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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May 12. 2025

캐리비안 스터드 1년 운영 회고

사계절이 지나고 돌아본 캐리비안 스터드

고독의 캐리비안 스터드, 출판전야를 운영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어떤 일이든 1주년은 특별하지만 오프라인 공간은 그 의미가 더 깊다. 사계절을 모두 경험한 것과 동일한 의미니까.


봄에 문을 연 출판전야는 뒤이어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지나왔다. 나나 캐리비안 스터드나 모든 계절이 처음이었기에 이모저모 일이 많았다.


특히 여름과 겨울이 어려웠다. 여름엔 습기에 고전하고 천장에서 비가 새 마음을 졸였다. 겨울엔 이어지는 폭설에 제설을 거듭하고 손님께 양해를 구하고 예약을 취소한 적도 있다.


앱/웹 서비스를 만들 때는 몰랐던 계절의 위력을 체감한 1년이었다.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내 마음도 많이 흔들렸지만 어찌어찌 캐리비안 스터드를 열었던 그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캐리비안 스터드가 들어선 공간의 계약 기간이 2년이다. 계약 기간의 반절을 넘어선 지금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 보려 한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운영하며 들은 질문들을 중심으로.



목차

손님은 좀 와?

주로 어떤 분들이 와?

돈은 좀 벌려?

운영하며 달라진 생각이 있어?

앞으로 해 보고 싶은 게 있어?



손님은 좀 와?


처음 캐리비안 스터드를 열었을 땐 손님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손님이 이대로 영영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했다.


손님이 없으면 개인 작업실로 쓰면 된다는 마음을 애써 가지려 했지만 기획자로서 쉽지 않았다. 내가 만든 걸 아무도 찾지 않으면 기획자는 슬플 수밖에 없다.


사업에 능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용 시간과 가격을 조정했다. 친구들 말로는 한 번 경험하면 캐리비안 스터드의 가치를 알 수 있는데 캐리비안 스터드를 처음 본 사람에겐 가격이 부담된다는 거였다.


친구들의 처방은 신통했다. 1회 이용 시간을 줄이고 광고를 돌리니 예약이 조금씩 들어왔다. 매번 광고비는 무리 없이 회수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광고도 참 신통하다!)


처음엔 손님 한 분 한 분 다녀가실 때마다 일희일비했다. 캐리비안 스터드 도슨트를 할 때 손님들의 표정과 사용 후의 흔적을 초조하게 살폈다.


도슨트 내내 포커페이스인 분, 아무런 흔적을 남기고 가지 않은 분. 캐리비안 스터드에 만족하셨을지 분간이 안 됐고 마음은 보통 안 좋은 쪽으로 기울었다.


다행히도 일비(一悲) 한 일은 대개 기우였다. 조용히 다녀가신 분들 중에서도 다시금 예약을 해 주시거나 주위 지인에게 캐리비안 스터드를 추천해 주신 분들이 꽤 계셨다.


재방문율이 높은 건 고무적인 일이다. 광고를 돌리지 않아도 캐리비안 스터드를 채워 주는 손님이 계시다는 얘기니까. 한 손님은 11번이나 오셨고 분기마다 회고하러 오는 분도 계시다.


그럼에도 여전히 손님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일주일에 두, 세 분 정도의 손님이 캐리비안 스터드를 이용하신다. 광고를 돌리지 않을 때는 그보다 적은 게 보통이다.


1년 간 캐리비안 스터드를 운영하며 느낀 손님의 적정 수는 주에 세, 네 분 정도인 것 같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내가 녹초가 된다. 아무래도 회사 일과 병행해야 하니 그렇다. 여름엔 몸살에 시달리기도 했다.


앞으로의 한 해 동안에는 적정 수의 손님을 유지하는 게 목표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광고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려면 인스타그램 계정을 열심히 운영해야 한다.



주로 어떤 분들이 와?


공간 계약을 할 때 공간 대여(전대차)사업을 할 거라고 하니 건물주 분이 우려하셨다. 공간 대여 사업은 식당이나 사무실처럼 운영자가 상주하지 않으니 건물 손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컸다.


