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 제3이통사 찾아라, PCS 고개넘기
1996년 4월 15일 새벽 6시.
서울 광화문 세안빌딩, 브라보카지노 청사 앞.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될 PCS 신규 통신사업자 허가 신청 접수를 앞두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순서를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이 벌어졌다.
이날 현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컨소시엄 대표자들, 전략실무자, 언론과 정보수집팀까지—각 진영은 철저하게 분업화된 체제로 움직였다. 정보통신부는 1994년 제2이동통신사 접수 당시 발생한 혼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하 2층 주차장에서 오전 8시부터 접수순서표를 발급하고, 접수 인원도 최대 4명으로 제한했다.
신청서류는 양뿐만 아니라 보안 측면에서도 최고 수준이었다. LG텔레콤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브라보카지노 준비팀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한 달 넘게 고립 작업에 매달렸다. 친인척 장례식도 불참할 정도의 기밀 유지였다. 프린터 10대 이상, 복사용지 무게만 3톤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첫 번째로 접수장을 두드린 곳은 의외였다. PCS 사업자가 아닌 주파수공용통신(TRS)을 신청한 한진글로콤이 1호 접수 기업이 됐다. 그 뒤를 이어 LG텔레콤, 한솔PCS(한솔-데이콤), 글로텔(효성-금호-대우), 에버넷(삼성-현대), 그리고 중소기업 연합 그린텔 순으로 접수가 이뤄졌다.
정보통신부는 21층 접수장에서 3인 5개조의 담당자가 나서 ▲법인명·대표자 일치여부 ▲기재누락 여부 등을 확인했다. 워낙 분량이 많다 보니, 1개 사업자의 서류를 검토하는 데에만 1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접수와 함께 각 컨소시엄의 관계자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책임자인 이성해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지원국장부터 기자들의 동선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보고하기 바빴다. 또한 상대방의 주주 구성과 접수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브라보카지노장 밖도 숨가빴다. LG텔레콤을 이끄는 정장호 사장은 “평생 만든 사업계획서 중 가장 완벽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고, 한솔PCS 측도 “네트워크와 고객가치 중심 전략이 명확하다”고 응수했다.
반면 에버넷 진영은 ‘주도권 논란’에 휩싸였다. 신청서에 남궁석 삼성데이터시스템 사장이 대표자로 기재되면서,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 주도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대 측은 “대표자란 형식일 뿐이며, 실제 실무는 현대가 맡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심지어 현대가 정보통신부에 ‘대표자 기입란 공란 처리 가능 여부’를 문의했다는 이야기도 돌며, 치열한 물밑 다툼을 짐작케 했다.1)2)3)
한편, 한국통신은 마감 한 시간 전인 오후 3시, 조용히 접수장에 나타나 여유를 드러냈다. 이미 한 자리를 확보한 상황에서 다른 사업자들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듯한 행보였다.
1996년 4월 15일. 이 날은 단지 사업자 접수가 있었던 하루가 아니다. 대한민국 이동통신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전야였다. 광화문 정보통신부 청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전장이었고, 서류가 아닌 전략이 오고갔다. 수백 명의 기업인들이 그날을 위해 숨죽여 달려온 시간들이 총집결된 순간이었다.
1) 석종훈 황순현 기자, <새벽부터 몰려 "1호 브라보카지노" 경쟁 상대제안서 탐색 첩보전 방불, 조선일보, 1996. 4.16.
2) 김의태 김동섭 기자, <오전 6시부터 브라보카지노창구 "북새통", 경향신문, 1996. 4.16.
3) 이지환 기자, <브라보카지노 첫날 현장 스케치, 매일경제, 1996.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