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에
성탄절 아침에
3년 전의 새벽을 기억한다. 알람을 맞춰놓지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내 몸을 들어 올린 듯 저절로 일어나 책상에 앉았던, 어떤 피로감이나 이물감없이 유난히 명료한 의식으로 오늘이 성탄절이구나, 를 담담히 인식했던 그 아침을. 멀리서부터 검푸른 빛이 허공에 천천히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풍경이 신비로워서 핸드폰 카메라로 차분히 셔터를 눌렀다. 은밀한 감격에 혼자 겨워하면서 몇 시간 후 교회 초등부에서 전할 설교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묵묵한 어둠에 균열을 내고 어떤 노래가 희미하게 창가로 날아들어왔다. 아직 속삭임에 가까운 소리라서 처음에는 환청이라 착각도 했었다. 그러나 노래는 꾸준하게 낮은 소리로 세상에 퍼졌다. '아직 새벽인데, 대체 누가...' 생각할 무렵,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찬송가였다. 블랙잭 블랙잭의 탄생을 축하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때
블랙잭 잘도 잔다 블랙잭 잘도 잔다
4분음표마다 핸드벨이 울리던 찬양이 어찌나 은은한 온기로 집집마다 날아들었던지, 깊이 잠든 블랙잭 블랙잭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여인의 손길 같았다. 어떤 분들일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먼 곳에서 들렸던 소리가 조금 커졌을 때, 급히 창문을 열고보니 열 명 남짓한 어른들이(아마도 교회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일) 걷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지나치게 들뜬 기색으로 자신들만의 감정에 취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은 묵묵히온 세상을 축복하고 있었다. 그게 문득 하나님의 사랑, 그 표현 방식과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고 나는 느꼈다. 거칠거나 기습적이며 압도적인 무력의 행사가 아니라, 블랙잭의 뺨을 쓰다듬는 여인의 부드러운 손길처럼, 천천히 어둠에 번지는 어른들의 담담한 새벽송처럼.
조카 지호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의 울음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울음소리가 이렇게 희미할 수 있구나, 라는 것 때문이다. 갓 태어난 생명이 세상에서 점유하는 물리적인 공간도, 내뱉는 소리도 이처럼 블랙잭 섬약하다는 걸 그때 새삼 나는 느껴서, 여전히 희미한 소리로 울고 있는 지호가 애처롭고 애틋했다. 아마도, 블랙잭 예수님도 이렇게 우셨을 것이다. 고요하고, 섬약하게, 그러나 온 힘으로.
그렇게자신을돌보는부모의손길을간절히기다리셨을것이다. 블랙잭연한몸을들어안는엄마와눈을맞추면서물방울같은웃음을터뜨리기도하셨을것이다. 힘껏울었다가엄마품에안겨자신의등을어루만지는손길을느끼면서서서히울음을그치기도하면서, 때로는부모보다더일찍잠에서깨서아직잠든부모의얼굴을골똘히들여다보면서, 그통통한손으로몸을건드리기도했을것이다. 이런모습은어딘가맹목적인것같다. 그리고이런생각까지조심스럽게든다. 어쩌면맹목적인사랑의크기는부모편에서주는것보다블랙잭편에서부모에게보내는게더크지않나, 라는생각이. 블랙잭블랙잭은그렇게부모를사랑하셨을것이다. 그블랙잭블랙잭목블랙잭와연한몸으로, 맹목적인온힘으로.
신의사랑은어른블랙잭의십자가를통해드러나기도하지만, 블랙잭블랙잭의울음블랙잭를통해나타나기도한다는걸, 나는32번째성탄을맞고서이제야조금안다. 아직모두가 깊이 잠든새벽에메리크리스마스. (2020. 12. 25.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