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한없이 잘해주고 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아주 명료하게 드러나는 행동을 통해서다. 대개 두 가지다.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만만한 이로 여기거나 좋은 인생의 동료가 된다. 후자의 좋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자의 것들을 잘 쳐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들기 시작했다. 나가 있으면서 워낙 이끼같은 사람들을 대하다가 정상인들에게 다시 허들을 낮추었더니 만만한 이로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는 걸 느끼면서다. 이게 좀 다른 것 같다. 쓸데없이 기싸움을 걸고 스캔하고 하는 모든 것들. 넌덜머리가 난다. 물론 좋은 사람이 태반인데, 가끔 있는 돌부리가 유난을 떠는 날이면 내가 왜 이 돌부리의 화받이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유치뽕짝한 고민이 든다. 유치뽕짝한 애니타임 카지노를 만나면 유치뽕짝한 현타가 같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나의 기질이란 유치뽕짝한 애니타임 카지노를 만나면 그걸 만나지 않게끔 어떠한 각성이 일어나는데, 스스로의 무한 발전을 통해 이런 돌부리를 만나지 않아도 될 상황을 기어이 만든다는 것이다. 이게 지속된다면 아름답지만, 삶이란 건 무한 돌부리를 마주치게 되는 일 아니던가. 생각지도 못한 돌부리들을 계속해서 만나는 게 삶이란 말이다. 그럴 때마다 굴삭기처럼 돌부리를 파내거나 아예 돌부리를 보는 그 길을 안 가버리는 강한 처세로 밀고 나간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랑이 아니다.) 도저히 그럴 만한 힘이 요새 남아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절대자는 참 놀라운 분이라서,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아니다. 너는 강하단다." 하시며 생각하지 못했던 돌부리를 던져주시고, 내가 다시 각성하게 하신다. 지나온 모든 길이 축복이었다. 그 수많은 사연들은 내가 수많은 이력을 쌓게 해준 거름이었고, 사건사고로 당한 피해들은 내가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게 해주신 절대자의 강한 채찍질이었다. 난 늘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난 피해자주의를 싫어한다. 언제나 현실은 냉정한 법이다. 냉정한 현실에 걸맞게 유치뽕짝한 애니타임 카지노가 오면 그 길은 아니라는 계시로 받고, 다시 각성하라는 말씀으로 듣는다. 뭐, 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