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일사일언 연재 두번째
몇 년 전 둘째를 낳고 몸조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큰카드카운팅가 많이 아파 입원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평화로웠던 오후였다.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카드카운팅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말에 갓난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다른 가족의 출입도 쉽지 않았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지만 투정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 행복이란 무엇인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얼마 전 앨범에 저장된 몇 년 전 사진을 들춰 보았다. 카드카운팅와 병원에서 찍은 사진이 가득했다. 병실 생활이 힘들었을 법도 한데 사진 속 카드카운팅는 마냥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드카운팅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엄마랑 병원에 오래 있었잖아. 그때 기억나? 어떤 기분이었어?” 카드카운팅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기억나지. 맨날 주사 맞았잖아. 그래도 엄마랑 둘이 온종일 꼭 붙어 있어서 엄청 좋았어!” 당연히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더 많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누구에게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다. 하지만 똑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떤 이는 어두운 면만 바라보고, 어떤 이는 반대로 밝은 면을 바라볼 수 있음을 카드카운팅의 대답을 통해 배웠다. 그런 카드카운팅에게 고맙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잊고 산다. 매일 아침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카드카운팅들과 입을 맞추고,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일찍 퇴근하라는 귀여운 아우성을 들으며 출근하는 것. 퇴근하고 돌아오면 문 앞까지 종종걸음으로 뛰어나와 “엄마! 엄마!” 소리치는 카드카운팅를 오래도록 안아주는 것. 지나고 보니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선물이고 축복이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더욱 힘들고 비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게 마련이고, 그걸 발견해 내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힘든 병원 생활 와중에도 기쁨을 찾아낸 큰아이처럼 사랑과 긍정의 카드카운팅 현재의 순간을 바라본다면, 가장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빛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진담 ‘따로 또 같이 고시원, 삽니다’ 저자
오늘 제주 항공 사고 소식으로 카드카운팅이 무겁습니다. 그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네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지막까지 기도하겠습니다…
*해당 글은 제가 조선일보에서 매주 연재 중인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기사원문]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75450?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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