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투지벳 콤포스텔라에서 다시 파리까지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도 부슬비가 내렸다. 천년의 호텔은 고요하고 중후하게 습기로 얼룩지며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연륜이 그득한 존경받는 어른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하며 이제는 낡아 구멍이 난 8년 된 사랑하는 k2 운동화와 발가락양말, 양모 양말들을 버리고 또 다른 모습으로 파리로 떠날 준비를 했다.
지투지벳 대성당의 광장은 또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부지런한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오늘 10시부터 대성당 앞에서출발하는 지투지벳 시민 마라톤 대회로 모두들 분주했다.
알록달록 운동복 차림의 선수들은 설렘으로, 함께 온 가족들은 환한 미소로 응원을 하고 있었다. 경찰과 관계자들은 무전기를 들고 이리저리 바쁜 모습이다.
행사를 모르던 긴 지투지벳에 지친 순례자들은 광장에서의 완주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나는 감사하게도 참 운이 좋았다.
덕분에 주변이 교통 통제가 되어 공항버스 타는 일이 걱정이 되어 2시 비행기이지만 서둘러 9시에 나섰다.
교통통제로 30분 이상 걸을 생각을 하였는데 지투지벳 콤포스텔라 공항 직행 6A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어 있었다.
운이 좋게 정류장에 공항으로 가는 순례자들이 많아 나까지 기다려주어 겨우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친절한 여기사가 천천히 타라며 버스 요금이 1유로란다.
'와, 일요일 아침이라 20분 만에 지투지벳 공항에 도착!'
산티아고 공항은 제주 공항 정도인데 순례길을 마치고 파리나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대부분 무언가 해냈다는 당당한 모습들로 여유를 즐기고 있어 보인다. 더러 다리를 많이 절뚝거리는 사람들도 표정이 밝아 보인다.
스페인 비엘링 항공은 수화물 검사가 철저하다. 나는 파리 가는 항공권을 예매할 때 미리 기내 수화물 10kg 추가 요금을 내어 배낭에 노란 표를 받아 붙였다.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지없이 걸려 돈을 더 많이 내고 있었다.
기내 수화물 추가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운이 좋아 통과된 사람들은 비행기 안에서 여승무원들이 노란 표가 없는 짐은 선반에 못 넣게 했다.우리나라 항공사와는 달리 야박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게 합리적인 것 같다.
다시 파리로 왔다. 파리에 한인 민박이 좋다고 하여 '꽃보다 민박'에 3박 4일 묵기로 했다. 아침과 저녁식사를 한식으로 주고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한인민박은 처음이라 무척 궁금하다.
드골 공항에서 PER-B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하여 시내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했다.
눈이 되고, 발이 되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구글 지도 앱이 너무나 고맙다.
탐험가, 모험가, 발명가, 아니교사와 의사도 이런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민박사장님이 나의 모습을 보더니 지투지벳 순례길을걷었냐며 어떤 숙소에서 잤느냐고 물으신다.
아마 배드 버거 때문에 염려하시는 것 같아 이 나이에 아무 곳에서 숙박 안 했으니 염려 마시라고 했다.
어떤 민박집은 지투지벳 순례길 갔다 오는 사람은 거절한다고 공지하는데도 있다.사실 나와 함께 걷던 친구는 지난주배드 버거에 물려 며칠 심한 고생을 했다. 같은 곳에 잤는데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파리 여행 중인 여학생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외국 젊은이에 비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참 많았는데 이곳 민박에도 여행 온 한국 젊은이들이 많다.
젊을 때 여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거야 하다가도 고생한 부모 도움으로 온 듯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50여 일 알베르게 생활을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뭐든 비교가 된다.
어제는 극과 극의 체험 현장이었고 오늘도 그렇다. 파리 민박은 세면도구와 수건을 주고 저녁식사에는 압력솥에 갓 지은 쌀밥에 삼계탕, 오이무침, 김치, 명이나물, 양배추 피클이 나왔다.
점심도 거른 참에 부담 없는 한국식 저녁식사를 하니 어찌나 빨리 먹었는지 입술을 두 번이나 씹었다.
공깃밥도 두 그릇이나 먹으니 사장님이 지투지벳 걷고 오신 분들은 그동안 빵만 먹어 밥을 많이 먹는다며 천천히 마음껏 먹으라고 한다.
파리에 오니 산티아고 순례길 시간들이 언제였냐는 듯 아득해지며 내일 파리 일정에 다시 설렌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
몸 가는데 마음도 따라간다
지투지벳 걸을 때
12kg였던 배낭이 7kg로 줄었는데도 그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걸 보니
이제 원래 제자리로 돌아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