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낮 시간은 유난히 짧다. 땅 위에 어둠이 깔렸다.저녁을 먹으려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다시 마당으로 내려갔다. 바깥 벽 한쪽에 서 있는 시스템 베팅 옷자락이 보였다. 인기척에 놀라 재빠르게 몸을 피하는지 그녀가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컴컴한 곳에서 뭐 하고 있어. 빨리 나와” 내 목소리를 듣고 안심이 됐는지 그 애는 모습을 드러냈다. “밥 먹었냐?” “나 엄니한테 쫓겨났어. 엄니 잠자면 집에 가려고. 있을 데가 없어서 느그집에 왔당께” “지금 저녁밥 먹을라고 밥 차려 놨응께 밥 먹게 방에 들어가자.” 시스템 베팅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 사람을 밖에 두고 밥을 먹을 수는 없다. 빨리 방으로 들어오라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들어왔다. 같이 저녁밥을 먹고 나서 할머니는 시스템 베팅가 걱정되는지 왜 집에 안 들어가냐고 묻자 엄니가 나가라고 해서 그냥 나왔다고 말한다. 나가란다고 집에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하냐며 잠자기 전에는 집에 가라고 하자 엄니 잠자면 살며시 집에 들어간다고 한다. 고작 열다섯 살 시스템 베팅는 엄마와 자주 부딪치는 일이 잦았다.
시스템 베팅엄마는 옷차림이 일 년 내내 같은 스타일이었다. 사시사철 철지난 허름한 남자 재킷과 몸빼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녔다. 외출할 때도 몸빼바지는 여전했다. 윗도리 옷은 한복 저고리를 입고 저고리 속에 티셔츠를 입고 몸빼바지를 입는 특이한 옷차림으로 외출했다.
그녀는 목포에서 살다가 자식들 데리고 해남으로 이사 와서 남의 집 품팔이로 연명하며 살아왔다. 시스템 베팅도 도시에서 식모 살다가 집에 내려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녀간에 서로 미워하는 사이다. 워낙 가난해서인지 시스템 베팅는 학교 문턱도 못 밟고 어린 나이에 남의 집으로 다니며 돈 번다고 말했다. 그 애는 자기도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남의 집 가서 고생 안 하고 남들처럼 학교도 다니고 할 텐데 자기는 아버지가 없어서 슬프다고 말했다. 자기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며 가정사를 이야기하곤 한다. 오빠 둘이 있어도 성씨가 달랐다. 밑에 있는 남동생도 시스템 베팅와 성씨가 다르다. 한집에서 형제간에 각자 다른 성씨를 쓰는 보기 드문 집안이다.왜 성씨가 다르냐고 묻자 두 오빠 아버지가 죽자 엄마가 자기 아버지 하고 살았었다. 자기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남동생아버지와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고 어린 시스템 베팅가 회상했다.
동생의 아버지는 말 구르마를 끄는 사람이었는데 돈을 잘 벌었는지 항상 쌀밥 먹고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말 구르마에 짐을 실어다 주고 운임을 받는 일을 했다. 시스템 베팅엄마도 어지간히 남편 복이 없었는지 그 남편마저 사고를 당했다. 짐을 가득 실은 말이 길을 가는데 어린 아이들이 말을향해 돌맹이를 던졌다. 돌맹이를 맞은 말이놀랐는지 갑자기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뛰는 말을 잡으려다가 넘어지면서 말발굽 아래로 들어가서 크게 다쳤다. 동생생부는 자리에 누워 생활해야 했다. 죽을 쒀서 시스템 베팅가 환자에게 떠먹이곤 했다. 누워있는 동생생부는 시스템 베팅가 떠먹이는 죽을 때로는 안 먹으려고 할 때마다 시스템 베팅가 빨리 먹으라고 성화를 댔다. 먹고 나아야 일어나서 일을 하면 예전처럼 행복할 것 같았다. 동생생부도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하늘나라로 갔다.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부재로 살림은 형편없이 빈곤해졌다. 해남으로 이사 와서 남의 품팔이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사는 게 힘들어서인지 고생하는 어린 딸에 대한 애착심은 조금도 없었다. 엄마는 화가 나면 시스템 베팅를 향해 “독살스러운 년”이라고 독설을 퍼부어 댔다. 시스템 베팅 또한 엄마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며 맞대응을 하곤 했다. “서방만 많았지 자식들에게 뭘 해준 게 있어야지”라고 소리 지르면 딸이 준 모욕감에 수치스러운지 시스템 베팅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기도 했다. 두 오빠도 도시에 나가 공장을 전전하고 시스템 베팅 또한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가야 하는 형편이라 엄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쌓였던 것 같다.
시스템 베팅는 어느 날 동네분이 소개해준 곳으로 식모 살러 간다고 말했다. 그 후로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로 떠났다는 말만 있었다. 시스템 베팅 말처럼 엄마 서방이 여럿 있었어도 지금은 한 사람도 없이 지지리도 못 산다고 마치 남의 얘기하듯 말했다.시스템 베팅엄마는 성경에 나오는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하고 똑같은 운명이었다. 사마리아 지역의 불더위에 여인은 한낮에 수가성 우물가에 물 길러 나왔다. 너무 더운 지방이라 그 시간에는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남의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자랑스럽지 않은 사생활 얘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그 지역을 지나던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 한 모금 청했다. 여인은 놀랐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도 하지 않은데 물을 달라고 청한 예수님을 보고 의아했다. 왜 자기처럼 미천한 여자에게 물을 청한 지 물었다.
“지금 네가 남편을 다섯이나 바꿨어도 네 마음에 만족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
정곡을 찌르는 예수님을 말을 들었다.
“이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니 ”
여인은 그런 물을 자기에게도 달라고 했다. 굳이 더운 날씨에 샘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을 본 여인은 영혼의 물인 생명의 말씀을 듣고 메시아임을 깨닫고 물동이를 버리고 동네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시스템 베팅어머니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진리의 길을 알았다면 사연 많고 곡절 있는 그런 삶에서 빨리 깨어서 자기 영혼을 위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의 운명을 책임져 줄 남편을 찾았지만 위안도 없었고 평화도 없었다. 곤고한 삶은 마음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늘 허기진 영혼으로 살았다.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찾았다면 모녀간에 서로 미워하며 상처 주는 그런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시스템 베팅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의 목마른 영혼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리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