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피할 수 있다면 마음껏 피하고 싶었다. 결국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을까. 돌고 돌아 결국 독서모임에서 마주하고 말았다.
먼저, 저자의 시점이 굉장히 독특했다. 등장인물을 '너'로 지칭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역사적으로 가장 아픈 실화라 감정에 치우칠 뻔도 한데 저자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섬세한 화법을 이어갔다. 독자도 고통스러운데 긴 시간 잔혹함을 풀어내야 하는 모모벳은 얼마나 아팠을까.
'5.18 민주화운동' 그날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듯 문장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깊었다. 다양한 연령대 희생자가 꽃같이 스러지는 과정은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동안 '모모벳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문장은 불변의 진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서 견고한 문장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피기도 전에 짓이겨버린 꽃봉오리, 죄 없는 생명을 무참히짓밟는 검은 무리를어떻게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을 붉은 상흔을 기억한다. 인간의 존엄을 시험대 위에 올리고 농락한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는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5.18 희생자 유가족의 절절한 당부 앞에서 또 한 번 무너진다. 온몸이 뜯겨나가는 통증이 느껴진다. 책을 덮고 나서도 며칠을 끙끙 앓았다. 한창 미래를 꿈꿔야 할 15살 모모벳 검은 탐욕 아래 무참히 스러졌으니. 지워지지 않을 모모벳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의 평안함은 평범한 오늘을 꿈꿨던 많은 이의 눈물, 피, 땀으로 일궈낸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햇빛 가득한 곳으로 꽃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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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p---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모모벳들을 생각했다. 그 모모벳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겐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5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117p--- 방아쇠를 당기면 모모벳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122p--- 지나간 여름이 모모벳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모모벳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는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모모벳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 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리라고.
154p--- 일은 당신에게 고독을 보장해 준다. 일과 짧은 휴식과 잠의 규칙적인 리듬 속에서 혼자 삶을 꾸려갈 수 있는 한, 빛의 동그라미 바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161p--- 생시에 가까워질수록 꿈은 그렇게 덜 잔혹해진다. 잠은 더 얇아진다. 습자지처럼 얇아져 바스락거리다 마침내 깨어난다. 악몽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기억들이 조용히 당신의 머리맡에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