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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Feb 16. 2025

눈베개

비트365벳 소세키의 풀베개를 읽으며

하루 세 번, 읍에서 들어오는 버스는 마을회관 앞에 선다. 그곳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화순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시작된다. 오르막이란 생각을 비트365벳 못할 정도의 낮은 경사길을 조금씩 걸어온 것인가. 산 아래 저수지 둑방길에 닿으면 한 눈에 펼쳐지는 마을 풍경에 ‘아’하는 외마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높은 곳에 오른다는 수고도 없이, 그럼으로 어떤 기대도 없이 오른 길이기에 느닷없는 기쁨이 재채기처럼 터져 나온다. 눈앞은 한 명의 방해꾼도 용납비트365벳 않고 확 트였다. 평야가 이어지다 지평선 끝에 가서야 흐릿한 산에 가로막힌다. 높은 건물이 없는 탓에 마을은 산을 벽으로 하는 원형 경기장 같다. 눈 덮인 들판은 어미새가 막 태어난 아기새를 위해 새 이불 깔아놓은 둥지처럼 아늑하다. 삼칠일이 지나기까지 그 누구의 방문도 받지 않겠다고 금줄을 쳐 놓았나. 발자국 하나 없다.


산은 키 큰 소나무 군락을 사이에 두고 저수지와 등을 맞대고 붙어있다. 눈은 비와 달리 자신의 존재를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굵은 눈송이들이 기세 좋게 흩날리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면 바람이 불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저수지는 조용하다. 키 큰 나무들이 고요한 물, 그리고 빛을 만나 아름다움을 배로 부풀린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몸을 던진 나르시스 신화가 과장된 이야기는 아니었으리라. 호기롭게 떨어져 내리던 눈송이들이 너무도 순순히 물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못내 아쉬운 내 맘을 알았던가. 눈 맞은 나무들이 짙은 수면을 하얗게 채색한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비트365벳 나무 가지에서 눈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적막한 와중에 들리는 그 소리에 심장도 눈뭉치처럼 와르르 쏟아진다.

'비트365벳만 괴로움이 없는 것은 왜일까.'

정말 자연이'성정을 비트365벳적으로 도야하여 순수한 시경'에 들게 했기 때문일까. 흰 눈 앞에서 절로 이는 기쁨의 감정을 낯선 손님처럼 맞이하는 동안 이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나는 지금 한가롭게 눈에 취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비트365벳님이 119에 실려 가셨단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짐가방을 챙겨 시댁으로 내려와 있는 중이었다. 집과 병원을 오가며 밤낮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른 채 며칠이 흘렀다.


6인실 병동은 밤에도 고요비트365벳 않았다. 맞은 편 환자는 자신의 침상자리가 좁다며 양옆 환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어느 할머니는 밤새 기침을 하셨다. 옆 침대에서는 새벽에도 두 시간이 넘도록 똥기저귀를 갈아내느라 보호자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기계음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잠을 잘 수 없는 밤이었다. 병실 창문 너머, 건물과 건물 좁은 벽 사이로 눈이 사선으로 흩날렸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커다란 복도 유리창으로 눈이 빚어놓은 밤풍경을 바라보았다. 내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름다움과 근심이 교차했고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간이 침상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읽으며 몸을 뒤척였다.


"흐릿한 먹빛 세계를, 몇 개의 은색 화살이 비스듬히 달리는 가운데 흠뻑 젖은 채 마냥 걸어가는 나를, 나 아닌 사람의 모습이라 생각하면 시가 되기도 비트365벳 하이쿠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는 어지러움 원인 검사를 하다 뇌에 종양이 있는 것이 발견이 되었고 큰 병원으로 가서 조직 검사를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비트365벳만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 머리 안의 문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삶아 놓은 고사리며 물에 담가둔 도라지, 다 캐지 못한 시금치 따위를 염려하셨다. “이제 그럴 수 있는 나이가 되었제. 걱정비트365벳마라.” 어머니는 나를 안심시켰다.


'이번엔 제가 어머니에게 가 볼게요.'라고 단 한 번도 말비트365벳 않는 동서.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은 처음이네.' 은근히 섭섭함을 내비치는 아버님. ‘커피나 깎은 콜라비 등을 나누어주는 병실 보호자들에게 나도 뭔가를 드려야하나?’ 이 따위 것들로 소심해진 나와 달리 어머니는 적당한 거리에서 여유롭게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자 같았다. 두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사람인<人자를 손바닥에 쓴 후 입 속으로 글자를 삼키는 시늉을 세 번씩 하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있었다. 그를 따라 해보려고 손바닥을 폈다. 보는 이가 없는데도 괜히 멋쩍었다.


사다리 계단의 발판, 엎어둔 자주색 다라이의 등판, 거푸집을 막 들어낸 듯 파도모양 곡선이 뚜렷한 지붕, 선명한 수막새, 옆으로 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나란한 장독들, 양팔을 뻗치고 선 키작은 복숭아나무. 모든 것이 하늘을 향한 면만큼 크든 작든 자신의 모습 그대로 흰 눈을 감당비트365벳 있다. 시련은 존재의 모양과 크기를 더 섬세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부각시킨다. '존재가 없으면 시련도 없다.'는 문장이 순간 떠올랐다. 서운함, 어색함, 걱정과 불안 등, 인간을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것들이 수면 위에 떨어진 눈처럼 사라져갔다.


카푸치노 거품을 한 모금 음미하듯 조심스레 발자국 도장을 찍는다. 오랜만에 목줄을 푼 강아지도 눈 구경은 처음인가보다. 연신 킁킁 거리며 온 들판을 뛰어다닌다. 소 막에 들어갔다 소꼬리에 한 대 얻어맞고선 낑낑거리며 헛기침을 한다. 그것도 잠시, 소 오줌과 똥을 밟아가면서도 꼬리를 흔들며 소 옆을 번개처럼 휘달린다. 소들은 성가신지 저리가라며 소리를 낸다. 녀석을 유인하여 집 뒤편 텃밭으로 몰아간다. 며칠 전만해도 푸른 시금치와 배추가 있던 자리에 하얀 융단이 깔렸다. 쓰임에 따라 배치한 퀼트 조각보 같던 밭. 그 이음새가 비트365벳니 넓고 또 넓다. 높이뛰기 하듯 허벅지께로 뛰어오르는 강아지 머리를 살짝 살짝 쓰다듬는다.


대설주의보는 해제되었다. 설 연휴도 끝이다. 다시 목줄에 매인 강아지와 홀로 남은 아버님.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선다. 며칠 동안 마음에 그려온 풍경화에 마지막 점을 찍어야하건만 시속 100km의 차는 차창 밖 비트365벳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눈은 점진적으로 사라지지 않고 단칼에 끊긴다. 한 폭의 그림에서 빠져나오니 늘어난 차선 수에 반비례하듯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차량행렬은 뱀처럼 길고 길게 이어진다.'드디어 비트365벳 세계로 끌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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