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d3MH 현직 소방공무원입니다.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에세이집 &lt;당신이 더 귀하다&gt;를 썼습니다. ko Sun, 27 Apr 2025 03:45:06 GMT Kakao Brunch 현직 소방공무원입니다. 두 딸의 아버지입니다. 에세이집 &lt;당신이 더 귀하다&gt;를 썼습니다. //img1.daumcdn.net/thumb/C100x10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2axORcp2Gr742kJefYukwvSojHw.JPG /@@d3MH 100 100 너는 나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다. /@@d3MH/555 둘째가 학교에서 구름사다리를 타다가 떨어졌다. 아내는 별일 아닐 거라 했지만 내가 들여다보니 왼손과 오른손 팔목이 차이가 났다. 부러졌고만. 아니나 다를까 정형외과에서 X레이를 찍어 보니 부러졌단다. 아이는 도수 교정을 할 때만 눈물을 찔끔 흘렸다. 깁스한 팔을 들어 보이며 하는 말이, &ldquo;아빠, 오른손을 다쳤으면 큰일 날 뻔했어. 밥도 못 먹고&rdquo;였다. 마침 Tue, 22 Apr 2025 22:14:28 GMT 백경 /@@d3MH/555 목마른 길 /@@d3MH/552 모텔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주사기를 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나라도 드디어 갈 때까지 갔구나, 대놓고 팔뚝에 주사 바늘을 찔러 넣는 세상이 되었구나.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신고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지령 주소지로 이동했다. &ldquo;그런데, 주사기가 좀 커요.&rdquo; 신고자가 말했다. &ldquo;크다고요?&rdquo; &ldquo;네, 애기 팔뚝만 해요. &ldquo; &rdquo;팔뚝이 Wed, 16 Apr 2025 06:26:33 GMT 백경 /@@d3MH/552 빨대 /@@d3MH/550 연인이 타고 있던 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갑자기 달려든 고라니 때문이었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해서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지만 추돌 당시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었다. 현장엔 사설 레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도 출동 지령받고 바로 나온 건데 저들이 먼저 도착할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나, 궁금했다. 예전에 레카 기사들이 경찰 무전을 도 Fri, 11 Apr 2025 23:25:40 GMT 백경 /@@d3MH/550 인간의 틈새 /@@d3MH/538 원룸 건물 외벽에 사다리를 세웠다. 대원 한 사람이 사다리 후면에서 세로대를 잡고 지지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등반을 했다. 다행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틀을 타 넘고 사라진 대원이 잠시 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안에 계십니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담배 냄새와 지린내가 훅 끼쳤다. 노인은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침대와 장롱 틈에 끼어 있었 Mon, 24 Mar 2025 22:41:40 GMT 백경 /@@d3MH/538 직원 사망 알림 /@@d3MH/536 뒷머리가 쭈뼛 솟는다. 딸깍. 문서를 클릭하고 죽은 직원의 이름을 확인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다. 아마 같이 근무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문서에는 질병이라던가 사고라던가 하는 사망원인이 명확하게 쓰여있지 않다. 근 10년을 소방서에서 일한 짬바로 미루어 짐작한다. 자살했구나. 사람들은 소방관의 순직률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조직은 곪은 Thu, 20 Mar 2025 22:03:01 GMT 백경 /@@d3MH/536 우리가 잘 아는 어떤 남자 /@@d3MH/534 늦은 저녁, 골목길에서 젊은 남자가 노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ldquo;이 땅이 할머니 꺼예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rdquo; &ldquo;내일 아침 장사하려면 물건을 내려야 하니까...&rdquo; &ldquo;그런데 왜 짜증을 내면서 말해요? 