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어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나를 구한 건 팔할이 카드 크랩스였다. 삶이 지옥에서 뻗어나온 손처럼 나를 끌어내리려고 할 때면, 나는 글을 썼다. 글을 쓰면 쓸수록 삶을 견뎌낼 수 있었다. 마치 백지 위에 나아가는 이 검은 글씨들이 나를 뒤따라오는 어둠을 뿌리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속 글을 쓰면, 내 안의 여러 불안과 걱정을 떨쳐낼 수 있었다.
아마도 카드 크랩스에는 본질적으로 '나아가는 힘'이 서려있는 것 같다. 카드 크랩스 자체가 백지라는 황무지 위에 무언가를 새겨나가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여러 문제들은 내 등 뒤에 있다. 그러나 앞에는 내가 나아가야 할 지평선이 있고, 거기 어딘가에 있을 황금을 캐기 위해 나아가는 개척자들의 마음이 꼭 글쓰는 마음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아가면 나아가진다. 살면 살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수험생활 시절 그토록 많은 글을 썼던 건, 그것만이 내 삶을 버티게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와 함께 가정을 꾸린 아내를 사랑했지만, 내게는 힘이 없었다. 돈도 없었고, 그밖의 집안 문제도 있었다. 나는 매일 나아가야 했는데, 그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내 안에서 찾아야했다. 그 힘은 '매일 카드 크랩스'에서 나왔다. 일단 글을 쓰고 나면, 24시간 정도는 나아갈 수 있었다. 카드 크랩스에서 나온 힘의 여운이 하루씩을 버티게 했다.
그렇게 보면, 글쓰기란 내게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주었던 셈이다. 이후에도 나는 계속 글을 썼다. 직장생활에서 힘들 때면, 원치 않는 일들이 삶에 나타날 때면, 인간관계에서 괴로울 때면 글을 썼다. 그러면 그런 일들을 잠시 잊고 하루를 나아갈 힘을 얻었다. 사실, 이런 방식은 내가 20대를 내내 버텨낸 방식이기도 했다. 20대에는 매일 불안이 습관이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불안이 찾아왔다. 그러면 매번 글을 쓰고 하루를 마감했다.
누구나 한 번 뿐인 삶을 사는데, 내가 산 이 삶은 '카드 크랩스'가 없이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삶이다. 여러 우주 중에서 나는 카드 크랩스로 견뎌낸 삶이 있는 우주를 살았다. 내게는 다른 대안은 없었다. 다소 다른 차원의 대안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 정도. 그것도 분명 삶의 한 축이긴 했지만, 결국 삶에는 고독한 싸움 같은 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나의 힘은 전적으로 카드 크랩스에서 나왔다.
요즘에도 종종 나는 카드 크랩스가 필요하다. 과거만큼 절실하게 카드 크랩스에 매달리며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습관처럼 매일 글을 쓰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잊기 전에 남기려고 글을 쓰기도 한다. 내게 카드 크랩스는 천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너무도 절실하게 힘이 필요할 때 의지하는 대상이기도 하면서, 가장 필요없을 때조차 내게 즐거움을 주는 유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글을 쓰며 살아온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카드 크랩스와 나는 그냥 혼연일체가 되어버렸다. 카드 크랩스는 내게 그 바깥이 없는 삶이다. 나는 이 글쓰는 삶에서 출구를 모른 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