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슬롯은 개인에 대한 재판이 아니다
민사, 형사, 헌법케이슬롯은 다르다
제 박사전공의 상위전공이 헌법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헌법전공자로 분류합니다. 계엄과 관련하여 논문을 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포인트를 잡아서 어떻게 써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되다 보니 아무래도 중계되는 화면과 논란들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갑갑해집니다. 헌법재판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만 제대로 잡혀도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논란으로 인해 나라가 반으로 찢어진 것을 보고 가슴이 아픕니다.
우선 첫 번째로, 많은 분들은 변호사들은 모든 법을 다 알고 모든 케이슬롯을 다 할 줄 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기본적인 민형사 케이슬롯이야 어느 변호사나 기본적인 건 할 줄 알겠죠. 하지만 더 세부적으로 하위법령들이 적용되는 사안들로 들어가면 그 법률과 관련된 사건을 수행해 본 적이 없는 변호사들은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 하고, 현실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수행하기가 어렵습니다. 형사사건을 경찰이나 검찰 출신들이 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헌법재판은 수행해 본 경험이 있는 변호사가 거의 없습니다. 이는 헌법재판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권리'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아니고, 그렇다 보니사건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민사재판은 두 개인이 서로 자신의 권리를 놓고 누가 옳은 지에 대해서 다툽니다. 형사재판은 개인에 대해서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국가(검사)가 개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개인은 자신은 그 정도로 잘못한 게 없다고 방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민사케이슬롯에서 서로 다투는 사람들은 똑같은 개인이기 때문에 법원이 중간에서 평등하게 대합니다. 그런데 형사케이슬롯은 조금 다릅니다. 법치주의 국가는 인치, 즉 개인이 다스리는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개인이 공동체를 다스리다 보니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처벌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게 반복되자 '사람은 못 믿겠고, 시스템으로 국가공동체를 운영하자'라고 해서 만들어진 게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그래서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권력이 개인을 함부로 처벌하면 안 됩니다. 지배하는 자가 피지배자를 함부로 처벌하는, 함부로 자유를 빼앗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게 법치주의 국가여서 그렇습니다. 즉,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폭력의 배제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형사케이슬롯에서 무죄가 추정되는 것 또한 그래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처벌 강도가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또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케이슬롯은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은 무엇일까요? 왜 제가 이 글의 부재를 케이슬롯이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고 했을까요? 헌법재판은 국가기관이나 법률에 대한 판단만 합니다. 우리는 국회의원, 판사, 검사, 대통령, 총리, 장관을 한 개인으로 보지만, 헌법재판에서 그 개인들은 하나의 국가기관으로 분류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서는 '개인'에 대한 처분이 절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지금 대통령이 케이슬롯 과정에 있고, 한 정당은 탄핵을 남발한 걸 우리가 다 봤는데 무슨 소리냐고요?
홍길동 장관이 있다고 합시다. 홍길동 장관에 대한 민형사소송은 [홍길동]에 대한 재판입니다. 이와 달리 홍길동 장관에 대한 탄핵은 '홍길동 [장관]'에 대한 심판입니다. 즉, 민형사소송은 홍길동이라는 개인이 다른 사람 또는 국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주장하는 소송이지만 케이슬롯은 그 사람의 권리나 자유와 무관하게 그 사람이 장관의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그게 국가의 안전을 위해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그 직위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재판입니다.
헌법재판에는 다양한 종류의 재판이 있지만 어떤 재판도 개인의 자유나 권리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대통령이 되고 그 직위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게 존재하나요? [장관]이 될 권리는요? [검사]나 [판사]는요? 그런 권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공직에 있는 사람은 그 공직에서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케이슬롯에서는 개인이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게 그가 맡은 업무가 원활하게 수행되고, 국가공동체의 안전과 국민들의 자유와 기본권이 보장받는데 문제가 없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란죄의 성립에 대한 판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윤석열] 개인에 대한 것입니다. 현 사안에서 내란죄가 인정되려면 형사소송에서 윤석열 개인이 국가공동체에 미친 해악이나 미칠 수 있었던 해악이 개인의 자유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해야 할 정도로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즉, 계엄선포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해도 그게 개인의 자유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해야 할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형사소송에서 이론적으로는 무죄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꽤나 자주, 형사소송에서 "잘못한 건 맞는데 처벌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말을 접합니다. 그 말은 '도덕적이나 도의적으로 봤을 때 잘못된 건 맞는데, 국가가 개인의 자유나 재산을 강압적으로 박탈해야 할 정도라고는 할 수 없어'라는 의미입니다.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간통을 해도 된단 것이 아닙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것은 간통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부부관계는 이제 공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런 내밀한 관계에까지 국가가 개입해서 처벌해서는 안되기도 하고, 처벌하는 것이 범죄를 예방하는데 효과도 없단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간통을 할 경우 여전히 민사소송에서 손해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은 간통이 잘못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행위가 내란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형사케이슬롯에서 매우 치열한 공방이 오갈 겁니다. 그건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자유나 생명을 완전히 박탈해도 되는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때는 계엄선포 행위와 실제 일어난 일들이 얼마나 위법한 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모든 증인들의 발언이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 하나의 디테일들을 판단해야 하고 그 판단들의 총합이 계엄선포 행위가 얼마나 위법한 것인지를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며, 그 결과 개인을 국가가 무기징역이나 사형으로까지 처벌해야 할지 여부가 판단될 테니까요.
