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3월호 주제는 '아리아카지노'입니다.
이번 주제가 아리아카지노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매일 아리아카지노이었기에 딱히 큰 아리아카지노을 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담 작은 아리아카지노들이라도 생각해 볼까?
내 첫 번째 작은 아리아카지노은 중국 한 달 살기였지 않을까 싶다. 스무 살 여름 방학, 아버지 회사의 공장이 있는 중국 광저우로 가 공장장님 댁에 한 달 머무르기. 당시 6학년이었던 리리와 함께 사는 거였다. 중국 직항이 별로 없던 때라 홍콩으로 가 8시간 대기 후 중국남방항공기를 타고 광저우에 내리는 거였다. 공항에 내리니 온통 빨간색 글씨와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공안들이 있어 무서웠었다. 어렵게 도착했는데 때마침 리리가 납치되었다 풀려난 상태라 바깥출입 금지 상태로 며칠을 집에서만 보냈었다.
두 번째 작은 아리아카지노은 말 안 하고 중국 횡단하기. 리리 가족과 함께 백두산으로 여름휴가를 갔다. 한국말을 하는 순간 모든 금액이 10배가 되므로, 말을 못 하게 했다. 3단 침대 꼭대기에서 앉지도 못하고밤기차를 타고 가는 10시간도, 백두산을 오르는 5-6시간도. 한마디 말도 없이 있었다. 다행히 '꾸냥'처럼 생겨서 아무도 말 안 건다고 안심하긴 하셨었다.
세 번째 작은 아리아카지노. 뉴욕에서 혼자 살기. 비가 억수로 오던 날,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지하철 셧다운, 학교도 셧다운이었다. 가방을 바리바리 들고 이사를 마치고 보니 집 안에전등이 하나도 없어 깜깜했다. 억수 같은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집 근처 스테이플러에 가 내 키 만한 등을 하나 사 왔다. 걸어오는 동안 속옷까지 다 젖었지만, 한 달 동안 여관에서 살다 내 힘으로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한 게 자랑스럽고 즐거워 행복했다.
네 번째 작은 아리아카지노.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다. 금액은 86억. 부도나기 하루 이틀 전, 아버지는 미국으로 여행을 가셨다. 알고 보니 도피였지만. 나는 대학교 4학년, 엄마는 가정 주부, 동생들은 고등학생, 회사는 난장판.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끌어다 쓴 사채 덕분에나는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엄마와 동생들을 데리고 숨었다. 안 들키는 게 아리아카지노.
그리고 나의 마지막 아리아카지노은 인생을 살아가기. 가장이 되었다. 우리 집에 일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엄마, 아빠, 동생 둘, 강아지 세 마리, 그리고 나. 총 여덟의 식구가 나만 바라보고 있다. 밥값을 어떻게 버느냐가 관건이었다.
부모님이 그러셨다. '너는 누릴 거 다 누리고 살았잖아. 네 동생은 그것조차 못 해줘서 얼마나 미안한지...' 그 말로 안 미안했던 나까지도 미안해졌다. 내가 누린 것은 중국 한 달 살기, 백두산 오르기, 그 비싼 뉴욕 맨해튼에서 학교 다니고 혼자 살기였겠지만, 내가 남들처럼 못 누린 건 내 청춘이었다. 남들이 다 아리아카지노해 보는 멋진 청춘을 나는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골방에 처박혀 일만 하고 보냈다.
그래서 요즘은 사소한 것들을 아리아카지노해 본다. 어디든 가보기, 뭐든 먹어보기, 신기한 건 해 보기. 내가 2-30대 때 못 해 본 수많은 것들을 하나씩 채워간다. 젊음의 예쁨과 생기는 모두 사라졌지만, 남은 인생은 후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