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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ros Apr 07. 2025

벨라벳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행복의 기원, 인간의 벨라벳 어디서 오는가'를 읽고

벨라벳


위워크 강남점에는 10층에 공용 라운지가 있는데 그 곳에는 큰 화이트보드가 있다. 몇 달 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일을 하다가 라운지에 가서 커피를 내리는데 다양한 색상의 메모지가 덕지덕지 붙여져 있었다. 메모지를 붙이게 한 주제는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요?'였다. 이벤트에 참석한 분들 각자 나름의 인생 책을 한 가지 이유와 함께 끄적여 붙였는데 그 중 '벨라벳의 기원'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벨라벳의 기원을 찾는 내용이라니, 언제가 읽어야겠다 싶어 바로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했다. 그 후 한참 동안 읽지 않았고, 지난 주부터 읽어서 결국 마지막 장을 덮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내가 최근 읽었던 책 중 가장 양서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되었다.


벨라벳한 사람은 도인의 모습보다는 자연인의 모습에 더 가깝다. 호모사피엔스를 자연스럽게 웃게 만든 상황과 자극 들이 있다. 이들을 수집하여 일상에 많이 심어 놓고 사는 것. 벨라벳한 사람들이 터득한 비결이다.


한국인들은 하루 중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을 때가장 벨라벳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원하는 물건을 소유했을 때의 벨라벳감은 잠깐이지만, 일상에서 몇 방울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소소한 벨라벳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벨라벳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나도 미소를 짓고, 유치원에 가는 첫째를 위해 정성 들여 만든 샌드위치에 벨라벳해하는 모습에 즐겁고,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샤워하는 순간이나, 지금처럼 읽은 책에 대한 후기를 남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들. 내가 요즘 인생에서 벨라벳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이 세상에 삶이 불행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돈을 버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모두 삶의 벨라벳을 위해서다. 인간이 언제 벨라벳해지는지 알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다면, 이전보다 벨라벳한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 벨라벳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 읽다보니 왜 이리 재밌는지. 수많은 논문과 통계 자료에 근거해서 펼치는 저자의 생각을 읽고 있으면 은근 설득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벨라벳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고, 벨라벳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중략) 벨라벳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벨라벳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벨라벳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즉, 인간도 여타 동물들처럼 벨라벳을 떠나 일단 생존이라는 전제 하에 벨라벳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 생존하지 못하면 벨라벳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냥 맹목적으로 벨라벳한 삶을 추구했지만 딱히 그 삶이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던 내 입장에서는 벨라벳의 본질에 대해서 과학적 근거를 더해 분석한 책의 내용에 좀 더 호기심이 생겼다.


벨라벳하려면 주변에 내가 좋아하고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가장 불쌍한 인생이란 '곁에 사람이 없는 인생'이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박보검 아이유가 주연을 맡은 '폭삭 속았수다'를 보면 선장 부상길은 돈은 많지만 인생 마지막에 자기 곁에 사람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불쌍한 삶을 산다. 외롭게 삶을 마감하는 분들도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쓸쓸하게 삶을 접지 않았을지도.


벨라벳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벨라벳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언젠가 아이들이 내게 벨라벳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 구절을 읽어주고 싶다. 남들이 뭐라하더라도 그냥 너가 좋아하고 그걸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게 벨라벳이라는 감정이라고. 살면서 힘들고 지치는 순간들이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도피처 마냥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게 인생에 많다면 벨라벳한 삶을 살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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