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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06. 2025

나의 쇼미더벳

내게 쇼미더벳라고 여길 만한 쇼미더벳가 있었던가. 어느 시절에나 자주 만나고 친밀했던 사이는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지금 와서 그들을 쇼미더벳라 부르는 게 망설여진다. 왜 그렇지? 다 진짜였는데. 이에 대해 쇼미더벳는 지금 연락하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 때문에 쇼미더벳라고 쇼미더벳하지 않는 건 아니야. 결혼식을 가지 않아 미안해져서 연락이 끊긴 쇼미더벳, 그냥 내 상황이 좀스러워 뜸해진 쇼미더벳, 전화가 왔는데 바빠서 회신도 하지 않아 멀어진 쇼미더벳, 그냥 흐지부지된 쇼미더벳까지. 가만 보니 다 내 탓이다.


무리도 아니다. 나는 스무 살 장교로 임관해서 이사만 9번을 했다. 성인이 되기 전에도 집에 풍파가 많아 서울부터 경기도 외곽까지 전전했다. 그래 다 환경 탓이네. 그렇게 쇼미더벳하니 속이 편하다. 낯선 동네에서 만날 혼자 놀다 보니 혼자 놀기에 익숙해졌다. 독서와 영화 글쓰기는 외톨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취미다. 혼자 해도 불쌍하기보다는 있어 보인다. 바야흐로 '있어빌러티'의 시대 아닌가. 나도 쇼미더벳 많고 여기저기서 불렀으면 책은 집어던졌을 것 같다. 얼어 죽을 글은 왜 써 놀아야지. 근데 난 예나 지금이나 폰이 조용하다.


그러니까 군인 신분으로 지방 곳곳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다리를 꼬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가가 되고 싶었다. 이런 고립이 어떠한 결실로 승화가 되기를 바랐다. 쇼미더벳 노트북을 붙잡고 뭐라도 써보려고 하면 날 불쌍하게 보시는 카페 주인이 그날 남아서 버리게 생긴 쿠키를 서비스로 줬다. 어쩐지 날 긍휼히 여기는 카페 사장의 눈빛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때 이후로 내 작업실은 스타벅스가 되었다. 그때 내 직장이 강원도 횡성이었는데, 스타벅스 찾아서 강원도 원주터미널 앞까지 가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이런 나를 받아주는 곳도 있었다. 트레바리 독서모임. 우연히 본 광고에서 다들 책을 들고 환히 웃고 있는데, 나도 저기 끼워주면 좋겠다고 쇼미더벳했다. 그래서 금요일에 퇴근하고 서울 안국역까지 운전을 해서 갔다. 총알택시 못지않게 횡성에서 종로 안국동까지 2시간 컷이었다. 낯을 가리는 내가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서 저 여기가 글쓰기 모임 맞나요? 그들은 나를 잘 받아줬다. 맨날 책상머리에 앉아서 우울한 글이나 써대는 내 글이 좋다고 했다. 나는 번 돈을 십일조와 헌금으로 내면서 예배당의 목자처럼 은혜로운 마음을 얻어갔다.


멤버십이라는 인위로 묶였지만, 독서모임은 우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신기한 일은 그들 중에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오직 관심사로 모여서 대등하게 말을 하고 이득과 손해라는 비열한 잣대 없이도 유쾌했다. 그로부터 이제 16년이 지났다. 나는 아무 목적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월급도 보너스도 퇴직금도 없이 득도 해도 되지 않는 취미로 삶을 점철했다. 요즘은 내가 유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쇼미더벳 없이 살아온 덕에 진정한 쇼미더벳를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쇼미더벳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쇼미더벳 고한다. 네가 다음 생을 만나면 사람 많이 만나고 다녀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라도 읽고 쇼미더벳 많이 사귀어라. 지금 이 삶도 꽤 괜찮은데, 그래도 다음 삶이라면 쇼미더벳 많은 삶도 한 번 해봐야지. 교실 뒤에서 애들 모여 있으면 머리 비집고 들어가서 너도 맞장구 좀 쳐라. 폼 잡는다고 혼자 집에 가지 말고. 애들이랑 돈 모아서 피시방도 다니고 짜장면도 먹고 그래. 너 졸업식 때도 혼자 집에 오고 그런 건 내가 봐도 아니다. 우리 형 말마따마 학교 다니면서 뭐 한 거냐 등신 머저리야. 이런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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