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공원과 경기도자미술관의 기억
*본 글은 2024년 설봉문화 vol.67 <박물관, 이천을 담다에 게재되었습니다.
설봉문화는 이천문화원에서 발행하는 지역의 문화라이브 바카라잡지로, 아래의 링크로 더 자세히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2000archive.or.kr/archive_book/book_sub.php?bp_idx=3
이천문화원으로부터 『설봉문화』에 실을 원고 의뢰 메일을 받고 설봉공원에서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설봉’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던 건, 2년 전 설봉공원 초입에서 지도를 찾다가 설봉이라는 지명 유래까지 읽었던 기억 덕분이다. ‘박물관, 이천을 담다’라는 주제로 다음 『설봉문화』를 준비 중이라는 내용까지 읽고 나자 그날의 장면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날 설봉공원에 오게 된 이유는 공원 안에 자리 한 경기도자미술관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라이브 바카라교육사업에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시각라이브 바카라을 기반으로 전시와 연계된 문화라이브 바카라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 온 터라 자연스럽게 박물관과 미술관을 맡게 된 것이다. 경기도의 문화라이브 바카라기관에서 라이브 바카라교육 프로그램 컨설팅을 진행하던 중 마침 경기도자미 술관에서도 요청이 들어와 컨설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초행길이었다. 서울에서 이천까지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넘게 달려와 도착한 설봉공원 앞에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드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펼쳐진 공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저 멀리 산봉우리가 버티고 선 숲 속의 로 산책길이 이어지고,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지도앱은 공원에 내리기만 하면 금방 경기도자미술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처럼 알려주었는데 낭패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풍광과 지도를 대조하며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을 행여나 놓칠세라 주변을 샅샅이 살피며 호수를 지나 비탈길을 올라갔다. 숨바꼭질 술래가 된 심정이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8월 말. 아직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호수면을 흔들며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울창하게 늘어선 나무를 따라 미술관으로 이어진 길은 제법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군데군데 놓인 조각이 짙은 녹음과 어우러지는, 혹은 녹음과 대비되는 강렬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황했던 순간을 잊고, 감탄을 하느라 바빴다. 어느새 아름답고 평온한 그 순간이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연과 라이브 바카라을 그토록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건 거리 두기와 격리를 거치고 난 이후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은 건 당연한 일이다.
미술관에서의 만남도 인상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코로나19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던 터라 미술관엔 관람객이 없었다. 하지만 컨설팅을 요청한 담당자들은 열정적이었다. 학예사는 재개관을 앞두고 미술관의 새로운 방향을 반영하면서도 소장품의 특성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아 이디어를 얻고자 나에게 공간을 구석구석 정성껏 안내해 주었다. 에듀케이터는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기획 안을 자세히 설명하고 또 고민이 되는 부분들을 토로했다.
이야기를 마치고 답변을 청하듯 나를 바라보던 순간, 찰나였지만 많은 것을 느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설렘과 긴장, 실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될 참여자에 대한 기대와 걱정, 열심히 준비한 것에 대한 자신감과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놓친 건 없을까 하는 초조함,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에 대한 우려. 그 모든 게 결국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분명했다. 한없이 진지한 그 눈빛에 잠깐 그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골랐다. 기획안을 함께 검토하며 고민이 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 다른 프로그램 사례와 비교 대조하며 주의사항과 팁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구체적인 고민의 이유와 맥락을 물어가며 나의 경험과 여타 사례를 공유하고 마지막으로 격려와 응원을 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미술관을 나오는 길. 여전히 미술관에도 공원에 도 인적은 없었다. 공원 초입으로 나와서야 이따금 마스크를 쓴 사람 한둘이 거리를 두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 함께 고민한 프로그램이 운영될 즈음에는 많은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기를, 그래서 이들의 정성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었다. 나아가 그날의 경험은 새삼 내가 처음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라이브 바카라프로그램을 고민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왜 작품 곁에 있고자 했는지. 작품을 통해서 혹은 그 너머 무얼 하고 자 했는지. 즐거움과 괴로움을 오가며 작품을 어떻게 사람에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하던 순간, 설렘과 긴장 속에서 관람객을 만나던 순간, 관람 객의 아주 작은 반응에도 기뻐하고 또 슬퍼하던 순간까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결국 우리는 라이브 바카라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게 아닌가 돌아보며, 아까 보았던 그들의 열정을 기억해야지 생각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그만큼 강렬 한 인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후 전시와 라이브 바카라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또 다른 작품, 그리고 관람객을 바라보는 데에도 그날의 기억은 계속해서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가 세상을 휩쓸고 헤집어놓는 동안, 우리는 가상공간을 통해 작품을 만나고 온라인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격리와 거리 두기가 일상화될수록, 물리적으로 멀어진 거리에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작품의 실제를 감각하고 감 상하는 것, 그리고 그 너머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말을 건네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은 비단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의 공식적인 종식 이전부터 다양한 전시뿐만 아니라 라이브 바카라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가파르게 증가한 관람객 수는 2023년 국립박물관 관람객 천만 명, 국립중앙박물관 400만 명, 국립현대미술관 180만 명을 넘으며 개관 이래 최대 수치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많은 이가 코로나를 지나오며 직접 작품을 마주라이브 바카라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직접 전시를 찾은 덕분이 아니었을까.
박물관·미술관 등에서 일해온 사람으로서 전시를 오픈하고도 관람객을 맞이하지 못했던 순간을 돌이켜보 면 관람객이 많아진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더불어 전시에 관심을 두는 관람객이 많아질수록 관련된 프로그램도, 이를 바탕으로 문화라이브 바카라플랫폼으로서 박물관·미술관의 활동도 더욱 다양하 고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나아가 라이브 바카라을 매개로 사람 간의 대화가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그래서 존 듀이의 말처럼 라이브 바카라을 통해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공감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따금 관람객으로서 전시를 즐기는 팁을 묻는 이가 있다. 그때마다 손사 례를 치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즐기라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우선 전시에서 얻은 가장 큰 즐거움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그런 즐거움을 주었던 전시의 공통점을 찾아보라고. 많은 이가 선호하는 전시가 아니라 내가 선호하는 전시를 골라보라고. 때로는 호기심은 있으나 선뜻 가보지 못했던 전시도 시도해 보라고. 특정 지역이 나 주제, 작가를 다루는 그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선보이는 박물관·미술관에 찾아가 보라고.
그렇게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한 관점, 방식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라고. 전시의 서문, 작품 캡션, 리플릿 문장 너머 그 글을 쓴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작가가, 큐레이터가, 디자이너가 당신 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자 했는지 작품을 통해서 대화해 보라고. 정말로 대화를 시도할지 나아가 어떻게 이어나갈지는 언제나 관람객의 몫이다. 다만 매끈하게 정돈된 것처럼 보이는 전시도 사실 많은 이가 머리를 맞대고 정답이 없는 질문을 거듭하는 노력과 고민 끝에 선보이는 작업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을 마주하게 될 당신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하기를, 충분히 감상하고 자신의 감상을 편안하게 표현하기를 바라 기에, 이쪽도 역시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결국은 소통의 매개가 되는 것,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라이브 바카라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묻고 싶다.
만약 우리가 모두 사라지고 라이브 바카라만 남는다면, 과연 그게 무슨 라이브 바카라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