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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May 12. 2025

돌리고슬롯 빵을 주지 마세요

영국에서 금지하는 이유는?

번식기를 보내고 있는 청둥돌리고슬롯들은 바쁘다. 새끼를 거느린 어미돌리고슬롯는 자식 건사하느라 바쁘다. 새끼들은 성장과 생존을 위해 먹이를 찾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어미를 놓쳐서도 안 된다. 옹기종기 모여 양재천을 오르내리는 청둥돌리고슬롯 가족들은 천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 개울에 있는 오리를 향해 던진다. 자세히 살펴보니 식빵 같다. 허리굽은 할머니도 보행보조기에서 비닐봉지를 열어 무언가를 꺼내 돌리고슬롯 던진다. 시리얼이었다. 어미고 새끼고 오리들은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어린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오리들이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오리가 빵과 과자, 시리얼을 먹어도 괜찮을까?


지난해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겪은 일이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맨발 걷기 성지로도 유명하다. 울창한 전나무 그늘 밑으로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한적하게 걷는 건 참 좋다. 그런데 야생동물 애호가들에게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먹이 주기 명당으로 꽤 이름이 알려졌다. 귀여운 다람쥐, 사람을 피하지 않는 곤줄박이가 먹이를 받아먹으러 사람 주위를 맴돈다. 동물을 사랑하는 초4 딸아이도 먹이 주기에 동참했다. 일부러 소금 간을 하지 않은 구운 땅콩을 골랐다. 손바닥 위에 땅콩을 올려놓고 있으면 곤줄박이가 손으로 날아와 앉은 다음 땅콩을 물어간다.

돌리고슬롯순수 땅콩입니다. 아이가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곤줄박이가 손 위로 날아왔습니다.

아이에겐 황홀한 순간이었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손바닥에 새를 올려보는 것이었는데,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랄까... 그런데 한 스님이 오시더니 준엄하게 꾸짖으셨다. 새가 사람이 먹는 걸 먹으면 새 건강에 해롭다는 이야기였다. 고혈압에 당뇨가 어쩌고... 맞는 말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순수 땅콩을 줬을 뿐인데 좀 억울하기도 했다. 새가 야생성을 잃을 수도 있고, 비만의 문제도 있다. 영향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양재천 돌리고슬롯 빵, 과자, 시리얼 등을 주는 문제로 돌아와 보자. 식빵에 첨가물이 들어봐야 얼마나 들었겠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아이가 먹는 과자, 내가 먹다가 가져온 시리얼 '불쌍한' 돌리고슬롯 조금 나눠주는 건데 그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찾아봤다. 선진국에선 돌리고슬롯 빵을 주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말이다.

돌리고슬롯angel wing으로 검색하면 돌리고슬롯류에서 발생하는 해당 질환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유전도 한 원인일 것이라 추정되지만 대부분은 탄수화물 과다섭취에서 이유를 찾는다.

영국은 여러 지자체들이 오리에게 빵을 주는 걸 금지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우선 오리들에게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고, 천사의 날개(angel wings)라는 질병을 유발한다고 한다.날개의 마지막 관절이 뒤틀리고 날개 깃털이 몸에 닿지 않고 옆으로 향하게 된다. 새들은 일반적으로 날지 않을 때 날개를 접어 몸통에 밀착시키는데, 이 <천사의 날개 질환이 있으면 날개가 접히지 않고 몸 바깥쪽으로 뻗게 된다. 탄수화물 과다 섭취 등 영양 불균형 탓에 이 질환이 발생한다는 논란이 있다. 새가 어릴수록 영향 불균형에 노출되면 각종 질병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돌리고슬롯영국에서는 여러 지자체들이 돌리고슬롯 빵을 주는 걸 금지합니다.

다음으로는 수질 오염문제다. 너도 나도 오리에게 빵을 주게 되면 오리가 미처 다 먹지 못한 빵 조각이 물에 풀어지거나 가라앉게 된다. 당연히 이는 수질오염으로 이어진다. 물속 미생물이 증가하게 되고, 녹조 현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질 측면에서 보면 수계의 자정능력을 초과해 처리되지 않은 음식물이 수계로 흘러들어 가는 건 분명히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수백 년 동안 먹다 남은 빵을 돌리고슬롯 줬던 영국인들은 최근 돌리고슬롯 빵을 주지 말라는 정책이 확산되자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선 새모이 회사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사 수익 증대를 위해 펼치는 캠페인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도 나타난다. 일부는 오리가 굶주리게 하는 것보다 빵을 주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과천 양재천에선 돌리고슬롯가족에게 식빵, 과자, 시리얼을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양재천의 오리는 어떨까? 새끼오리들이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 시민의 눈길을 집아 끈다. 동정심 많은 일부는 오리에게 빵 과자 시리얼을 던져주고 오리는 덥석 받아먹는다. 사람음식을 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양재천에 오리 식구들이 계속 늘어나고 세월이 쌓이면 양재천에도 천사의 날개 질환을 가진 오리들이 생겨나는 게 아닐까?


그보다 당장 사람이 돌리고슬롯 가족에게 빵과자를 던져주면 일대 돌리고슬롯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치열한 다툼이 일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때 다른 곳에서 날아온 청둥돌리고슬롯가 어미돌리고슬롯를 몰아내는데, 어미는 공격에 못이겨 날아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한다. 이때 새끼돌리고슬롯들은 어미 없이 무방비 상태에 내몰리게 된다. 왜가리나 고양이 등 포식자의 공격에 취약해지는 것이다. 이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돌리고슬롯가족에게 빵과자를 주면 안된다는 게 분명해진다.


돌리고슬롯가족이 야생성을 잃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방법은 멀찍이 떨어져 돌리고슬롯 가족을 관찰하는 것에 만족하는 방법일 것이다. 너무너무 먹이를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면, 돌리고슬롯가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 먹이를 주는 방법이 있다. 청둥돌리고슬롯는 물풀이나 작은 수서곤충, 씨앗 따위를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빵이나 과자, 시리얼 등 사람 먹는 것, 또는 먹다 남은 걸 주지말고 소금과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건강한 먹이를 주자. 다른 돌리고슬롯들이 덤벼들지 않을 절호의 기회를 노려서 그것도 남기지 않을 만큼만 말이다. 자신이 없으면 주지 않는 게 최고다.


과천시도 오리에게 먹이를 주지 말자는 안내문을 양재천 주요 포인트에 게시하면 좋을 것 같다. 귀엽다고 안쓰럽다고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 사람의 음식을 주는 것은결과적으로 야생동물을 해치는 일이 분명하다. 도시에서, 우리 곁에 힘겹게 살고 있는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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