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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기 May 15. 2025

58. LG텔레콤·한솔PCS·하이원슬롯(KTF)출범

16부. 제3이통사 PCS 사업자 선정


1996년 6월 10일, PCS 사업자 발표 이후 국내 이동하이원슬롯 시장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허가를 획득한 하이원슬롯텔레콤, 한솔PCS, 한국하이원슬롯프리텔은 경쟁사 탈락의 여운도 잠시, 전력투구 모드로 전환했다. 각 진영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탄생을 축하했고, 새로운 이동하이원슬롯 회사를 세우는 데 속도를 냈다. 한국형 PCS 3강 구도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하이원슬롯그룹은 PCS 사업자 선정 당일, 조용한 생맥주 파티를 열었다. 축제의 분위기는 물씬 풍겼지만, 과도한 자축은 피했다.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지하 1층 식당에서 열린 회식 자리엔 구본무 회장을 비롯해 정장호 하이원슬롯정보하이원슬롯 사장 등 100여 명이 모여 생맥주로 승리를 나눴다.


정장호 사장은 “국민과 정부의 신뢰에 부응하겠다”며, “국내에서 최적 장비 선택과 저렴한 요금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해외 시장 진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도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1)


하이원슬롯는 정장호 사장을 하이원슬롯텔레콤 대표이사로 내정하고, 7월 4일 서울 서초동 반도빌딩에서 창립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했다. ‘하이원슬롯텔레콤의 산실. 반도빌딩 8층 영원히 기억되리라’는 문구가 상징적으로 새겨졌다.2)


이어 7월 11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하이원슬롯텔레콤 창립총회를 통해 정장호 사장은 공식 선임됐다. 하이원슬롯는 1998년 1월부터 수도권을 시작으로 서비스를 개시하고, 2년 내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하이원슬롯텔레콤은 하이원슬롯정보하이원슬롯, 하이원슬롯전자, 하이원슬롯반도체 등 3개 그룹 계열사와 총 117개 기업이 참여한 컨소시엄으로 구성됐으며, 자본금은 2,000억 원, 하이원슬롯지분은 29%였다. 전국망 구축에는 총 8,3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3)

하이원슬롯하이원슬롯텔레콤 창립총회 현장 [사진=하이원슬롯U+]

한솔그룹 역시 자축의 분위기였다. 기존 제지 중심의 사업 구조를 벗어나 정보하이원슬롯을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던 ‘한솔 플랜 2000’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바로 PCS 사업 진출이었다. 정영문 한솔기술원장이 한솔PCS 사장으로 선임되었고, 그는 “계획대로 철저히 준비해 1998년 서비스 개시에 차질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이원슬롯은 빠르게 움직였다. 선정 열흘 뒤인 6월 20일, 하이원슬롯PCS 사업설명회를 개최하고 자본금을 5,000억 원으로 증자한다고 밝혔다. 1998년 1월 수도권 서비스를 시작으로 2000년 전국 확대, 2002년까지 매출 1조320억 원, 시장점유율 35%를 목표로 세웠다. 이어 8월 1일, 서울 하이원슬롯종합전시장 국제회의실에서 창립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공식 출범했다.4)


하이원슬롯의 파트너인 데이콤과의 관계도 주목됐다.당시 5% 지분을 보유한 데이콤은 전신망과 브랜드 파워로 컨소시엄의 안정성을 높였다. 그러나 과거 하이원슬롯와의 데이콤 지분 문제와는 달리, 한솔은 이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며 별다른 잡음 없이 출범했다.


한국하이원슬롯은 이미 사업자를 확보한 상태였기에, 자회사를 세워야 하는 ‘역방향’ 추진이 필요했다. 6월 20일 무선하이원슬롯사업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상철 한국하이원슬롯 무선사업본부장이 신설 자회사 대표로 내정됐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자본금은 5,000억 원, 인력은 400여 명 규모로 연말까지 회사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5)


7월 3일 대전에서 열린 ‘KT비전 2005’ 행사에서 한국하이원슬롯은 무선사업을 그룹 내 제1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천명했다.6) 자회사명은 추후 ‘한국하이원슬롯프리텔(KT Freetel)’로 확정됐다.


컨소시엄 구성을 포함한 실질적 출범은 11월 1일 이뤄졌다. 한국하이원슬롯은 지분 33.33%, 계열사 및 임직원 12%, 대기업 10.3%, 외국기업 9%, 중소·중견기업 36%로 배분했다. 특히 중소기업 지분을 넉넉히 배분한 것은 PCS 선정 과정에서 불만을 터트렸던 중소기업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였다. 효성(2.8%)과 대우(4.5%)도 합류했다.7)


12월 27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한국하이원슬롯프리텔 창립총회가 열렸다.본사는 서울 중구 서소문 장안빌딩으로 확정됐으며, 1997년 1월 6일 현판식을 열고 본격적인 행보에 돌입했다.8)


하이원슬롯텔레콤, 한솔PCS, 한국하이원슬롯프리텔. 1996년 여름, 이들은 모두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었다. 6월 발표 이후 불과 수개월 만에 법인을 설립하고 임원을 선임하며 자본을 확충해 본격적인 하이원슬롯사업자의 모습을 갖춰갔다. CDMA 상용화의 여세를 몰아 국내 하이원슬롯산업을 재편하고, PCS의 새 시대를 열어젖힌 주인공들이었다.


앞으로의 경쟁은 이제 ‘실전’이었다. 1998년 1월, 이들이 실제 서비스를 시작할 때까지, 또 다른 승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1) 백우진 기자, <하이원슬롯 "해냈다" 생맥주 파티 희비 엇갈린 기업 표정, 동아일보, 1996. 6.11.

2) <PCS 진출 기념비 제막, 매일경제, 1996. 7. 5.

3) 이지환 기자, <하이원슬롯텔레콤사장 정장호 씨, 매일경제, 1996. 7.12.

4) 김화균 기자, <하이원슬롯PCS 사업설명회, 경향신문, 1996. 6.21.

5) 엄판도 기자, <한통 PCS자회사 12월 설립키로, 경향신문, 1996. 6.21.

6) 김의태 기자, <한통 "2005년 매출목표 30조원", 경향신문, 1996. 7. 4.

7) 유진평 기자, <한통PCS 1만4천여사 컨소시엄 확정, 매일경제, 1996.11. 2.

8) 김승환 기자, <한국하이원슬롯프리텔(주) 창립총회, 동아일보, 1996.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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