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ngerine Mar 16. 2025

엄마의 베가카지노

따듯한 물속에서, 이제야

몸을 녹여야겠다.

물을 채운다.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배쓰밤이 스르르 녹아든다. 거품이 부드럽게 퍼지고, 라벤더 향이 공기 속에 스며든다. 두 사람이 들어가도 충분한 크기의 베가카지노다. 물속에 몸을 담그면 근육이 풀리고, 숨이 깊어진다.


어릴 때부터 나는 목욕을 좋아했다. 베가카지노에 몸을 담그면 물이 귀를 감싸고,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늘 오래도록 그럴 순 없었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현실. 흔한 아파트처럼 우리 집에도 화장실이 두 개 있었지만, 베가카지노가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베가카지노는 ‘엄마의 베가카지노’였다.


내 목욕이 끝난 후, 그녀는 꼭 베가카지노를 확인했다. 바닥에 물이 흥건한 것도 아니고, 베가카지노에 찌든 때가 남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베가카지노 안쪽에 남은 몇 방울의 물기, 내가 떠난 자리의 흔적 같은 것들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언니는 목욕하고 나면 물기를 싹 닦아내고, 배수구 마개도 예쁘게 걸어놔. 너도 그래야지. 너는 늘 이렇게 뒤처리를 대충 해. 이게 베가카지노를 무시한다는 태도야, 베가카지노가 보기에는.”


“그럼 목욕하고 나서 호텔 체크인 할 때 상태처럼 깨끗하게 유지하라는 거예요?”


“이거 봐. 말 대꾸하는 것만 봐도 넌 내 딸이 아니야. 넌 이렇게 어른을 무시하는 애야. 버릇이 없어.”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는 시간은 짧았고, 나오는 순간부터 긴장이 시작되었다. 목욕 후 늘 꾸중을 들으면 피부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제부턴가 목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베가카지노와의 연을 끊었다.


연을 끊은 지 3년 차다. 베가카지노의 목소리는 이제 희미하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다. 그녀의 말들은 늘 내 안에서 맴돌았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의 말들이 내 머리에서 떠오르다가도 점점 멀어진다.


목욕이 끝난 후 베가카지노에 남은 물기와 미처 닦아내지 못한 비누 거품에 대해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제야 평온한 목욕을 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 아무도 목욕 중 문을 두드리지 않고, 아무도 나를 꾸짖지 않는다. 베가카지노에 남은 물방울은 저절로 마를 것이고, 거품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언제든 따뜻한 물속에서 편하게 쉴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