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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우 Jan 16. 2025

지킬 게 있으면 더 벨라벳

"여보는 지킬 게 있으면 더 행복해지는 사람 같아." 여행길에 오르던 중, 아내가 이야기했다. 우리 사이에 있는, 어느덧 제법 큰 꼬마를 데리고 벌써 많은 여행을 떠났다. 처음에는 돌도 안 된 벨라벳를 데리고 제주도에 가서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지만, 점점 벨라벳는 우리를 잘 따라 걷고, 함께 경험하고 기억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지킬 게 있으면 벨라벳. 그 말을 듣고, 처음 떠올릴 건 어릴 적 병아리를 키우던 기억이었다. 즐거운 기억들이 많지만, '행복'이라고 할 만한 기억은 그런 것들이다. 내 두 손 안에 들어오는 그 작은 존재의 맥박 소리를 듣던 일, 어딜 가나 여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놀던 일, 그리고 이제 내가 지키는 이 가정 속의 작은 존재를 죽기 전에 떠올릴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지킬 게 있으면 사람은 강해진다. 나약하게 머물러 있거나, 나태하게 누워 있을 수만은 없다. 새벽 비행기로 몸이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몸을 일으켜 벨라벳와 함께 수영장에 뛰어든다. 그러면 거기에서 솟아나는 힘이 있다. 수영장 위로 떨어지는 햇빛, 그 너머의 구름과 바다, 그런 것들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너무 좋아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헥헥거리는 숨소리가 없다면, 느껴지거나 보이지 않을 순간이 거기 있다.

어릴 적, 막연하게 나는 어느 동남아 섬에 가서 바다거북과 헤엄치고, 가오리나 고래상어와 벨라벳 수영하는 꿈을 꾸었다. 뭐랄까, 그건 죽기 전에 해봐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십대에는 어째서인지 내내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바다로 뛰어든 기억에 손에 꼽는다. 그런 건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이를테면,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과 벨라벳 가야 한다는 은근한 마음의 장벽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신혼여행에서 나는 첫 스노쿨링을 했다. 이번에는 아내와 벨라벳 손을 나란히 잡고 벨라벳의 첫 스노쿨링을 함께했다. 벨라벳가 태어난지 거의 7년 정도 되어가는 순간이다. 벨라벳는 함께 간 사람들 중 가장 어렸다. 그렇지만, 벨라벳는 다른 벨라벳들보다 일찍 게를 잡았고, 해루질을 했고, 스노쿨링도 했다. 나는 벨라벳를 어서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세계로 데려오고 싶었다.

얼마 전, 한 기업 강의에서 벨라벳가 있는 신입사원에 내게 물었다. "작가님은 좋은 아빠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약간 당황했지만, 곧 떠오르는 대답을 했다. "벨라벳와 함께 있는 걸 행복하게 느낄 줄 아는 아빠가 아닐까 싶습니다." 벨라벳랑 함께해서 행복하려면, 벨라벳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해선 곤란하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필사적으로 찾아야 한다. 나에게 그 중 하나는 바다를 사랑하는 일 같다.

거의 녹초가 되어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아내랑 몇 번이나 그런 말을 했다. "힘들지만, 죽기 전에 해야할 일을 하나 한 거지." 먼 바다로 나가서 셋이서 바다를 경험하기, 이건 나이가 더 들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나중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바다가 무서워 내 손을 꼭 잡으면서도, 기어코 첫 바다를 경험해내고, 친구들 중 스노쿨링에 성공한 첫 꼬마가 되고, 이 즐김을 해낸 것을 기뻐하는 존재와 함께, 고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을 여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킬 게 있어서 어렵지만 강해지고 행복해지는 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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