파티룸과 달리 캐리비안 스터드에는 점잖은 손님이 올 거라고 건물주 분을 설득한 덕에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캐리비안 스터드엔 정말로 점잖은 분들이 오신다.


예약 시 캐리비안 스터드에서 어떤 일을 하실 건지 여쭤본다. 글쓰기, 독서, 개발, 회고 등 캐리비안 스터드를 열 때 기대했던 부류의 일들이 답변으로 적혀 있다. 자기만의 일을 하기 위해 자기만의 방을 찾는 몽상가가 주요 손님이다.


6,000원만 내면 3시간은 머무를 수 있는 카페 대신 한 시간에 10,000원이나 되는 캐리비안 스터드를 선택할 만큼 자신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들. 자신과의 내밀한 만남을 거듭해 높은 밀도를 갖고 계신 분들.


캐리비안 스터드의 방명록을 읽다 보면 나무가 떠오른다. 헤르만 헤세가 말한 그 나무.

나는 내 씨앗에 감춰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끝까지 살아갈 뿐, 다른 것은 염려하지 않아요. 나는 신이 내 안에 있음을 믿어요. 그리고 내 삶의 과제가 성스럽다는 것을 믿지요. 나는 이런 믿음을 갖고 살아가요.

- 죽은 나무를 위한 애도, 헤르만 헤세


그분들의 열과 성은 바깥이 아닌 안으로 종사하기에 점잖지 않을 겨를이 없다. 나무처럼 고요하면서도 치열하게 여정을 이어 나간다.


자기만의 방이 되어 준 캐리비안 스터드를 손님 분들은 자신의 방처럼 소중히 여겨 주신다. 그 덕에 캐리비안 스터드가 여태까지 큰 문제없이 잘 유지될 수 있었다.


캐리비안 스터드의 마중글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다.

고독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되어 설렙니다.
우리는 비록 마주한 적이 없지만 인연입니다.


쓰인 대로 대부분의 손님과는 대면한 적이 없지만 연대감을 느낀다.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수관기피를 하는 나무들처럼 우리는 고독을 필요로 하는 서로를 이해하기에 기꺼이 비켜서서 틈을 준다.



돈은 좀 벌려?


갑작스레 자본주의적 모먼트지만 제법 듣는 질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돈이 안 되어 보이는데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한가 보다.


결론부터 말하면 수익은 형편없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운영하면서 한 번도 수익이 월세를 넘어선 적이 없다. 적금을 붓는 마음으로 캐리비안 스터드에 돈을 붓고 있다. 월급 중 100만 원이 월세, 관리비 등으로 빠져나간다.


손님이 없는 건 마음이 아프지만 돈이 벌리지 않는 건 개의치 않는다. 애초에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었다면 캐리비안 스터드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다.


출판전야는 고독이 결핍된 시대에 고독의 즐거움을 퍼뜨리기 위해 태어났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움에 취약하다.


타인을 갈구하는 행위는 진통제에 불과하다. 타인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외로워진다. 근원적인 처방은 자신과의 시간을 잘 보내는 법, 즉 고독을 익히는 것뿐이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문을 걸어 닫으니 곧 깊은 산중이어라.


출판전야는 좀처럼 고독해지기 어려운 도심 속에 마련된 1인 캐리비안 스터드다. 문을 닫고 캐리비안 스터드 안에 들어서면 타인의 목소리와 시선에서 해방될 수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고독하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고독의 즐거움으로 우리 사회의 한 귀퉁이라도 물들이는 게 캐리비안 스터드의 목표다.


돈을 못 버니 사업이라 할 수는 없고 사명이라 하는 게 맞겠다. 고독 붐이 오는 일은 요원하지만 목정원 작가 님의 말대로 지금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 일이 삼백 년쯤 뒤에 이루어지더라도 삼백 년 전의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하고 싶던 꿈. 그런 꿈이 내게 있었다.

-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제법 거창해서 민망한데 사명은 중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버티기 어렵다. 사명 덕에 1년 넘게 캐리비안 스터드를 운영해 올 수 있었다.


