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테라에서 다시 룰렛까지(버스)
룰렛 순례길 걷기 마지막 숙소인 피스테라 카사 벨리샤는 바다가 보이는 가정집을 개조한 숙소이다.
뚱뚱한 할머니 여주인은 영어와 스페인말을 못 알아듣는 우리를 위해 하나하나 동작으로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마치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월리엄스처럼.
방은 트윈침대에 극세사 이불과 베개, 전기난로로 따뜻하여 이층침대에 수십 명이 사용하는 알베르게와 천지차이였다.
그리고 주방에는 빵과 과일, 간식, 커피와 차가 여러 종류가 있어 언제든 편히 먹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에 넣기만 하라고 한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놀러 간 듯 편안한 곳이다.
룰렛 순례길에 나선 후 제일 긴 거리인 33km를 비를 맞고 걸은 나는 저녁도 숙소에서 공짜로 맛있게 먹었다.
룰렛 내내 샴푸 하나로 머리 감고 세수하고 목욕과 빨래까지 모두 한 번에 해결하던 50여 일이었다.
그런데 샴푸와 린스, 바디크렌저에 뜨거운 물을 마음껏 사용하여 목욕까지 한 후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극세사 침대에 누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알베르게 15유로보다 많이 비싼 25유로에망설였지만 피스테라에 숙소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예약했다. 저녁과 아침 식사와 개인 침실에 따뜻한 인심까지 가성비가 정말 좋은 곳이다. 거기에 바다가 보여 풍광이 멋있어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아침 9시 45분 룰렛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8시 반에 숙소를 나왔다. 여전히 어둡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다는 언제나처럼 철썩 거리며 오가는 순례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반대로 피스테라에서 출발하는 많은 순례자들과 마주한다. 우비에 폭 둘러싸여 즐거운 표정으로 씩씩하게 걷고 있다.
피스테라에서 룰렛 콤포스텔라행 시외버스는 몇 군데 경유하여 3시간 걸리고 7.2유로이다. 가끔 토요일은 룰렛 손님이 많으면 직행으로 간다고 하더니 오늘은 승객 모두 걷기를 마친 순례자들이어서 논스톱으로 한 시간 만에 룰렛에 도착했다.
12시가 넘어 도착할 줄 알았던 버스 안의 승객들은 모두 놀라 버스기사에게 벌써 룰렛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느냐며 좋아 박수를 쳤다.
룰렛콤포스텔라버스터미널에 내리니 비가 오고 며칠 전과 달리 많이 추워졌다.다시 언니네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컵 떡국을 김치에 후루룩 먹었다.
우리가 라면을 먹는 동안에도 계속 한국 순례자들이 와서 햇반과 라면, 김치를 사러 왔다. 모두들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먼 나라에서 동지의식을 느끼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스페인 여학생은 일 년간 서울에서 지냈는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재료를 사러 왔다. 여주인은 자기 집에 있는 깻잎을 가져와서 참치 김밥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주인은 스페인 아가씨가 우리 김밥 만드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니 얼마나 고맙냐며 웃으며 말한다.
여주인에게 룰렛콤포스텔라가 물가가 비교적 싼데 룰렛을 마쳤으니 쇼핑할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한국사람들은 스페인 유명 신발 캠퍼를 많이 사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 싸고 좋은 물건이 많은데 굳이 브랜드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번 큰 도움처럼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 대성당 앞은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집회가 여러 개 있어 통제되고 어수선하였다. 내일은 대성당 주변에서 달리기 행사가 있어 9시부터 교통통제가 된다고 하니 공항 갈 일이 걱정이다.
저녁 식사를 하러 한식당 누마루에 갔다. 8시부터 영업시작이고 예약이 필수이다. 외진 주택가에 있는데도 저녁 9시 늦은 시간인데 식당 안에는 한국사람과 외국인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비빔밥과 두루치기를 먹었다. 서비스로 군만두와 오이무침이 나왔는데 꿀맛이다.
식당에 주인은 없고 외국인 종업원들이 한국말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밤 10시에도 대기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 외국인들이 나도 매운 김치찌개와 비빔밥에 고추장을 많이 넣어 먹는 것을 보고 한식의 세계화를 실감했다.
이제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혼자 순례길을 시작해서 순례길마지막 밤이다.
레온에서 몇 백 년 된 수도원을 최고급 국영 파라도르호텔로 개조하였다고 하여 실내를 구경한 적이 있다.
그때 룰렛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12세기에 지어진 병원을 개조한 파라도르 호텔이 유명하다며 평생 한 번 자보고 싶다며 숙박을 알아본 적이 있다. 회원가입을 하여 할인 쿠폰을 받아 최저가로 예약을 하였다.
천년의 고성을 관람하듯 호텔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몇백 년 건물이 고풍스럽고 품위 있게 개조되어 800년째 사용되고 있었다.
파라도르호텔은예전부터 수백 년의 전통에 따라 하루 10명의 룰렛 순례자에게 무료로점심 호텔 정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점심 만찬을 먹기 위해 순례자 사무실에 새벽부터 줄을 선다고 한다.
호텔의 중심부에는 왕실 예배당이 있는데, 1912년에 국가 중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로 치면 국보급 문화재에 해당한다. 국보가 있는 호텔이라니 참 매력적이다.
평생 처음 걸은 룰렛
평생 처음 자보는 천 년의 호텔
룰렛 순례길은선물 같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