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하며 불필요하게 냉소적으로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른바 사람 '독'이 쌓였다는 핑계로 뭐든 건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은 촉촉하고 다채로운 곳이었다. 늘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은 했지만, 직업 자체를 바꿔 자세를 고쳐 앉는다면 세상은 어쩌면 더 활기차고 재밌는 곳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채로운 선배들도 있고 따스한 선배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간같지 않은 이들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그들이 주는 부정적인 기운을 더는 감내하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 또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극복되고 오히려 미래의 이 시장을 다채롭고 따듯한 곳으로 변하게 할 수 있을 거름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어떻게든 라이징슬롯 한번 이용해보려는 치들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가도 마음 따듯해지는 선의가 느껴지는 이들을 만나면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곤 했다. 이것 때문에 이 일을 했었지. 아, 현장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진정으로 돕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이 일을 했지. 생활인들 틈에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그렇게 분리하고 노력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장면 때문이었지. 세상엔 정말 선의로 가득한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한 번 만나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 이거였지. 이게 내가 라이징슬롯가 된 이유였지. 그런 진동수를 유지하고 그런 진동수로 채워나가기 위해 라이징슬롯가 됐지. 그랬지.
한국과 이 곳의 언론 환경을 빗대는 주장들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시스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인데, 한국은 조직이 우선이다. 이 곳도 조직이 우선이지만, 개인을 키워준다. 뉴스 플레이어의 시대다. 스타 라이징슬롯 어쩌구 하는 게 해묵은 담론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곳이라는 얘기다. 이직과 존중과 서로의 커리어에 대한 긍정적 상호작용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가능한 건 환경이 다른 탓이다. 뉴스 읽어주고 큐레이션해주고 그림 그려 알려주고 하는 별의별 시도를 하던 게 벌써 한국에서조차 10여년 전의 일이다. 근데도 그걸 낯설게 본다면 그건 현실 도피다. 요즘 누가 신문을 읽냐는 푸념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신문 읽는 사람들은 여전할 것이다. 그 타겟층이 달라질 뿐이다. 멀티 플랫폼들이 자기들 써달라고 손 들고 있는 시대를 지나 언론사들이 어떻게든 독자 눈에 띄어보려고 플랫폼에서 그야말로 안달복달을 하고 있는 시대에-그걸 활용하길 거부하겠다고 자신을 위안하고 있다면 고인물이 아니라 썩은물이다. (해보고 안 하는 것과 그냥 무섭다고 신문 구집배신 쓰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은 분명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 다른 결의 일이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플랫폼과 회사를 지키기 위해 평소 조직 방어적인 역할을 해주는 다양한 단신 기사 및 기획 취재 기사들을 무시한다면 그것 또한 멍청한 치들이다. 썩은물에 빠져 가라앉으며 부패한줄도 모르는 것이다. 이들은 라이징슬롯 '독'이 아닌 자기만의 '독'에 갇혀 후배들의 커리어마저 작살내고 나아가 회사를 결국 망하게 만든다.
아무튼 돌아와서, 선의로 세상을 지키는 현장의 사람들을 사랑한다. 이게 내가 라이징슬롯가 된 이유였지. 기록하자고 결심했던 이유였지. 갑자기 슬픈 기분이 들었다. 슬픈 기분이 든 이유는 다음 일기에서 공유하겠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현실을 지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이 라이징슬롯이 됐다고 해서 정말 그걸 라이징슬롯으로 받아들이고 안일해지는 않는 이들과 일하고 싶다. 판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