하지만 케이슬롯은 다릅니다. 계엄선포행위가 윤석열 개인을 내란죄로 처벌할 정도로 위법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국가공동체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서 그 개인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헌법재판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 행위 하나, 하나의 디테일들에 대한 위법 정도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케이슬롯에서는 윤석열이란 개인이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있을 때 기본적인 헌법체계를 존중했는지,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호하고 보장받기 위해 노력했는지, 국가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그리고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했을 때 그런 노력을 할 것이라는 신뢰도 고려될 겁니다.
2025년의 대통령 케이슬롯의 특징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케이슬롯을 보면, 그 과정은 형사재판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의 변호사들의 배경을 보면 왜 그런 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대통령 측의 변호사들은 대부분, 특히 시니어들이 검사 출신입니다. 그들은 주로 형사소송을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실무에서 멀어진 지 오래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헌법재판관이었던 조대현 변호사가 있긴 하지만, 그분도 실무에서 멀어진 지 매우 오래된 분입니다.
반대로 소추인 측인 국회 측은 어떨까요? 일단 대리인단의 대표가 김이수,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입니다. 이 분들은 연세가 있으셔서 실무를 하진 않으실 겁니다. 실무진은 어떨까요? 한 번씩 화면에 보이는 김진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완전히 실무를 담당했던 연구관 출신입니다. 그리고 더 디테일한 실무를 담당한 변호사들 중에서는 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변호사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국회 측이 헌법재판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 국가를 사분오열시키고 있는 쟁점들은 형사법정에서는 모두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쟁점들 중에는 케이슬롯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들이 매우, 매우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통령 측 변호사들이 모두 자기 정치만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요소도 없진 않겠지만, 문제를 접근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패턴을 보면 그건 그들이 검사 출신이고 주로 형사재판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내란의 죄를 저지른 것이 법정에서 이미 판단되었다면 케이슬롯은 증거나 증인조사도 하지 않고 파면을 결정했을 겁니다. 하지만 내란의 죄가 성립과는 별개로 계엄을 준비, 선포 및 시행한 과정에 위헌적인 요소가 많고,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대통령이라는 직에 있는 것이 국가적으로 봤을 때 공동체의 안녕과 헌법체제에 위험할 것으로 판단되면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용할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란까지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탄핵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떤 케이슬롯관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특정 케이슬롯관을 비판하거나 옹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시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런 말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꼬치꼬치' 캐묻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케이슬롯관들은 왜 그렇게 디테일한 것들을 물어볼까요?
모든 재판에서 증인의 말과 증거들은 '객관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판단하기 위한 근거들입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에서도 그런 증거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그 과정에서 엇갈리는 증언들이나 증거는 재판관들이 신빙성을 평가해서 더 신뢰할만한 입장, 주장이나 증거를 바탕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합니다. 한 재판관이 정확히 의원이었냐, 인원이었냐를 물어본 것은 그를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정문을 쓸 때 대통령이 뭐라고 말했는지를 명확한 워딩으로 명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하는 재판관이 그런 디테일에 더 신경을 쓴 건 그가 결정문 초안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게 그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한 특정한 예단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통령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왜 그렇게 증인을 받아주지 않느냐고, 불공정한 재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형사재판과 헌법재판은 다릅니다. 형사재판에서는 모든 디테일들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은 '대통령의 직을 유지시키는 게 바람직한가?'와 관련된 증거와 증인들만 중요합니다. 그리고 재판부는 시작할 때부터 4가지로 쟁점을 정리했죠. 그렇다면 증인과 증거는 그 쟁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부분들만 검토하면 됩니다. 그런데 대통령 측이 요구하는 증인들은 디테일 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여부에 대한 신빙성과는 관련되어 있지만 큰 틀에서 대통령직의 유지 여부와는 크게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기각한 증인들은 형사재판에서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헌법재판에서는 변수를 만들만한 증인들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일을 더 열어준 것 자체가 헌법재판소가 사실 매우 관대하게 방어권을 보장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증인들의 증언과 증거로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정리가 되고 나면 이제 그 사실들을 놓고 케이슬롯관들이 규범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2월 18일로 잡혀 있는 기일은 지금까지 수집된 증거와 증언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즉, 아직 케이슬롯관들은 증언과 증거들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리와 판단조차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작업은 모든 기일을 마친 뒤에 이뤄질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인용/기각 여부는 사실관계가 정리된 후에 4가지 쟁점을 기준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케이슬롯관들이 보이는 디테일한 모습들에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규범적인 평가를 할 때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은 누구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형사재판을 법원이 지금의 케이슬롯처럼 끌고 나갔다면 그건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케이슬롯은 다릅니다. 다시 말하지만 탄핵시판은 개인에 대한 심판이 아닙니다. 대통령 케이슬롯은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사소송과 케이슬롯은 많은 면에서 달라질 수 밖에 없고, 형사소송만큼 대통령 개인의 권리를 보장해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대통령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직위를 공석으로 방치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 경제, 정치, 안보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게 당연히 더 중요한 목표로 설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대통령직을 유지할 권리는 누구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 권리를 인정하더라도,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그 권리보다는 국가의 안전과 발전,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이 더 우선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