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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Mar 26. 2025

블랙토토 말아야 할 일들

그 사이의 블랙토토 공상

원래도 이따금씩 편블랙토토이 있었다. 증상의 원인에 대해 확언할 수는 없지만 주로 무리했을 때,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았을 때 나타난다. 편블랙토토은 보통 눈앞에 갑작스러운 빛이 번쩍하다가 시야의 일부가 일그지는 증상으로 시작된다. 그 증상이 사라질 즈음극심한 블랙토토으로 이어진다. 찾아보니 이런 증상을 안구성 편블랙토토이라고 한단다.대학원을 다니면서 시작된 증상이니 30대 초반부터 시작된 증상이라 보면 된다.(나이 탓일까? 대학원 탓일까?)보통 타이레놀 1~2알이면 통증이 가라앉기 때문에 병원을 찾을 만큼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한동안 뜸했던 증상이었는데(당연하다. 일을 관뒀으니까.) 일주일 전 뜬금없이편블랙토토이 찾아왔다. 그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깬 이후로도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편블랙토토이 시작되었던 전날 밤부터 타이레놀을 복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타이레놀은 산모들이 먹어도 안전한 약으로 잘 알려져 있어 산모들이 여러 원인으로몸이 아플 때 주로 복용하도록 권해진다. 그런데 얼마 전, 블랙토토들을 충격에 빠뜨린 기사가 등장했다.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의 성분)을 복용할 경우, 아이가 ADHD에 걸릴 위험이 2배로 높아진다는 기사였다.저명한 학술지에 실린 연구 결과라고 하니 그저 암암리에 떠도는 풍문으로 흘려듣기에는 영 찜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먹을 수 있는 약이 몇 없는 블랙토토 입장에서 타이레놀 복용조차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가혹한 동시에, 이대로 블랙토토의 고통으로 신음할지 아니면 눈 딱 감고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이 고통에서 해방될지 고민이 되었다. 그 고민의 순간이 심각하게 짜증이 났다. 한동안 손에 쥔 약을 째려보다가 산모의 고통은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질 거라는 믿음으로 손에 든 약을 입에 넣고 목구멍 깊숙이 삼켰다. 블랙토토은 이내 사라졌다.


세상에 인간이 탐닉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이 늘어난 탓일지, 블랙토토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도하루에도 몇 개씩 늘어난다. 하지 말 것, 먹지 말 것, 보지 말 것, 맡지 말 것, 바르지 말 것 등등- 새로운 '말 것' 정보가 계속 업데이트되는 통에 무언가 행동하기에 앞서 항상 멈칫한 채 정신없이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블랙토토 사용 권한에 대한 정의] 제목을 달고 책을 출간한다면 꽤나 쏠쏠한 이득을 볼 수 있으니 주변에 권해보는 것을 추천한다.각종 통제들로만 가득 채워둔드럼통에 절여지는기분. 분명 방금 전까지 'Open'팻말을 걸고 있었는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 'Close'팻말로 돌아서는 바람에 가게에 들어갈지 말지망설이게 되는 기분.그런 눅눅한 기분 탓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라앉게 된다.(사실은 호르몬 탓일지도.) 더구나 나는 고위험+고령의 산모라는이유로블랙토토 말아야 할 일들이 일반적인 블랙토토에 비해 훨씬 많다. 보통의 블랙토토로 보이는 사람들 역시 자신만의 여러 어려움과 난처함을 겪고 있을 것이 자명하기에 이런 투정이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잘 안다. 게다가 누가 등 떠밀어 임신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니블랙토토를 가로막는 세상, 나를 우려하는 가족,나에게 [NO!!] 싸인을 흔들어 보이느라 피곤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향해, 나는 어떤 원망도 할 수 없다.


틈나는 대로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을있는 힘껏 상상하는 일이다. 우선 남편이 있는 이스탄불로 날아간다.(10시간 비행기를 타야 블랙토토만 그 과정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스탄불 집에서날이 좋으면 남편과 개 파이와 함께 산책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주로 가던 카페에 가서 맛있는 음료를 먹는다. 날이 좋지 않으면 빗소리를 들으면서 남편이 만들어주는 파스타를 먹어도 좋겠다. 그리고자기 전 남편과 침대에 누워 하루 일과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서로의 교육관을 나눈다. 때로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국내 여기저기 여행을 가보기도 한다. 우선 친구가 살고 있는 동탄으로 간다. SRT기차를 타고 가면 부산에서 동탄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친구와 놀 수 있도록 친구집 근방에 숙소를 잡고, 육아 용품 쇼핑을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것도 좋겠다. 혹은 예전에 살던 안양 평촌으로 가보는 것도 좋다. 그 근방에서 잘 다니던 빵집이나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도 분명 안정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종종 서울에 있는 친구를 불러 오랜만에 밥을 먹고 안부 인사를 나누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혹은 임신 안정기라는 것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태교 여행을 가기도 한다. 해외까지 가는 것은 너무 과할 것 같아가까운 제주도로 간다. 눈부신 바닷가를 눈에 담고해변을 걷는 것 만으로 분명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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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기가 되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안정'을 찾고 조금 더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관대해질 수 있을까 궁금할 때가 많다. 나는 지난 임신 때 두 달간 입원을 통해 여러 산모들을 마주했다. 그들을 관찰하면서흔히 말하는 임신 안정기라는 것은 정말 주관적인 기준일 뿐이라는 것을알 수 있었다. 가령 한국 남성의 평균키가 174cm라고 해서 모두가 174cm 근방에서 고만고만하게 자라는것이 아니듯, 임신 관련 통계 역시 통상적인 통계가 그렇다 뿐이지 각각의 경험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때문에 임신에 안정기라는 것은 딱히 없고, 아마도 내 경우는 출산이 잘 마무리될 때까지는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 제동을 걸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리석게도 결국 이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걸 알면서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희망 회로를 돌리게 된다. 하긴 그런 것 역시 내가 할 수 블랙토토 여러 공상과 상상 중 하나일 테지.어쩐지 씁쓸하게 캄캄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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