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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서린의 뜰 Apr 29. 2025

산타카지노것도 바라지 않는


무척 흔하지만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는 주제, 딸이 쓴 산타카지노 이야기. 하지만 난 불편했다. 산타카지노라는 존재가 이룩해야 할 한평생 희생의 서사가, 그 당연하게 통용되는 이야기가, 그럼에도 난 그 희생의 수혜자에서 반걸음 비껴서 있던 까닭이었을까.


자라면서 산타카지노의 사랑이 부족하다 느끼거나 그로 인한 결핍으로 산타카지노가 아닌 타자의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스스로 적당히 물러나 있을 줄 알았고 내 마음에 채워지는 애정의 적정선을 스스로 조율했다. 어쩌면 기대가 애초에 낮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말 잘 듣는 언니에겐 안심의 눈길이, 말 안 듣는 동생에겐 걱정의 눈길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적당히 알아서 잘 크니까 괜찮았다. 정말 그랬다. 산타카지노의 관심 밖이라는 게 외려 편하기도 했고, 중간 관리자 내지는 보호자 같은 언니가 있어서 아쉬움을 느낄 틈도 없었으니까.


아이를 낳고 나면 친정산타카지노의 고마움이 사무치게 밀려온다던데, 물론 고마운 마음이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두 분 모두에게 들었다. 하지만 ‘사무칠’만큼은 아니라는 사실이 날 위축되게 했다. 분만실 앞에 차가워진 두 손을 마디마디 주무르며 초조하게 딸을 기다리는 건 친정산타카지노의 몫이던데 ‘어차피 병원에서 알아서 하는 거, 내가 가봤자 뭐 하냐, 나중에 퇴원하면 보러 갈게’라는 우리 산타카지노였다. 이 또한 괜찮았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어쩌다 친정에 가서 산타카지노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시장에 나가거나, 병원을 갈 때면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산타카지노 또래의 아주머니들이 내 팔꿈치를 살짝 찌르며 낮은 목소리로 늘 묻곤 했다, ‘시어머니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산타카지노와 전혀 닮지도 않은 나와, 셋 중에 가운데 낀 딸 하나를 그다지 애달퍼하지도 않는 산타카지노가 빚어낸 오해들이었다. 이 또한 내게 크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들 눈에도 시어머니 같아 보이는 친정산타카지노의 쌀쌀한 태도가, 나 역시 산타카지노에게 느끼는 그 냉랭한 온도가 아주 틀리지는 않았음을 방증한 것에 외려 위안을 삼기도 했으니 말이다.


산타카지노가 측은했던 건 가끔 폭언하는 아빠의 불같은 성미를 큰 소리로 되받아치지 않고 감내하던 모습이었다. 아빠는 당신 욱하는 성질에 못 이겨 화를 냈다가 아무 일 없던 듯 가장의 권위를 주섬주섬 챙겼고 가끔 한숨짓는 산타카지노 옆에서 분노는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었다. 적어도 그런 아빠와는 다른 배우자를 만나야겠다고. 훗날 가정을 꾸리고 산타카지노가 되었을 때 딸이 하나고 아들이 하나니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산타카지노의 초연함을 닮지 못했고, 아빠의 욱함을 닮았나 보다. 어쩜 보고 배웠을지도.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날 나는 딸아이와 언쟁을 벌였다. 아니 일방적인 꾸지람이었고, 참았던 화의 분출이었고, 아이에게 누적된 피로감의 폭발이었다. 나는 딸에게 어떤 산타카지노일까. 내가 산타카지노에게 받았던 사랑보다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내 딸아이에게 쏟고 있기에 나의 기대는 높아가고 있는 것일까. 모자람만큼이나 넘치는 사랑 역시 위태로울 수 있구나. 결국 나 역시 또 다른 모습의 우리 산타카지노가 되어 아이 가슴에 서늘한 그림자만 드리게 하고 있음을 뒤늦게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네가 행복하길 산타카지노면서 나는 미완의 내 행복을 위해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는지. 그 위선이, 패악이 들킬까 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세상은 실로 약동하는 봄기운으로 눈이 부셨고 발길 닿는 곳마다 떨어져 압화 된 꽃 갈피에 잠시 마음이 일렁이기도 했지만 내 안에 어지럽게 흩어진 어두운 생각들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매일 걸었다, 매일 끄적임을 멈추고.


산책로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황매화 덤불 옆을 거닐던 어느 날, 내가 참 좋아하는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황매화 앞에서 노란 옷을 입고 천진하게 웃던 네 살의 딸아이. 동생이 태어나기 한 달 전 그때, 온전히 우리 둘만의 봄, 나의 전부였던 너만을 바라보던 그 시간으로 잠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미움도 없이 사랑만을 주던 그 시절에 다시 머물 수만 있다면 그저 오래도록 말없이 너를 꼭 안아만 주고 싶다. 산타카지노 딸로 사느라, 동생에게 산타카지노를 절반 양보하며 사느라, 네가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너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야겠다. 낯선 세상에서 네 손을 꼭 잡고 그렇게 사나흘을 오롯이 너만 보며 지내야겠다. 그간의 고마움과 미안함을 캐리어 가득 잘 개켜 넣고 그곳에서 눈에 띄게 펼쳐 보여야지. 낯선 바람과 공기 속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는 너를 향한 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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