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리아에서 포르토 마린까지(22km)
사리아에서 포르토 마린까지 걷는 길은 흥분으로 가슴이 뛴다.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까지이제100km밖에 안 남았기때문이다.
아침 6시 일어나 6시 반 길을 나선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데도 알베르게 앞 좁은 거리는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어두운 새벽 사리아를 떠나는 순례자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으라며 여러 조형물에 환하게 조명을 밝혀 놓았다. 언덕을 내려가 다시 오르고철길 옆을 걷는다.
어제부터 순례자들이 아주 많이 늘었다. 특히 사리아부터 100km를 걸으면 산티아고 순례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단체 순례자들이 아주 많다.그들은 프랑스 길 생장부터 700km를 걸어온낡은순례자들과 달리 옷차림도 산뜻하고 가방도 가볍고 걸음도 빠르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걸음이 느린 사람이 있는 구간에는 산악회에서 야유회를 온 듯 걸음이 지체될 정도이다. 한 줄로 걷거나, 옆으로 빠져 주어야 하는데 일행들과 이야기하며 걷거나 손을 잡고 걸으면 거의 제자리걸음이 될 정도이다.
걷기에도 도로처럼 규칙이 있어야 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시가 넘자 짙은 안개에 운무가 사리아를 감싸며 해가 뜬다. 근래에 보기 드문 하늘의 모습이다.이제 뭐든 아름답고 아쉽기만 하다
작은 마을 가게마다 세요를 찍어준다는 표시가 보인다. 순례자 여권에 세요를 많이 찍고 싶은 사람들은 1유로를 내고 찍거나 물건을 사고 세요를 찍으며 기뻐한다.
생장부터 걸어온 페스타토토자들은 그동안 페스타토토자 여권에 알베르게에서 찍은 세요가 30개 이상 되어 하루 한 번 성당에서만 찍는다.
오늘 걷는 길은 비옥한 땅과 목장, 과수원을 지나며 한국의 농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돌담길 이끼와 고사리가 가득한 숲을 지날 때는 제주 올레길과 곶자왈 같았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완만하고 떡갈나무와 밤나무 숲 속의 그늘로 편안히 걸을 수 있다. 지나는 사람이 없어 한적할 때는 동화 속 한 장면 같아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길가에 떨어진 밤을 돌멩이 보듯 넘겨야 하는데 토실토실 큰 밤들이 뒹굴고 있다.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어 오늘도 많이 주워 껍질을까서 많이 먹었다. 알베르게공용 주방에서 삶아 내일 걸으며 간식으로 먹어야겠다.
길가에 떨어진 사과가 많아 주워 깎아 먹었다. 지나가는 한국 청년에게 먹으라고 몇 조각 주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인상 좋은45세 총각인데 연차 내고혼자 프랑스 생장부터 포르투갈묵시아까지 걸어간다고 한다. 직장 생활이 힘들었을 텐데 또 힘들게 걷고 있었다.
'그에게 이번 페스타토토은 어떤 의미일까?'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가 남았다는 표지석을 만난다. 100km를 기념하는 세요도 있다고 하니 쉬지 않고 걸음을 서둘렀다.그런데 100km 세요 찍는 카페가 문을 닫아 사진만 찍었다.
이제부터 걸어갈 100km는 걸어온 700km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니고 거의 다 왔다는 기쁨을 만끽한다. 오랜만에 느끼는 신체의 성취감이다.
"여기 보세요. 100km 표지석이에요!"
생장에서부터 걸어온 순례자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이 표지석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찍어주며 수고했다고 칭찬을 한다. 하지만 사리아부터 시작한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휙 지나쳐 버린다.
'같은 길을 걸어도 이렇게 의미가 다르듯 인생도 그렇다. '
'한 번 사는 인생 별거 아니라는 사람과 한 번이기에 소중한 사람'
작은 마을의 화려한 조개를 파는 가게에서 휴식한 후에 다시 길을 서두른다. 목장 지대를 지나는데 길의 반은 소똥과 개똥, 떨어진 밤송이 섞는 냄새가 아주 심하다. 그래도 사람의 악취보다 자연의 냄새가 나은 것 같다.
이제 매일 20km 이상을 걸을 때가 많다. 평발에 무지 외반증이라 2시간 계속 걸으면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그럴 때는 발가락 양말과 양모 양말을 벗고 발을 주물러준다.
'못생겨도 고마운 날개같이 소중한 나의 발!'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발가락 운동하는 것을 보며 웃으며 응원한다.
강 맞은편으로 벨레사르 댐 때문에 마을 자체를 온전히 이동했다고 알려진 포르토 마린이 보인다. 여기서 두 갈래의 길이 나뉘었다가 다시 만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많이 걷는 오른쪽으로 걸었다.
다리 입구 왼쪽에 있는 영혼의 종 치는 곳을 놓쳤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 긴 다리를 건너면 언덕 위에 아름다운 마을 포르토 마린에 도착한다.
새로운 포르토 마린은 과거와 현재의 조합이 잘 이루어진 휴양지 느낌이 나는 곳이다.
제법 높은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통과하면 멋스러운 시가지가 펼쳐진다. 새로 만들어진 도시답게 현대식 건물들이 예스럽고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다.
거리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서 양쪽으로 상가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광장 중심에 산 니콜라스 요새 성당과 의회 건물이 보인다.특히 성당의 장미창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과 매우 비슷한 외양의 정문 장식이 아름답다고 한다.성당 문이 활짝 열려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렇게 소박하면서 편안하게 기도하는 종교시설이 좋다.
성당 외부에 니콜라스의 십자가가 서 있는데 이 십자가는 '하늘로부터의 용서'를 뜻한다고 한다. 즉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이 십자가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는 길가는 여행자, 즉 순례자를 보호한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갈리시아만 해도 약 10,000여 개 이상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죄를 용서받기를 원했는지, 순례자를 보호하려는 마음도 강했음을 알 수 있다.
길을 걸으며 만난 많은 사람들과 자주 마주친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길을 무사히 걷기를 서로가 걱정해 주고 힘을 준다.
'스치는 것도 인연인데 주변이 모두 잘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