, 살이 내린 몸을 보며, 절뚝이는 다리를 보며 절실히 느껴진다.
요즘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가 인기라는데 내용이 쇼미더벳와 자식 간의 현실적인 내용이라 매회가 눈물폭탄이란다. 나도 이제 쇼미더벳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나의 아름다운 쇼미더벳을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한 내 쇼미더벳의 아름다워야 할 쇼미더벳을 돕고 싶다. 덜 외롭게, 덜 아프게, 덜 불편하게, 덜 그립게, 더 기쁘게, 더 웃게, 더 움직이게, 더 좋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돕고 싶다. 그래서 눈물폭탄의 드라마 같은 쇼미더벳기가아니라, 미소폭탄의 쇼미더벳이 되도록, 돌아가시고 후회의 눈물이 피부에 저미는 게 아니라 그리움의 눈물만 뺨 위에 흘러내리도록 애써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