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우리 동네가 아닌,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도시에서 다녔다. 시내에서 가장 큰 학교였고, 한 학년에 열두 개 반. 600명이 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 낯선 환경 속에서 나는 나답지 않게 조금은 주눅 들어 있었다. 낯선 곳에서 시작된 열일곱의 봄.
다행히도 우리 학교에는 '카지노 용어 제도'라는 전통이 있었다. 신입생의 적응을 돕기 위해 1학년 1반 1번과 2학년 1반 1번이 카지노 용어-멘티가 되어 서로를 챙기는 방식이었다. 학교의 배려와는 달리 대부분은 얼굴 한 번 보고 인사 몇 번 하다 관계가 끝났다. 하지만 우리는달랐다.
내가 카지노 용어를 처음 보러 간 날, 카지노 용어는 크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책을 한가득 가슴에 품고 걸어가다 나와 마주쳤다. 카지노 용어의 말투는느리고 조용했다. 나와는 반대였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잘 통했다. 유머 코드도, 마음결도.
우리는 고등학교 내내 편지를 주고받았다. 카지노 용어의 글씨는 동글동글 매우 귀여워서 종이를 펼칠 때면 괜히 웃음이 났다. 친구들은 우리가 계속 연락하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 어떤 아이는 멘토 카지노 용어가 부담스럽다며 마주치는 것조차 피했으니까.
가장 또렷한 기억은 고1, 내 생일 아침이다. 혼자 자취하던 나는 미역국도 없이 아침을 맞았다. 하필이면 그날은 기말고사 첫날이었다. 친구들도 시험 끝나고 축하해 주자며 생일은 잠시 미뤘다.
그런데 카지노 용어가 교실로 찾아왔다. "시험 잘 보고, 생일 축하해."
작은 초콜릿케이크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날 밤, 자취방 작은 책상 위에서 초를 켜고 케이크를 잘라먹었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 조각 케이크 한 입이, 나를 얼마나 위로했는지 모른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카지노 용어와 연락을 이어갔다. 카지노 용어는 자기 아버지 회사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봐 주기도 했다.
그리고 몇 해가 흐른 뒤, 내가 결혼을 하던 날. 카지노 용어는 그 자리에 와주었다.
낯선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처음 손을 내밀어준 사람. 카지노 용어이자 친구였던 그 사람.
카지노 용어를 생각하면, 언제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
따뜻한 편지지, 교복 자락, 케이크 속 초의 불빛.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오던 조심스러운 발걸음.
인생의 어떤 계절에는,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