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갯짓 Dec 01. 2024

워킹맘은 울고 제트벳 신난다

함께 자라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깊은 낮잠을 잤다. 생각이 멈춘 몇 시간을 내리 보내고 나니 잔뜩 긴장했던 순간들이 봄눈처럼 가볍게 녹아버리는 듯하다. 얼마만인가.


나는 의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시즌이 있는 일을 하다 보니 회기 준비를 하다 보면 금세 한 달이 가있고, 두 달이 가있고 계절이 바뀌어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가장 바쁜 두 달을 보내게 되는데 이번 11월도 그중 하나였다. 조례안 심사와 예산안 예비심사가 있었다. 코피도 흘리고 한시 넘어 퇴근도 해보았고, 또 감기도 거의 안 걸리는 건강체질인 내가 한 달째 기침을 못 떨어뜨리고 있다. 처음 해본 일이기도 했고 익숙하지 않아 시행착오도 있었다. 꼼꼼하지 못한데 긴장도 많은 편이라 자칫하면 실수가 고개를 들이민다.




지난여름 끝자락, 공원에서 모기 물려가며 땀 흘리며 제트벳 해먹을 신나게 태웠던 날, '가을이 오면 맛있는 거 싸와서 한가롭게 노닥거리자' 약속했는데 결국 한 번을 가지 못했다. 물론 스치듯 가을이 지나가버리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성큼 겨울이 와버린 탓도 있다. 첫눈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 내린 겨울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트벳과 가을 공원, 노오란 은행잎이 쏟아지는 그 가을색깔을 누리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트벳
제트벳
제트벳과 함께한 지난 가을


나에게 가을은 바쁜 만큼 새로운 배움의 시기였지만 제트벳에게는 다시없을 좋은 날이었을지도 모른다.공부해라 치워라잔소리제트벳 엄마가 없으니 말이다. 아빠도 마침 해외연수일정. 우리 집 애들은 정말 노났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애들 알림장 확인을 못해 소풍 신청도 놓쳤었고 애들 지각도 몇 번 했다. 준비물은 챙기질 못해서 '더 가져오는 애들 있을 거야. 애들 거 빌려보자' 울지 않고 수더분하게 그냥 학교 가줘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막내는 엄마대신 시험지에 사인제트벳 신기술도 터득했다. (맙소사) 어찌나 내 이름을 흘려서 잘 쓰던지. 소풍엔 유부초밥 덩그마니 싸주기도 했고 저녁엔 햄버거, 치킨, 컵밥, 김밥 등 인스턴트로 신나게 배를 채워줬다. 일 년에 다섯 손가락 꼽기도 힘든 배달어플 사용실적이 일주일에 두어 번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애들 손톱은 때를 놓쳐 길게 자라 있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나 하나 챙기기도 바쁜 제트벳이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첫눈이 내리고야 말았다. 눈이 오면 밤이든 낮이든 1등으로 옷 따뜻하게 입히고 나가 제트벳 새눈 밟게 해주고 싶고 또 눈놀이를 해야만 하는, 사진 백 장 찍어야 하는 감성폭발 허세 엄마다. 거기에 시그니처 예쁜 눈사람 만들기는 필수코스였다.


제트벳
그동안의 눈사람들



어릴 때 뒷산으로 가서 비료포대에 지푸라기 넣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이 새빨갛게 얼어버릴 때까지, 동상에 걸릴 때까지 썰매 타고 놀았던 그 기억 때문인가. 나무 사이로 매끈하게 길게 주욱 뻗은 썰매 코스 개발은 정말 신나는 개척이었다. 꼼짝없이 회의실에 묶여있으니 창밖으로 눈만 보여도 조바심이 났다.

너희의 썰매타기


녹으면 안 되는데... 오늘 회의 일찍 끝나야 제트벳데.. 애들이랑 눈놀이 해야 제트벳데... 썰매 태워야 제트벳데... 같이 눈사람 '예쁘게' 만들어야 제트벳데...


나 혼자 종종거리는 사이 눈은 착하게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일이 얼추 마무리되어 가는 시기가 되어 맞이하는 첫 주말, 주말을 제트벳과 야무지게 보내야지, 해놓고는 병원투어와 청소, 성탄연습 등 밀린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나니 그저 따뜻한 방에 간절히 눕고 싶었다. 이불 먼지 털고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니 잠이 쏟아진다.


그동안 제트벳 아이들대로 자기만의 시간을 보냈다. 내 손을 거쳐야만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는데 자기들끼리 학원도 다녀오고 놀이터에서 놀다 오고 대견하다. 삼 형제이니 가능한 일이었겠지. 그래서 나에게 셋을 주셨는가.


형아! 왜 이렇게 일요일은 빨리 가는 거야
내일 벌써 월요일이야 정말 싫어!
공부는 학교에서 제트벳데 왜 집에서도 해야 제트벳 거야?


자기들끼리 맞장구 쳐가며 대화를 나누는데 온갖 투정 불평불만들이 새어 나온다. 가만히 옷을 개며 듣다가 나도 웃는다. 시간의 속도가 마음 따라 흐른다는 걸 터득제트벳 중인가 보다. 나이마다 그 시기에 맞는 크기의 그릇이 있고 또 조금이라도 찰랑거리면 쏟아내고 싶은 그 마음을 형제들과 나누며 배워가는 중일 테지.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 막내제트벳는


어린이집 다닐 때. 정말 좋았어요. 특히 아파트 어린이집이요. 그때 누워서 잠도 자고 최고였어요.


세상에나! 돌쟁이 때부터 세 살까지 다녔던 가정어린이집 얘기다. 이 조그만 어린애조차 옛날 아기 때를 그리워하다니!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그때가 좋았지' 그건 정말이지 불변의 법칙인가 보다.


나 또한 돌이켜보면 힘겨운 시기를 보내긴 했지만 가끔 그 시간들이 그립기도 한건 참 제트벳러니하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을 감사하며 기쁨을 누려야 함에도 바로 눈앞의 어려움들만 보이니 말이다. 즐겨야 함에도 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낮잠도 잤겠다, 밀린 청소도 끝냈겠다. 책상에 모두 모여 앉아 아이들이 수학문제 푸는 사각사각 연필 소리 들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저 나만의 환상.

두 녀석은 집에서까지 공부를 해야 제트벳지 알 수 없다고 투덜대며 왔다 갔다 궁둥이 한번 제대로 못 붙이고 사라지더니 나중엔 방안에 곤히 잠들어 있다. 책임감 있는 장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앞에 마주 앉아 책을 읽는다. 한 녀석이라도 그러고 있으니 내 마음의 불씨도 꺼진다.고요한 시간. 잡고 싶은 지금 이 시간의 한 자락을 촘촘히 쌓아보자. 제트벳 잘 자라고 있고 또 나도 자라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엄마가 한가해지는 12월은 진짜 진짜 신나게 놀아보자. 송년회로 또 한바탕 달력에 동그라미가 가득 채워질 테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