사람 기분 나쁘게!&rdquo; 골자는 그거였다. 내 기분을 나쁘게 했다. 그쪽 장사 준비야 내 알 바 아니고 감히 내 잘못을 물었다. 그것도 짜증을 내면 Mon, 17 Mar 2025 22:17:22 GMT 백경 /@@d3MH/534 다들 집에 이런 아버지 한 분쯤 계시죠? /@@d3MH/531 &ldquo;뭐 필요하냐.&rdquo; 아부지가 말씀하셨다. 용산 아이파크몰에 가구단지가 생겼단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ldquo;식탁이요.&rdquo; &ldquo;가자.&rdquo; 안 그래도 오래돼서 다리가 덜덜거리는 우리집 식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ldquo;점심밥은 제가 쏘겠습니다 아부지.&rdquo; 아이파크 몰 4층에 도착했다.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 매장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태리어인지 프랑스어인지 읽히지<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otZXD1s-xowPuP8Q5UeXQxAMdwE.png" width="500" /> Sun, 16 Mar 2025 22:08:05 GMT 백경 /@@d3MH/531 사랑의 대가 /@@d3MH/526 실종자 수색을 나갔는데 현장이 눈에 익었다. 그때 그 노부부의 집이었다. 작년 여름인가 아내가 사라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나갔다. 아내는 수색 사흘 만에 집 근처 갈대밭에서 발견되었다. 목발을 짚고 걷다가 논둑 아래 비탈길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부패가 진행된 지 이미 오래여서 굳이 심폐소생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ldquo;엄마 돌아가시고 갑자기 아버지 치매 Sun, 09 Mar 2025 07:49:39 GMT 백경 /@@d3MH/526 원영적 소비 /@@d3MH/519 요즘 한 손에 잡히는 책은 보통 만 육천 원, 거기에 양장 커버가 더해지면 만 팔천 원을 받는다. 짜장면 두 그릇 혹은 치킨 한 마리를 먹을 수 있는 돈이고, 조조할인으로 영화표를 끊으면 콜라에 팝콘까지 더해 백여 분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돈이다. 무엇보다도 이 돈이면 55매짜리 아이브 2025 시즌그리팅 칼라풀데이즈 포토카드를 2박스나 구매할 수 있다(럭<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XIN7p1FLaWQWml55Fc6ynn6wggU.JPG" width="500" /> Tue, 25 Feb 2025 22:32:10 GMT 백경 /@@d3MH/519 다른 하늘 아래 /@@d3MH/512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스카프의 양쪽을 잡고 펼친 상태에서 둘둘 말아 기다란 끈처럼 만들었다. 그걸 문고리에 연결한 뒤에 목을 맸다. 시간이 오래된 것 같았다. 목 위로는 핏기가 없었고 꿇어앉은 다리 아래로 시푸른 시반이 보였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사람은 스카프 한 장에도 목숨을 잃는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걸 살 Wed, 12 Feb 2025 22:19:34 GMT 백경 /@@d3MH/512 나는 약발 안 듣는 진통제다 /@@d3MH/511 여자는 옷만 좀 입혀달라고 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와 어깨를 다쳤다고 했다. 다친 건 1년 가까이 되었는데 나일 먹으니 낫질 않는다고, 내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허리를 숙이지 못해 싱글 침대 위에 꼿꼿이 앉아있었다. 바지를 애벌레처럼 구겨 어린애들 옷 입히듯 양발에 끼운 뒤 허리춤까지 추켜올렸다. Wed, 12 Feb 2025 06:03:15 GMT 백경 /@@d3MH/511 정의와 혐오는 타협하지 않는다 /@@d3MH/509 혐오엔 쾌감이 있다. 약자를 짓밟는 순간의 쾌감, 생각이 다른 자를 매질하는 순간의 쾌감, 타인을 향한 혐오가 곧 나를 정의로 만든다는 착각에서 비롯한 쾌감. 쾌감에 중독된 사람들은 끝도 없이 미워할 이유를 찾는다. 세금 도둑놈. 병신. 이것도 이해를 못 하면 머리는 왜 달고 다니시나요. 쪽바리. 짱개. 간첩. 한남. 한녀. 애미 애비 없는(있어도 없는 Mon, 10 Feb 2025 22:07:05 GMT 백경 /@@d3MH/509 타인은 없다 /@@d3MH/508 아들이 감기에 걸린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지령서를 받으면 이맛살부터 찌푸렸다. 감기에 걸려서 뭐 어쩌라고. 그게 구급차를 부를 이유가 되는가? 구시렁댔지만 짬밥이 찬 뒤로는 좀 달라졌다. 염치없어 뵈는 지령에는 보통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생 아들을 엄마가 돌보고 있었다. 