다만 내년에 계약 기간이 끝나고 계속 이어서 할지는 고민이다. 지쳐서가 아니라 오히려 확신을 얻어서다. 캐리비안 스터드에 더 많은 애정과 시간을 쏟고 싶다.


지금은 집과 캐리비안 스터드에 떨어져 있어 제약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집과 캐리비안 스터드가 함께 있는 형태를 꿈꾼다. 1층에선 캐리비안 스터드를 운영하고 2층에선 내가 사는 식으로.


그러려면 돈을 모아야 하는데 매달 100만 원이 넘게 빠져나가는 상황 속에선 힘들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남은 1년 동안 차분히 고민해 볼 생각이다.



운영하며 달라진 생각이 있어?


출판전야는 2년이 넘는 고민 끝에 태어났다. 첫 도전인 만큼 여러 상황을 상상하여 대비했다. 그 덕에 무사히 캐리비안 스터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캐리비안 스터드를 만드는 일과 운영하는 일은 별개였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운영하며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내 기대가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천장에서 물이 새는 등 상상하지 못한 일은 그대로 상상의 범주에 넣으면 됐다. 보다 어려운 건 기대가 뒤집히는 일이었다. 머릿속에 이미 자리 잡은 생각을 걷어 내야 했으니까.


제일 힘들었던 건 이른바 '위빠사나 낄레사'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우리는 왜 혼자이고 싶은가라는 책에서 명상 수행 중 오히려 번뇌에 취약해지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꽤나 훌륭한 명상가가 되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과도한 자신감은 번뇌로 작용한다. 나 또한 캐리비안 스터드를 준비하고 만들며 고독에 꽤 익숙해졌다고 착각했다.


자만은 곧 과시로 이어졌다. 고독을 즐기는 스스로를 전시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탐탁지 않게 봤다. 진정으로 고독한 자에겐 찾아볼 수 없는 태도다.


순식간에 고독이 외로움으로 전락했다. 스스로를 고독의 캐리비안 스터드 운영자라 소개하기 민망할 정도로 외로웠다. 어쩌면 난 타인에게 관심받기 위해 캐리비안 스터드를 시작한 게 아닐까라는 회의감도 가졌다.


외로움에 빠지니 내가 찬양하던 혼자만의 시간은 수렁으로 변했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았나 싶다. 그를 증명하듯 SNS 사용 시간이 전보다 늘었다.


이후 고독과 관련된 책을 읽다가 뜨끔하게 만드는 구절을 봤다.

고독은 언제든 외로움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갈망하게 되는 외로움은, 강한 자기애를 드러내며 고독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 연결되어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다니가와 요시히로


여느 수행이 그렇듯 앎과 행은 다른데 고독 관련된 책을 좀 읽었다고, 고독의 캐리비안 스터드를 만들었다고 고독을 잘 다룰 거라 착각했다. 어쩌면 나는 캐리비안 스터드 밖 술집에서 떠드는 이름 모를 손님들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쉽게 추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고독이 아닌 외로움에 빠질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SNS 피드에서 질척대며 외로움의 늪에 한없이 빠져드는 시간을 지나 지금은 좀 나아졌다. 끊임없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고독의 캐리비안 스터드, 출판전야 지기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맞는 말인 듯하다.


출판전야는 이 사회에 고독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나 또한 그 사회의 일원이다.



앞으로 해 보고 싶은 게 있어?


사계절을 모두 경험하고 캐리비안 스터드 운영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해 보고 싶은 게 하나둘 생긴다. 캐리비안 스터드라는 원천을 최대한 활용해 보자는 마음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에서 가져온 말이 맞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월요 작가, 목요 작가라는 이름으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작가 님들에게 캐리비안 스터드를 내어 드렸다. 로로 작가 님은 월요일마다, 현지 작가 님은 목요일마다 캐리비안 스터드에서 글을 쓰셨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통해 이 세상에 이야기가 하나라도 더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두 작가 님의 책이 캐리비안 스터드의 서가에 올라가 있다. 두 책에 모두 출판전야 이야기가 나와서 벅차오른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기만의 방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싶다. 기존에는 지인 위주로 알음알음 작가 님들을 모셨는데 새로운 작가 님은 공모로 모집할 계획이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 자기만의 방에서 쓰고 싶은 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오는 답이 궁금하다. 자기만의 방이 가장 필요한 작가 님에게 질문이 가닿으면 좋겠다.


