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할머니와 한국아가씨, 편지로 삶을 주고받다.
사빈에게 마지막 답변이 담긴 편지가 온 것은 5월 하순이었다. 벚꽃의 물결이 지나가고 철쭉과 라일락도 지고 아카시아가 꽃송이를 터트릴 즈음이었다. 메일함을 열었을 때그녀의 편지를 발견하곤 어찌나반가웠던지. 꽃다발을 받은 듯 두근거렸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는 틈이 나면 인테리어를 하며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에도 적응하려 애쓰며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어수선한 나날에 받은 선물같았다.
편지를 여러 차례 다른 버전으로 번역해 읽어보고 다시 각 버전을 비교해 보며 읽어보았다. 벳33라는 주제로 보낸 질문들이긴 했지만, 제각기 다른 내용이 걱정되었는데, 사빈은 각기 다른 질문들을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로 꿰어 매끄럽게 풀어내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고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의 관점을 점검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자료를 조사했을 사빈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자신의 삶에 기반한답을 주고자 벳33이 경험한 것과 실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서 써 내려가는 그녀의 진지한 얼굴도 저절로 그려졌다.
한편으론 재판정에 앉아서 허황된 혹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끝없이 늘어놓으면서 근엄한 표정을 짓던 게엄에 실패한 전직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의 신념을 분명한 단어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와 같은 표현이 자신의 벳33과 생활에서 나올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우아한가. 아름다운 삶은 권력도 명예도 돈도 그 어떤 강력함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우여곡절을 견디여낸 삶에서 오는 것임을 사빈을 통해서 깨닫고 있었다. 벳33 사빈의 답변을 내가 보낸 벳33의 순서대로 정리하지 않고그녀가 보내준 답변의 순서대로 정리해 최대한 그녀의 의도에 맞게 벳33에 그리고 벳33을 했던 이들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벳33
*사빈의 답변에 따라 다시 구성한 벳33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 저는 기독교인인데, 교회에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종교가 청년들에게, 답을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벳33하시나요? 당신은 종교가 있는지,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당신이 무언가를 시작할 때, 어떤 벳33가 선택의 기준 혹은 영감을 주었나요? 선택한 이후로 당신은 후회한 적이 없나요?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견뎌낼 수 있었나요?
친애하는 Moon,
이번에 네가 언급한 주제들은 아마도 우리 사람들의 큰 질문들일 거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개념(용어)들이지만,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매우 복잡하다고 생각해. 벳33 그 단어들 중 몇 개를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봤는데, 그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들이 많이 있었어. 부탄에서는 ‘행복’이 법에까지 명시되어 있다고 해. 그리고 독일에서는 몇몇 학교에서 “행복”이라는 과목을 실제로 가르친다는 글도 읽었다.
우선: 벳33 세례를 받았어, 그러니까 형식적으로는 기독교인이지. 하지만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신앙인으로서 살아본 적은 없어. 대략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종교 수업에도 참석했었지. 그때 우리 지역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교구 사무실에서 수업을 받았지. 그곳에서 분명히 편안함을 느꼈고, 종교적인 지식도 배웠지만,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의 메시지는 나에게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느껴졌다. 10대 때는 더 이상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
또 그 당시에는 사회주의 체제가 강했고, 국가는 종교성을 억압했지. 그래도 벳33 내 안에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이 믿음은 나의 벳33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내가 자란 방식,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 그리고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종교적 영향들이 내 삶의 벳33와 신념에 대한 관점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도 수년 째 교회를 떠벳33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어. 교회가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 그리고 변화하는 사회적‧정치적 환경 속에서 시대의 질문들에 더 이상 적절히 답할 수 없게 되었구나.
가끔 벳33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예를 들어 누군가를 도와야 하거나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해: “고귀하라, 벳33. 도움이 되고 선해라.”* 사실은 내가 툭 내뱉는 말버릇 같은 거야. 좀 순진하고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이 말은 내 삶에 있어 중요한 벳33이자 신념의 집합체란다. 벳33 그런 벳33관이 내 인생을 잘 이끌어줄 거라고 믿어.
실제로 내 경험도 대체로 그랬고. 물론 나쁜 경험도 있었지. 내 벳33관을 나에게 불리하게 이용하거나 나를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난 그런 걸 견뎌냈어. 나에게는 사람들과 긍정적이고 공감 어린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고 생각한다. 그건 내게 일상 속의 행복을 의미해. 덕분에 나도 긍정적이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 그것이 나의 관점을 계속 격려하고 확신하게 해 준단다. 결국 긍정적인 행동과 사고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목표를 달성하게 하며, 일상을 견디고 또 개인적인 행복을 경험하게 해 주지.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물질적인 행복이 아니야.
* 이 문장은 독일의 정치인이자 문학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신과 베일러(Das Göttliche)』라는 시의 유명한 구절„Edel sei der Mensch, hilfreich und gut. “로 이상적인 벳33의 존재 양식을 이야기하는 시구를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