아들은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다. 의사소통도 눈을 깜빡이거나 으으, 소리를 Sun, 09 Feb 2025 21:28:09 GMT 백경 /@@d3MH/508 유튜브 나온 눈엣가시 아들 /@@d3MH/506 유튜브 출연한 영상 보고 아부지가 우셨단다. &ldquo;쌍노무 새끼,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사냐. &ldquo; 엄마가 전한 아부지 말이다. 그래 봐야 자기 욕으로 되돌아오는 걸 알면서도 그리 말씀하셨으리라. 부모님 속을 꽤 썩였다. 가출하고 쌈박질하고 하는 일반적인 속썩임은 아니고 나름 변태적이었다고 자부한다. 중학교 때 잘하던 공부를 관두고 느닷없이 만화가가 되겠다<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JWQ5EW-3Enu9JCx7T7wvDwleR_Q.png" width="500" /> Sat, 08 Feb 2025 08:27:03 GMT 백경 /@@d3MH/506 결말이 뻔한 이야기 /@@d3MH/505 담을 넘을까 하다 멈칫했다. 장갑 낀 손으로 꼭대기를 잡고 흔들자 담이 뿌리째 뽑혀나갈 듯 휘청였다. &lsquo;안 되겠는데.&rsquo; 하는 수 없이 옆의 철문을 타 넘어가기로 했다. 조금 높았지만 육중한 몸무게를 못 이기고 담이 무너져 전쟁 폐허처럼 변하는 것보단 나았다. 올해는 꼭 살을 빼야겠다. 생각했다. 철문을 넘었다. 문을 붙잡고 늘어지듯 넘어온 탓에 문이 조 Tue, 04 Feb 2025 22:41:43 GMT 백경 /@@d3MH/505 어디가 아프세요 /@@d3MH/504 &ldquo;똥이 안 나온다고?&rdquo; &ldquo;네.&rdquo; &ldquo;정말?&rdquo; 방송을 듣고 하는 말이었다. 밤 열한 시 즈음되었을 것이다. 레이저 프린터가 피잉 소릴 내며 종이를 빨아들이더니 출동지령서를 책상 위에 퉤 뱉었다. 정말이었다. 여섯 글자. 똥이 안 나온다. 똥이 한 열흘쯤 안 나왔을 수도 있다. 똥은 나오라고 있는 것이지 뱃속에 묵히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똥은, 그러니까 Mon, 03 Feb 2025 21:25:32 GMT 백경 /@@d3MH/504 명절에 식구들 모이면 꼭 나오는 이야기 /@@d3MH/500 고속도로 들어가기 직전의 땅 수 만 평. 지금은 대형마트가 들어선 그곳. 그 땅만 팔지 않았으면, 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 땅만 팔지 않았으면 은행 이자나 받아먹으면서 편히 살았을 텐데. 근사한 카페나 하나 차려서 손님이 오건 말건 니나노였을 텐데. 작은 집에서 기름 냄새 풍기며 명절을 맞을 게 아니라 어디 해외에 근사한 풀빌라 얻어서 다 함께 위스<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d3MH%2Fimage%2FBStOjjNtKzKE-76HTUHI13MJgx4.png" width="500" /> Tue, 28 Jan 2025 21:31:51 GMT 백경 /@@d3MH/500 사랑의 양자역학 /@@d3MH/497 자기가 소방서에서 밤새 일하면 나도 잠이 안 와. 술 많이 먹지 마. 내 속이 안 좋아. 스트레칭하면서 일하라고 했지? 덕분에 몸이 요새 얼마나 뻐근한 줄 알아? 신박한 잔소리라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한참 연극 무대를 준비할 때 교수님 카톡 프로필이 &lsquo;우리는 연결되어 있어요&rsquo;였던 걸 떠올리게 만드는 잔소리였다. 꿈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걸 믿나. 교 Sat, 25 Jan 2025 22:11:23 GMT 백경 /@@d3MH/497 내가 여기 살아있습니다 /@@d3MH/495 약이 떨어졌다. 책 나오고 정신없이 바빠서 정신과에 가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세 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 뒤론 잠이 오지 않았다. 세 시는 약속의 시간이다. 밤샘 근무 하는 날 꼭 그 시간 즈음 출동이 걸린다. 새벽잠이 없는 노인들이 일어나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는 시간. 술을 먹다 먹다 시간도 잊고 먹다 결국 자기 자신마저 잊고 도로 가장자리에 Tue, 21 Jan 2025 20:46:05 GMT 백경 /@@d3MH/495 구원 /@@d3MH/489 옆을 보니 내 머리가 있는 방향에 첫째 딸의 발이 있다. 자는 동안 몸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아니, 실은 한 바퀴 하고도 반을 더 돌아서 540도인지도 모른다. 몸부림치는 육체를 좇지 못하고 이부자리가 한구석에 도넛처럼 말려 있다. 아이는 온돌 바닥이 달래지 못한 한겨울의 숨을 맨몸으로 맞는 중이다. 나는 내 커다란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낸다. Mon, 13 Jan 2025 20:32:07 GMT 백경 /@@d3MH/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