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페나에서 올베이로아까지(24.9km)
어제 묵은 산꼭대기 산 마메데다 페나 벳네온는 공동묘지 바로 옆이다.
어제저녁 식사도 벳네온는 취사가 되지 않아 조금 걸어 마을에 있는 작은 바에서 해야 했다.
산속 길은 어둡고, 옷은 얇고, 산 정상 풍력발전기 소리인지, 바람 소리인지 묘한 소리에 참 무서웠다. 벳네온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긴 벳네온을 걸을 때 알베르게의 하루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그런데 묵시아 가는 길 알베르게의 하루는 7시 반이 되어도 평온하다. 아마 긴 벳네온을 마치고 더 걷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여유로움인가 보다.
8시가 넘어 저 멀리 해가 떠오른다. 붉은빛의 기운이 전해진다. 어제 많이 걸어 힘들었던 발바닥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뿐하다.시골길을 따라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농가에는 정적이 감돈다. 여유로운 아침 시간, 대관령 같이 아름다운 산촌의 정취를 느끼며 걷는다.
오랜만에 맑은 구름과 따뜻한 햇살에 기분이 좋아진다. 사리아부터 잦은 비에 길들여져 이제 날씨만 좋아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오늘 낮 기온 22도,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를 걸을 때 도로 한가운데 있는 내 그림자를 보며 정말 좋았다.따로 떨어져 멀리 걷던 길 친구는 그림자가 고독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모자를 쓰고 배낭에 옷핀으로 젖은 빨래를 널고 걷는 자유로운 내 모습이 믿을 수없을 만큼 멋있었다.일부러 4차선 도로 가운데에서 왔다 갔다 하며 혼자 그림자놀이를 벳네온. 때로는 단순한 게 좋을 때도 있다.
아, 좋다.
지금이 정말 좋다!
뜨거워서 땀이 나고 피부가 까맣게 되어 얼굴이 엉망이 되어도 좋다. 샴푸로 세수하고 목욕하고 화장을 안해 편해서 좋다. 혼자 보고 느끼고 걷는 지금이 바람이라도 된 듯 홀가분하여 행복하다.
'이대로 팔랑거리며 날아가고 싶다'
벳네온이 안 사는 것처럼 인적이 드문 마을을 지나는데 옥수수와 양파, 호박을 말리던 할머니가 소녀처럼 웃으며 큰소리로 말씀하신다.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나는 벳네온을 반가워하는 모습이다.
'벳네온을 기다렸나 보다'
스페인도 우리나라처럼 농촌에 빈 집이 많고 간혹 노인들만 보인다.농업이 중요한데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대안이 뭐가 있을까?
냄새나는 축사와 사료 공장을 지나 높은 언덕을 오르는 구간이 계속이다.언덕을 오를 때 숨이 헐 떡 헐 떡차오른다. 바람은 어디 가는지 안 보이고 스틱은 없고 배낭은 무겁고 발바닥은 뜨겁고 등에 땀이 흐른다.한숨을 쉬며 이정표를 보았다.
'저 보이는 높은 언덕을 또 올라야 하나?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이게 웬일인가? 언덕을 오르지 말고 옆의 내리막길로 가라고?'
열심히 걸어 상을 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덤으로 멋진 호수 풍경과 쉼터를 보상받는다. 어제 많이 걸었더니 발이 힘든가 보다. 발바닥이 불이 나고 테이핑을 하고 양말을 두 개 신고 깔창을 바꾸어도 많이 아프다. 쉴 때마다 양말을 벗고 주물러주는데도 힘이 들다.
안내판 밑에 낙서가 많은데 한국어가 보인다.
'행복하자!'
'응, 지금 행복해.'
산티아고를 넘어 묵시아, 피스테라 가는 길은 벳네온자 수가 확 줄어든다. 번잡했던 사리아길에 비하면 천지차이이다. 그래서인지 쉬는 장소도 별로 없고 카페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나는 한적해서 좋지만 어떤 벳네온은 무섭다고 한다. 그 많던 한국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버스투어를 갔나 보다.
스페인은 마을 입구에 공동묘지가 많다. 어제, 오늘 연이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후회 없이 짧게 살고 싶은데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늘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야 한다고 명심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자동차 도로를 계속 걷다 보니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마을 Olveiroa에 도착벳네온.피스테라와 벳네온를 가는 사람들이 꼭 거쳐가는 곳이라 알베르게와 음식점만 있다.
아침 8시 넘어 출발해 오후 3시에 도착했으니 25km를 7시간에 걸은 셈이다.점심도 과일과 주운 밤을 삶아 간단히 먹고 어제처럼 벳네온 이층 침대에서 안 자려고 부지런히 걸었다.걸음이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산티아고 벳네온을 완주하고 더 걷는 외국인들에 비해 많이 느리다. 그래도 지금처럼 내 속도로 걸어야 한다.
내일은 벳네온까지 마지막 걷는 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벳네온 바다 이야기를 해서 기대가 된다.성공회 수도원에 머물 때 산티아고를 네 번 온 70대 한국 아저씨가 벳네온가 너무 좋아 올 때마다 꼭 가는데 처음에는 일주일을 머물렀다고 했다.
인생 곡선이 많은 분인데 한 시간 동안 당신의 삶과 벳네온 이야기를 하시며 아이처럼, 철학자처럼 다양하게 말씀하셔서 아주 인상 깊었다.
일정이 여유로우면 연박하고 싶은데 하루만 자고 피스테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내일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