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코로나 이후로는 해가 넘어갈수록 끔찍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행복한 순간들은 요즘에야 있는데, 그것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지나온 기나긴 터널을 돌아보면 그게 혹시 희망을 잃은 이유는 아닐까 싶었다.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이유는 꾸여꾸역 살고는 있으면서도 도무지 감사할줄 모르는 오늘의 자세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리고 그 근간에는 잘 먹지 못하는 게 자리하고 있으리라.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절식을 하다못해 단식을 하고 있는 나는 해야 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세이벳을 꾸려나가고는 있는데, 꾸려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평소처럼 빨빨거리고 잘 돌아다니고 누구 말대로 남이 보기엔 아주 여기저기 쏘다니며 챙기고는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엔 검은 우물같은 게 있다. 그 우물길이 깊어지고 길어지면 안 되므로 해야 하는 이 끝없는 과업들은 내게 어떠한 방지턱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근간에는 아주 강렬한 허무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뭘 좀 하려고 했더니 나라에선 시끄러운 일들이 연달아 이어진다. 세이벳 트라우마 치료가 시급하다. 한국은 빨리 돌아가느라 그런 걸 모르고 그냥 막 돌아가다가 크게 체하곤 한다. 그렇게 크게 체하면 잠시 쉬어가자고 하다가 다시 체하는 사회다. 그런 한국에서도 빠른 나는 살아가는 게 요즘 좀 버겁게 느껴졌다. 감사할줄 모르는 오만한 감정이 잠시 다가온 탓이다. 그럴 땐 바로 생각해야 한다. 감사할 것들과 오늘 하루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과 모래의 여자들에게서 탈출해 사다리를 걷어차지 않고 재빠르게 타고 올라온 것을 감사해야 한다. 강렬한 허무주의에는 해결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의문이 있다. 아주 단순하다. 할 게 많아서 한다-쉽다-시기 질투를 산다-미움받는 일에 익숙해져 주변의 사랑을 보지 못하게 된다-우울해진다-사내정치에 희생당한다-먼저 치라 독려당한다-치고 싶지 않다-현타가 오고 인간은 역시 싫어진다. 이런 루트를 몇 번 겪어보니 자꾸 '월든'거리게 되는 것이다. '월든'은 어릴 적부터 나의 꿈이긴 했지만 다른 여느 꿈보다 더 간절해지거나 올곧게 원하는 점이 특별하다.
대통령이 체포되고 구금됐다. 보수 진영에서 나온 대통령들은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긴다. 우리나라는 치유가 필요하다. 근간이 치유되지 않았으니 올바름의 정의가 흔들린다. 수단과 목적이 혼동된다. 어느 나라나 정치는 시끄럽고 좌우가 어쩌구 하는 건 똑같더라. (내가 있는 곳과 가본 곳과 본 곳 기준이다. 다른 곳은 모름.) 근데 뭐랄까. 한의 정서라고 하는 그것. 좋은 게 아닌 것 같다. 예술에서 승화시키는 것에는 좋겠지만, 세이벳이 한을 좀 풀고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뉴스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 생각이 있었으면 한다. 누가 맞고 그른 건 없다. 다 파워게임이다. 무섭고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내게 미제국주의를 신봉하냐고 수년 전 물었던 모 진보매체 이상한 선배가 요즘 문득 떠올랐다. 초면에 그런 앞뒤없는 황당한 질문을 던져서 옆의 선배가 웃어 넘기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으니 망정이지. 잊고 지낸 기억이 떠오른 건 ㅇㅇ 선배와의 점심식사 이후다. ㅇㅇ 선배는 내가 취재를 아주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고마운 선배 스쿼드 중 한 분인데, 작금의 상황과 관련해 철옹성이 문제라고 했다. 철옹성. 철옹성은 스스로 쌓았을까. 쌓게 됐을까. 무서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