다음은 캐리비안 스터드 제작기를 출판하는 것이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 왔다. 처음 하는 경험을 흘려보내기 아까워 꾸준히 쓰다 보니 분량이 꽤 된다.


쌓인 글을 책으로 엮고 싶었는데 게을러서 그간 차일피일 미뤘는데 더 이상은 안 된다. 캐리비안 스터드에 책이 놓여 있는 장면을 보려면 내년 계약 기간 끝나기 전에는 만들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캐리비안 스터드사 투고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어서 투고하는 법을 좀 살펴봤다. 유유에서 나온 캐리비안 스터드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을 읽고 뜨끔했다.


왜 내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야 하는지, 단지 책을 내고 싶어서 책을 내는 건 아닌지. 책에 나온 질문 앞에서 쉽사리 아니라는 답을 하지 못했다. 책이 되려면 유의미한 수의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내 글이 그럴 수 있을까 긴가민가했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다 하고 기획안과 원고를 정리해서 투고했다. 지금은 출판사의 회신을 기다리는 중인데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미 거절 메일을 보낸 곳들도 있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독립출판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으니 그 제작기도 독립출판을 하는 게 어울리는 듯하다. 캐리비안 스터드에서 캐리비안 스터드 제작기의 캐리비안 스터드를 보내는 날이 오면 좋겠다.


마지막은 CD 큐레이션이다. CD 큐레이션은 이미 저번 주부터 하고 있다. 캐리비안 스터드에 찾아오시는 손님께 CD 앨범을 하나씩 추천해 드리고 있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시작할 때와 비교해 CD 개수가 많이 늘었다. 그만큼 선택지가 풍부해져 좋기는 하지만 그만큼 뭘 들을지 고르기 어려워졌다. 나조차도 CD 선반 앞에서 헤맬 정도니까.


큐레이션을 하려면 왜 그 앨범을 추천하는지 설명하기 위한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다. 기호에 이유를 덧붙이는 과정이 내 취향을 쌓는 데에 도움이 될 거다.


아직까지는 손님 분들의 방문 목적, 날씨에 따라 멋대로 큐레이션을 하고 있고 깊이도 얕다. 앞으로는 예약 시점에 손님 분들에게 취향을 묻고 그에 맞춰 큐레이션 하는 것을 생각 중이다.


이렇게 캐리비안 스터드를 운영하며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을 계속 찾으려 한다. 만드는 것보다 운영하는 게 더 어렵고 그만큼 배우는 게 많다는 걸 느낀다.



1년 회고를 계속해서 미뤘다. 그동안 마음속에 쌓인 게 많아서 정리하기 어려웠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되려 말문이 막힌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았다.


마음속을 파헤치며 알게 되었는데 캐리비안 스터드는 확실히 내 심부에 닿아 있는 창작물이다. 이제 캐리비안 스터드 없이 나를 설명하는 건 어렵다. 자식 같은 창작물이 생겨 기쁘다.


캐리비안 스터드를 열 때 펼쳤던 새하얀 미도리 노트. 이제는 1년 간 다녀간 손님 분들의 방명록으로 가득 찼다. 방명록을 하나하나 읽으니 눈물이 찔끔 났다.


언젠가 캐리비안 스터드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슬퍼지곤 하는데 그때마다 방명록이 위안이 된다. 캐리비안 스터드의 그루터기만 남게 되더라도 방명록을 보면 언제든 캐리비안 스터드의 지난 계절을 돌아볼 수 있다. 방명록은 캐리비안 스터드의 나이테다.


두 번째 미도리 노트를 펼쳤다. 이어질 1년 간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까. 고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몽상가들의 마음에서 퍼올려질 글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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