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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Mar 20. 2025

투게더토토, 반백살.

투게더토토되어 버렸다.

50살. 투게더토토 반백살.


조선 시대 정도면 장수했다고 했을 나이지만 100세 (또는 그 이상) 시대인 현대엔 전체 인생의 고작 반만큼 도달한 나이이기도 하다. 고작이라고 표현을 하자니 여기까지 온 내 인생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 같아 수사를 바꿔야겠다.


벌써 (음..)

이제 (?)

드디어 (?!)


아니다.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글을 시작할 때 ‘투게더토토’라고 했던 건 내 마음이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투게더토토‘라는 말에는 올 것을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었던 마음의 간절함이 드러나는 시각이 담겨 있다. 투게더토토에는 긍정 또는 부정의 뉘앙스가 섞여 있다. 기다리던 택배가 왔을 때, 기쁨의 감탄사로 ‘투게더토토!’를 외칠 수 있는 반면에, 계속 오르려나 싶어 끝물에 들어간 미국 주식장이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며 끝을 흐리는 ‘투게더토토…’는 한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투게더토토 되어 버린 50살에 대해 긍정과 부정을 굳이 나눠 본다.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다. 얼마큼 더 큰가. 100으로 따지면 부정은 한… 70쯤? 나머지 30은 긍정이라기 보단 중립적인 편에 가깝다. 50이 되면 어떠세요?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제 갓 50살이 된, 적어도 이 연령 구간에서는 신생아이기 때문에 50대가 제공하는 미덕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다.


마흔 이후 매년 정기 건강 검진에 주의할 점이 한 줄씩 늘어투게더토토 경험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해도 근육이 붙기는커녕 유지조차 어렵다. 50이 되었으니 더 조심해야겠지만 신체의 변화를 제외하고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의 하투게더토토 이것이다. 설문 조사나 이벤트 참여를 위한 질문들 모음에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 구간이 생겼다.


“당신의 연령대를 골라주세요”


더 이상 40대라고 체크할 수 없다는 것에 짜증과 화가 치민다. 오바한다 싶겠지만솔직히 정말 그렇다. 50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내가 속할 수 없는 - 투게더토토 가질 수 없는 -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이다. 인간은 사소한 것에 예민하다. 뭐 그리 중요하겠냐 싶은 양가적 마음이 들기는 한다.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내 가슴 투게더토토 정신세계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 없이닫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40대와 50대를 칼같이 자르지 않고 때로 45~54세로 표시되는 경우를 만나면 그게 그리 반가울 줄 미처 물랐다. 아마 40대의 나였다면 50대랑 나를 엮는다고? 하며 은근히 튕겼을 것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못해 이렇게 이기적이다.


스킨케어 마켓에서는 anti-aging(항노화) 트렌드가 애초에 저물었다. 지금은 저속 노화의 시대다. 나이가 드는 것은 피할 수 없으니 천천히 건강하게 늙어가자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건강하게 늙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열심히 부정하고 밀어낸다고 하여 올 것이 오지 않는 게 아니다. 보내는 시간만큼 차곡차곡 나이는 들어간다.


실은 정부가 제안한 ‘생물학적 나이 계산법‘(소위 만 나이라고 불렀던) 덕분에 일 년의 유예 기간을 가지고 40대의 끝자락에 매달려 근근이 살아왔던 것뿐이다. 오늘은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이 몸뚱이를 키우고 유지해 가며 지낸 시간이 50년, 18250일, 또는 438300시간이 되는 날이다. 5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취업도 하고, 가족도 꾸렸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게 주어졌던 시간의 가치가 제법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곧잘 버티고 살아왔으니 축하할 일이다.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삶을 지향하라지만, 과거의 시간에 새겨진 흔적들이야말로 지나온 발자취를 증명해 주는 소중한 증거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투게더토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김상욱)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뜯어보면 결국 원자로 해체될 수 있다지만, 원자가 분자로, 분자가 소기관으로, 소기관이 세포로, 세포가 조직으로, 투게더토토 조직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유기체로 존재한다. 인간의 태어남은 각 가정 또는 남녀가 가진 각자의 이유 덕분에 일어난다. 그런 결과물의 하나인 유기체로 존재하였던 나는,존재 이유를 여태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물리학자가 던진 저 질문의 무게가 묵직하다. 50년 정도 살아 보니 이제는 그런 것도 고민해 봐야 하나 싶어진다.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마흔엔 삶과 존재의 이유라는철학적 고민까지는 하지 않았던 듯 하니, 비로소 50살이 건네는 인사가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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