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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pr 12. 2025

나의 최고령 글벗, 라이브 바카라 마지막 인사

'라이브 바카라 인생에 등장해주어서 고마워요.'

그를 만난 건 2년 전, 광주시문화재단에서다. 일 년간 글쓰기 강좌를 맡았는데 그곳에 반백의 그가 있었다. 일흔이 넘은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청춘을 바쳐일하고물러난 자의 연륜이 묻어났다. 자신의 취향을 알고 취미를 향유하는 노년의 여유가 보기 좋았다. 암 투병 중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깨달았을 그에겐 배우는 자의 겸손이 있었다. 어느 날, 강의가 끝나자 그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암 투병 중이라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할 듯합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인생 마지막을 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책을 낼 수 있을까요?" 2023년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해 겨울, 그는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를 냈다. 아내와 자녀,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다. 그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그는 두 번째 책을 만들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 짧은 시간 암세포는 온몸에 퍼져 있었다. 방광에서 폐로, 그리고 뇌로. 집 안에서 걷다가 방향 감각을 잃고 넘어졌고 운전하다 어이없는 접촉사고를 냈다고했다. 수십 년간 익숙하게 쳤던 컴퓨터 자판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자꾸 오타가 난다고도 했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요즘 유일한 낙이었는데 이런 일도 생기네요. 허허." 허탈하게 웃는 그에게 할 말을 찾았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에서 세 개가 되어버린 암과 싸우면서 어렵사리 글을 썼다. 9월 중순, 바람에 습기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의 글은 반듯하고 단단했다. 극심한 통증으로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28편의 글을 쓰고 고쳤다. 직접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그는 자신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구술했고 둘째 딸이 대신 받아 적었다. 두 번째 책은 그렇게 그의 마지막 기력을 끌어모아 완성됐다. 그가 쓴 후 내가 읽고 의견을드렸고 둘째 딸이 받아 수정해서 내게 넘겼다. 나는 다시 읽고 글을 손봤다. 두 번째 책은 자신이 떠나는 날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셋은 그해 말 출간을 목표로 함께 부지런히 쓰고 읽고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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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바카라선생님의 두번째 에세이집


“내년 벚꽃 구경하러 가는 게 소원입니다.”

2년 전,첫 책준비하며 그는 벚꽃이 필 때까지 살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의 바람을 담아 책 표지에 만발한 벚꽃을 넣었다. 그의 글을 수도 없이 읽고 고치고 표지 디자인을 결정하고 마지막 인쇄를 넘기면서 매 순간 난 기도했다. '오래오래, 선생님의 소망처럼 여든다섯 살까지 봄마다 벚꽃 보며 살게 해 주세요.' 이듬해 그는 흐드러진 벚꽃 사진을 내게 보냈다. 첫 책 표지 그대로였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벚꽃 사진

올해도 가족들과 퇴촌에 벚꽃 구경하러 가겠다고 했었다. 올해 꽃샘추위는 대단했다. 새 계절이 오는 걸 이렇게 시샘할 수 있단 말인가. 메마른 겨울바람이 불었고, 때아닌 눈이 내렸다. 꽃이 피기에 봄은 너무나 차가웠다. 올 듯 말 듯 유난히 더디 도착한 올봄, 그는 벚꽃이 피기 시작할 때, 벚꽃을 마주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났다. 향년 73세.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 장례식장 입구엔 막 입을 벌린 벚꽃봉오리가 촘촘했다.


사는 게 바빠서 안부를 여쭙지 못했을 때도 선생님은 일상의 단상을 적은 글을 보내며 내게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의 글은 너무나 반듯해서, 난 그가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남은 나날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잊었다. 이제는 그의 단아한 글을 볼 수 없다는 게, 그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야 비로소 깨달아져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돌아보니, 선생님은 나를, 내 실력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그저 믿고 맡겨주셨다. 조카뻘인 나를 늘 깍듯하게 대해주셨다.


선생님의 마지막 페이스북 글


"몸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어 정리수준을 다급하게 하게 됩니다.

지난 주와 이번 주가 다르고 다음 주 선생 만나면 항암 포기하고 호스피스 찾아 갔으면 합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건 알지만 마약성 진통제도 잘 안 듣는 상황 속에서 이 고통은 참기가 너무 힘드네요.

또 글을 써서 보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으면.... 내 인생의 무대에 등장해주셔서...그것도 거의 끝날 무렵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작은 딸에게 책 준비했다 전하라고 말하려 합니다. 글로서 삶을 살리는 가치있는 일에 큰 진전이 있기를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그가 라이브 바카라을 예감하고 내게 보낸 메시지. 며칠 후, 선생님 생각이 나서, 많이 힘드실 것 같아서, 정말 생과 사를 오가실 것만 같아서 연락을 드렸다. 내가 여쭌 안부에 선생님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라이브 바카라 인생에 등장해주어서 고마워요.'

라이브 바카라 프로필은 어느새 마지막 인사로 바뀌었다. 그는 나의 최고령 수강생이자 마음을 나눈 글벗이었고,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존경할 수 있던 인생 어른이었다.

'선생님, 그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고통 없는 천국에서 이제 편히 쉬세요. 나중에 그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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