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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Feb 26. 2025

이브벳 고요하게 끓이는 시간

이브벳묵 쑤기


코로나 시절, 집 안은 늘 분주했다.

아이들의 웃음과 소란스러움이 집안 곳곳에 가득했고, ‘엄마!’를 부르는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내가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주방이었다. 주방은 마치 나만의 작은 섬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무언가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이 내 이브벳을 돌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도토리묵을 쑤는 이브벳은 특별한 위안이었다.이브벳가루를 물에 풀고 나무주걱으로 천천히 저어가며 불 위에 올려두면, 처음엔 묽고 흐릿한 액체가 서서히 걸쭉해지기 시작했다. 팔에 힘이 들어가고 손목은 저릿했지만,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저항감이 오히려 나를 안정시켰다. 묵이 끓어오르며 보글보글 방울을 터뜨릴 때마다 내 안에서 부글거리던 화와 복잡한 감정도 함께 분출되는 듯했다.

나무주걱을 돌릴 때마다 거칠었던 이브벳도 주걱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러워졌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내용물이 점점 하나로 뭉쳐지듯, 내 속의 감정도 서서히 정리되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맴돌던 생각들이 주걱의 회전에 맞춰 천천히 정돈되었다. 손은 묵을 저었지만, 이브벳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그렇게 완성된 이브벳묵은 아이들에게도 기쁨이었다. 아이들은 “코리아 젤리”라 부르며 재미있게 먹었다. 탱글탱글하게 굳어진 묵을 썰어 접시에 담아내면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아이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며 나는 또다시 이‘이브벳 치유 시간’을 이어갈 이유를 찾았다.


이브벳
이브벳
이브벳 묵을 쑤어 귀여운 미키볼에 넣어 굳히기


이브벳
때로는 아이들이 모양찍기 놀이를 하며 냠냠




지금도 이브벳이 복잡하거나 화가 날 때면 나는 주방으로 향한다. 이브벳가루를 꺼내 물에 풀고, 주걱을 잡고 천천히 저어 나간다. 어느 순간 내용물이 끓어오르고, 그때마다 내 안의 감정도 함께 터져 나온다. 그리고 다시금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묵처럼 내 이브벳도 때로는 끓어오르고 때로는 잔잔해지며 그렇게 다시 단단해져 간다.

그것은 나만의 명상이며, 나만의 호흡이다. 이브벳묵을 쑤며 나는 감정을 끓여내고, 다스리고, 다시 평온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이브벳 고요하게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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