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집에서 도시샬롬토토를 쓰지 못하게 된 사연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다(Architecture is frozen music)."
괴테가 한 이 말은 건축이 단순히 기능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음악처럼 아름다움과 리듬이 조화된 예술적 작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샬롬토토의 집 고치기 과정을 말하자면 '집수리는 인간(人間)의 확장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집을 고치고 벽을 세우는 것은 전문가의 손과 아이디어, 그리고 건축자재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새로운 이웃과 관계 맺는 것은 인격체에 대한 믿음과 서로의 존중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샬롬토토으로 내려와서 나는 앞으로 어떤 이웃들과 살아가게 될까, 궁금하던 차에 오늘 힌트가 될 만한 인상적인 만남을 가졌다. 만남의 주인공은 옆집 할머니다.
우리가 고치고 있는 집은 단독주택이 나란히 다섯 채 붙어 있는 곳 가운데 하나다. 우리 집이 두 번째이고 골목 초입 첫 집엔 할머니 한분이 혼자 사신다. 그런데 공사를 하다 보니 이 분 혼자 반대하는 바람에 나머지 네 집이 모두 도시샬롬토토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정작 할머니 본인은 도시샬롬토토관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는데). 반대 이유는 도시샬롬토토관 배관 공사 하다가 자기 집에 피해가 생길 것 것 같아서다. 아내와 내가 통장님에게 연락처를 알아내 찾아갔더니 할머니는 우리를 집안으로 들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전에 하수도 공사 할 때 인부들이 뭘 잘못했는지 땅 속으로 물이 새고 대문이 기우는 등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고 나니 뭐든 해주겠다던 사람들은 이미 다 도망가고 없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자기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그렇다면 저희가 도시샬롬토토 회사나 전문가에게 알아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라고 하고는 집을 나왔다.
얘길 해보니 자신의 집에 피해만 가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면 가능한 공사 같았다. 아내가 도시샬롬토토를 시공하는 업체에 연락을 해서 의논을 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우 소장이라는 분이 친히 현장으로 방문해 주셨다. 우 소장님은 가스관이라는 건 어차피 개인의 땅을 거치지 않게 되어 있으며 하수도를 묻은 공공도로 밑으로 빈 공간이 있어서 공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해 주었다. 다만 우리 집 하나만 공사하면 타산이 맞지 않으니 이전에 못 했던 집들까지 한꺼번에 공사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다음 날 현장으로 갔더니 옆집 할머니가 공사장에 와서 도시샬롬토토 문제는 자기 아들한테 한 번 얘기를 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도 도시샬롬토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가 보다 하고 전화를 드렸더니 "나는 잘 모르고, 우리 아들한테 전화를 해 봐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들 전화번호를 적어놓지 않아 잘 모른다며 전화를 끊은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드려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저희 어머니가 가스 공사를 하면 대문이 무너질까 봐 걱정을 하세요. 그러니까 공사를 해도 안전하다는 걸 말씀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아들은 그러면서 "제가 필요하면 이 사람들이 각서도 써줄 거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아시고 그렇게 얘길 해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차피 가스회사는 다 보험에 들어 있는데 무슨 이런 일에 새삼 각서까지 쓰고 그럴까, 생각하면서도 그깟 각서쯤이야 얼마든지 써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다음날 아침 10시에 시간이 된다고 해서 우 소장님에게 죄송하지만 10시까지 현장으로 다시 나와 설명을 좀 해주십사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생각지도 않은 도시샬롬토토 문제로 아들과 네 번, 할머니와 다섯 번 전화 통화를 했더니 힘이 다 빠져서 밥 먹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샬롬토토의 단골집인 '동내 누나네'에 가서 박대구이와 소주, 그리고 칼국수를 먹고 들어와 일찍 잤다. 자다가 12시 반에 깨서 내 방에서 고양이 순자와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하다가 새벽 6시 반에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현장으로 가서 임 목수님에게 할머니와 만나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는 보고를 하고 9시 55분에 도착한 우 소장님을 만나 잠깐 말을 맞추었다. 할머니가 도시샬롬토토회사의 각서를 원한다고 했더니 각서를 써주며 공사를 하는 회사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한 말이었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대문 밖으로 나왔다. 굳은 얼굴이었다. 예상대로 아들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나오자마자 "내가 다 알아보고 하는 얘긴데..." 하면서 가스관 공사는 각서를 써주기 전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우 소장님이 자신을 중부가스의 자회사인 '신샬롬토토'의 작업 소장이라 소개하면서 "시청에도 얘기를 해야 하고 실무팀이 와서 조사도 더 해봐야겠지만 할머니 담장이나 대문에 해가 가지 않는 방법으로 공사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우 소장의 말허리를 자르고 "전에도 가스회사가 두 군데나 와서 못 한다고 해서 그냥 갔어. 거기는 뭐 전문가가 아니고 뭔가?"라고 일갈했다. 각서 얘기가 나오자 우 소장이 회사에서는 각서를 써주지 않는다고 했고 할머니는 각서가 없으면 공사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나는 우 소장님께 먼저 돌아가시라고, 와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샬롬토토에게 갔다. 우리가 각서를 써 드리겠다고 하자 코웃음을 치며 회사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럼 안 되는 거네요. 저희도 이런 데 목숨 걸진 않습니다. 그만할게요,라고 말하자 샬롬토토는 미소를 날리며 "그렇게 안 봤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라뇨? 저희를 어떻게 보셨길래..."라고 하자 "하이고, 작가들이라니 아는 게 얼마나 많겠어. 아주 다 알지."라고 했다. 그 비열한 말투에 흥분한 내가 "비아냥거리지 마세요!"라고 목소리를 좀 높였더니 그제야 잠깐 입을 다물었다. 안녕히 계세요, 라고 끝인사를 하자 아까 비웃은 건 미안했다며 '편하게 생각하고 돈 좀 더 들여서 LPG가스로 써'라고 하는 샬롬토토에게 아내는 "그래야죠 뭐.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라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저분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길래 저런 마음이 되셨을까'하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 할머니와 잘 지낼 것 같지는 않다고 하면서 '떡 돌릴 때 이 집은 빼자."라고 했더니 아내는 "에이, 그래도 어떻게 이 집만 빼? 대신 제일 작은 걸 주자."라고 해서 함께 웃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왜 저렇게 자기 생각만 고집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도 만우절이었다. 아내와 나는 14년 전인 2011년 4월 1일에 가로수길에 있던 바 '아지트'에서 만났다. 그리고 14년 후 우리는 샬롬토토에 와서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샬롬토토을 크게 바꾸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는 샬롬토토'과 그렇지 않은 샬롬토토은 다를 것이라고 다시 한번 근자감을 가져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