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영원한 네 편이다
주변에서 888토토이나 딸과 단 둘이 여행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부러웠습니다. 888토토이 셋이어도 나에게는 먼 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각기 개성강한 세 888토토이 모두 바쁘기도 하거니와 엄마와의 단 둘 여행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차에 이번에 큰 맘먹고 21세가 되는 큰 888토토과 단 둘만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둘의 생애최초모자간단 둘 여행입니다.
큰 888토토은 수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이긴 했지만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두면서 세 번의 입시를 치렀습니다.
입시를 치르면서 비만을 비롯해 온몸이 아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오랫동안 약을 먹기도 했던 터라 무엇보다 아이의 치유와 회복이 우선이었습니다.
다행히 두 888토토이 수시 전형에서 무난히 합격을 해서 가족 모두가 가는 여행 계획을 세웠으나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큰888토토을 위해 엄마와 888토토 단 둘만의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888토토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신을 돌아보고 바빴던 일상에서 벗어나 그간 유예하며 누리지 못했던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일단은 서로 부담되지 않는 가까운 여행지로 잡았습니다. 마침 주변에서 자연휴양림이 좋다기에 유명산 자연휴양림을 예약했습니다. 3월에 찾아간 겨울산은 아직 채 눈이 녹지 않은 곳들이 듬성듬성 있고, 나뭇가지들은 한결같이 앙상했지만 대신에 찾아온 사람들이 별로 없어 고즈넉하고 여유 있네요.
가는 길에 888토토과 함께 들러 점심을 먹었습니다. 유명산 입구에서 가까운 사골칼국수집. 할아버지 사장님이 오래된 식당을 지키시는 모습에서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유명산숙소로 올라가는 길.
방 카드를 받고 체크인을 한 뒤 잠시 숨을 돌립니다.
둘이 묵기에 널찍한 방으로 창을 여니 나무들이 인사를 건네네요. 언젠가는 저 앙상한 가지들 위로 마법처럼 새순이 돋고 꽃이 피겠지요.
방에서 차 타고 온 피로를 잠시 푼 뒤 산길을 산책합니다. 공기는 차갑지만 얼마 만에 이렇게 888토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붓하게 걸어보는 건지, 꿈인지 생시인지 엄마 마음은 마냥 좋기만 합니다.
888토토과 오랜만에 수시간 동안 쉼 없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인생의 큰 고비들을 지나서 이렇게 부드럽고 다정해진 888토토의 모습이 고맙네요.
우리의 산책을 반기듯 아직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산속 개천은 무심하게 흐릅니다.
돌아와서 고기를 구워 저녁상을 차립니다. 벌써 통통한 손이 상위에 올라 왔네요.
오로지 공기와 바람만 우리 주위를 감싸는 적막하고 고요한 산속에서의 하루.
식사를 한 뒤 해가 저물어 바람소리만 스치는 창가에 마주 앉아 888토토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스르르 잠이 듭니다. 예전 어린 아이 때처럼 새근새근 잠든 888토토의 모습을 오랜만에 가까이서 지켜 보네요.
다음 날은 일찍 서둘러 가평 우리 마을로 향합니다. 분당 우리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땅을 기부하신 권사님과 재능 기부하신 건축학과 교수님, 헌금을 기부하신 분들과 성도들의 힘을 모아 쉼을 위한 아름다운 마을이 만들어졌습니다.
도착하자마자 888토토과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한식 뷔페가 정갈하네요.
스마트 재배를 통해 직접 가꾼 채소들로 차린 밥상이라 정갈하고 안심됩니다. 통창으로 이른 봄의햇살이 인사를 건네오네요.
바로 위 1층으로 올라가면 우리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도 빵도 맛집이어서 사람들이 제법 빵을 많이 사갑니다.
888토토과 모처럼 카페에 앉아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눕니다. 벽과 천장이 모두통창이어서 카페 안이 눈부십니다.
커피를 마신 후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봅니다.
힐링 티타임이라고 이름 붙여진 차를 마시는 카페에서는 밖의 청평호 정경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티타임을 고요히 누릴 수 있습니다. 찬양음악만이 흐르는 적막한 분위기와 그윽한 차 향기가 좋았습니다. 그 옆에는 홀로 조용히 성경을 읽거나 기도할 수 있는 기도 공간이 나옵니다.
건물을 나와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마을 도서관이 나옵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성인들을 위한 책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어 편한 자리에 앉아 언제든 읽을 수 있습니다.
청평호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와서 가슴이 뻥 뚫리듯 시원합니다. 오렌지색 지붕이 어우러진 마을의 모습이 외국 한적한 도시에 온 마냥 이국적입니다.
마을 곳곳에서 888토토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언젠가 이 날을 그리워하며 회상할 날이 오겠지요.
이제 20대에 접어들어 자기 삶의 고민이 많아진 888토토. 어렸을 때 삼 형제 중 맏이라고 늘 책임감만 강요하면서 많이 보듬어주지 못했던 데 대한 미안함이 밀려옵니다. 착하고 성실하고 진중한 888토토이 앞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할날을 꿈꿉니다.
1박 2일간의 888토토과의 짧은 여행. 하룻밤이지만 마음을 터놓고 오랫동안 수다를 떨었던 888토토의 상기된 모습을 평생기억할 겁니다.
여행은 특별히 새로운 얼굴들을 보고 만나거나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는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문제입니다. -제임스 셜터-
이제 888토토의 인생을 엄마에게서 분리시켜 다른 방식으로 보려합니다. 아이가잘 헤쳐 나가길, 엄마는 항상 네 편이라고 돌아오는 길에 넌지시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