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공부를 핑계 삼아 식욕이 왕성하던 여고생이던 때,나는 밥보다 간식을 더 좋아했다.하교 후 버스를 타는 곳까지 15분은 족히 걸어야 했기에 간식 연료가 필요했으니
그것은 바로 가상 바카라.
가상 바카라을 만드시던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판 위를 지휘하시던 그 손은 아직까지눈에 선하다.
물그릇에 살짝담가젖은 손으로
피자치즈처럼 늘어지는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신다. 흑설탕이 대부분인 가상 바카라소를 한 큰 술 넣고 밀가루 감옥에 단단히 가둔다. 기름을 휘 두른 팬에 동그란 가상 바카라을올린다. 지글지글기름에한쪽면을살짝익혀 단단하게 만든다. 노랗게 익었을 아랫면을뒤지개로 홀랑 뒤집은 뒤 꾹눌러준다.
가끔은 감옥을 탈출하는 '소'들이 있지만, 괜찮다
탈출해 봐야어차피 갈 곳은나의 입속이다.
요즘은가상 바카라소가흐르지않게 종이컵에하나씩담아준다.그 시절에는반접힌 두꺼운 종이사이에가상 바카라을 넣어건네주셨다.호호 불어가며 쫄깃하게 늘어나는가상 바카라을 한입 베어문다.어김없이 고동색설탕이 흐르고, 그것은 내 가상 바카라으로 뚝뚝 떨어졌다.
두꺼운 모직으로 된겨울 가상 바카라에 떨어진 설탕은,그렇게 나와 함께 한 계절을 보내게 된다.
사실 나는 매년 겨울호떡 소를 가상 바카라에 묻히고 다녔다.물티슈를 잘 쓰지않던시절이라 휴지로 닦아보기도 했다.
이런,휴지까지 같이 붙어 한 계절 나는 수가 있다.
두벌의가상 바카라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세탁소에 맡겨둔 며칠은 가상 바카라을 못 입게될 것이다. 그래서겠지?나의 가상 바카라은더 이상 입지 않아도 될 따뜻한 봄바람을 만난 후에야 세탁소에 맡겨졌다. 거기에넉넉하지 않은 형편도 한몫했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조물조물 손빨래라도 해서 입을 만도 한데,가상 바카라소가 마치가상 바카라에 달린 겨울의 훈장인양 그렇게 한 계절을지냈다.
나는 무던한 편이다. 내가 무던했기에 그런 가상 바카라을 입고 다닌 건지, 엄마가 바로 세탁소에 맡겨주지 않아서무던해진 건지,그 상관관계는 알 수 없다.하지만 나는 이 무던함 덕분에 지금도 꽤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가상 바카라이 생각나는 코끝 시린 날씨다.
간식연료를 자제해야 할 40대가 되었지만,그래도 오늘은 생각난 김에 달콤한 가상 바카라을 하나 사먹어야겠다.